“기아 때문에 한국서 죽을 맛”…‘굴욕’ 현대차 화났다? 속사정 알아보니 [세상만車]
속으론 “너 없으면 못 살겠네”
메기싸움, 경제성장에도 기여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종의 아들인 서자(庶子) 홍길동의 설움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아버지 홍판서가 나중에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락하지만 홍길동의 신분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회사는 현대차그룹 형제이자 경쟁자이자 동반자입니다. 겉으로는 서로 죽일 것처럼 싸우지만 실상은 서로에게 장점을 배우고 활용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너 때문에 못 살겠다”가 아니라 “너 없으면 못 산다”가 됐죠.
현대차가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부도난 기아를 인수했을 때 카니발라이제이션(시장잠식)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서자인 기아가 적통인 현대차를 도와주는 역할에 머물려 결국에는 존재감을 잃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죠.
결과적으로 현대차와 기아는 ‘따로 또 같이’ 전략으로 서로를 자극하며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웠습니다.
아반떼와 K3, 쏘나타와 K5, 그랜저와 K8, 투싼과 스포티지, 싼타페와 쏘렌토 등은 서로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계속 성장하게 강제했습니다.
“싸우면서 큰다”더니 그 말이 딱입니다.
현대차는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54% 증가하면서 15조원을 처음 돌파해 역대 가장 좋은 실적을 올렸습니다. 판매대수는 전년 대비 6.9% 늘어난 421만6898대로 집계됐죠.
기아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0.5% 늘어난 11조원을 넘어서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습니다. 판매대수도 전년보다 6.4% 증가한 308만7384대에 달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는 현대차가 앞에서 끌고 기아가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대수는 730만여대로 2년 연속 세계 3위를 기록했습니다. 세계 1위인 일본 도요타, 2위인 독일 폭스바겐그룹과 함께 3강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맏형이 된 제네시스가 벤츠, BMW, 포르쉐 등 글로벌 프리미엄 리딩 브랜드와 당당히 겨룰 수 있게 된 것도 두 동생의 고군분투 덕분입니다.
형님인 현대차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죠. 굴욕이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기아는 지난해 50만15대를 판매했습니다. 전년보다 6.3% 증가했죠.
현대차 판매대수는 전년보다 19.5% 늘어난 47만1187대로 집계됐습니다. 제네시스는 3.1% 감소한 12만8913대로 나왔습니다.
현대차를 넘어 ‘그룹 맏형’ 역할을 담당하는 제네시스를 제외하면 기아가 현대차를 이겼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현대차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더 있습니다. 기아가 성별·연령대별 경쟁에서 ‘압승’을 넘어 ‘전승’을 달성했습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 각사의 올해 상반기 판매실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판매실적 자료를 바탕으로 성별 ‘톱5’를 산출해봤습니다. 남성이 가장 많이 구입한 차종은 기아 쏘렌토(3만3500여대)로 나왔습니다.
그 다음으로 현대차 싼타페(2만9500여대), 기아 카니발(2만200여대), 기아 스포티지(1만9800여대), 현대차 투싼(1만5800여대) 순이었습니다.
여성은 기아 셀토스(1만2700여대)를 가장 많이 샀습니다. 기아 스포티지(1만300여대), 현대차 캐스퍼(9400여대), 현대차 아반떼(8500여대), 기아 쏘렌토(7500여대)가 그 뒤를 이었죠.
남녀 모두 기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미니밴을 선호했습니다. 차종 간 경쟁에서도 기아 쏘렌토는 현대차 싼타페, 기아 스포티지는 현대차 투싼을 압도했습니다.
연령대별 1위 차종을 살펴보면 20대는 스포티지, 30대는 쏘렌토, 40대는 카니발, 50대와 60대는 각각 쏘렌토로 집계됐습니다.
남성의 경우 20대는 스포티지, 30대는 쏘렌토, 40대는 카니발, 50대와 60대는 각각 쏘렌토를 가장 많이 샀습니다.
여성의 경우 20대부터 60대까지 전 연령대에서 셀토스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남녀 순위는 물론 20~60대 순위에서도 1위는 모두 기아 차종으로 나왔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현대차가 연령대별 순위에서는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20대는 아반떼, 50대와 60대는 그랜저를 가장 많이 구입했기 때문이죠. 올해는 기아의 전승에 완전 상처를 받았습니다.
미국, 독일, 일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동차 공업은 국가 경제의 토대가 되면서 경제활동과 국가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때로는 나라의 운명까지 결정합니다. 일반 제조업 기초가 되고 공업화를 촉진시켜 주는 기간 산업(Key Industry)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기간 산업의 역군다운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달성하며 ‘수출의 탑’을 각각 수상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12월5일 코엑스(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제60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각각 300억불 수출의 탑과 200억불 수출의 탑을 나란히 받았습니다.
두 회사는 수출의 탑 수상 1700여 기업 중 수출액 1위와 2위도 기록했죠.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은 모두 합쳐 487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는데, 같은 해 우리나라 전체 무역수지 흑자 293억달러의 약 1.7배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자동차산업은 국가 경제의 근간으로서 생산·조세·부가가치 창출 면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생산 면에서는 전체 제조업의 12.1%, 세수 면에서는 국세 및 지방세의 10.8%, 부가가치 측면에서는 전체 제조업의 9.6%를 차지했습니다.
고용 면에서 자동차산업의 국가 경제 기여도는 매우 높습니다. 고용 인원은 약 33만명으로, 우리나라 제조업 294만명의 11.2%에 달했습니다.
직접 고용뿐 아니라 다양한 전후방 산업에서 약 1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평균임금 역시 제조업 평균의 약 12%를 상회하는 등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죠.
토인비는 “좋은 환경보다 가혹한 환경이 오히려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며 ‘메기 효과’를 자주 인용했습니다.
메기 효과는 메기처럼 강력한 경쟁자(포식자)가 등장하면 다른 경쟁자들도 더 노력하고 발전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씁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서로에게 메기입니다. 스포티지와 투싼, 쏘렌토와 싼타페, K8과 그랜저 등도 마찬가지죠. 두 브랜드는 싸우면서 배워야 할 ‘운명’입니다.
“우리는 형제이니 사이좋게 지내자”며 안일하게 안주하기 위한 야합과 담합은 금물입니다. 경쟁력을 잃어 작은 도전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도도새는 먹잇감이 충분하고 천적도 없던 낙원에서 살아 하늘 나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포식자가 쉽게 잡을 수 있는 먹잇감이 됐고 결국 멸종했습니다.
토인비는 찬란했던 고대 마야 문명이 멸망했던 이유도 오랫동안 외부의 적이 없어 갑작스럽게 닥친 시련에 취약해진 도도새의 법칙이 적용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가 지금보다 더 가열차게 싸우면서 많이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나라살림에 도움이 되고 소비자들에게도 이득이니까요.
아울러 KG모빌리티, 한국지엠, 르노코리아도 현대차·기아를 메기로 삼아 경쟁력을 더욱 더 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형 액티언, 트레일 블레이저, 그랑 콜레오스처럼 경쟁력 높은 차종들도 더 많이 선보여야 하겠죠.
나라 살림에도 자동차 소비자에게도 모두 이득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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