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용자 환자 인식되면 게임도 병자 된다
KCD 9차에서 반영 예정
도입시 이용자 치료대상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찬반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게임업계와 게임 이용자들은 비합리적인 근거에 따른 과도한 규제라며 우려를 제기한다. WHO는 지난 2019년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고 국제질병분류(ICD-11)에 반영한 데 이어 오는 2026년 1월 ICD-11 시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가 민관협의체를 꾸리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체계(KCD)에 게임이용장애를 포함할지를 논의하는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찬성, 문화체육관광부는 반대 입장을 내놓은 상황이다.
2019년 공표한 ICD-11에서 WHO는 게임이용장애를 게임이용 시 통제가 상실된 상태, 다른 행위보다 게임을 우선 고려하는 상태, 일상생활에서 다른 것보다 게임이 압도적으로 많고,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게임을 더 하고 싶어하는 상태라고 명시했다. 게임을 장시간 하면 시력, 청각, 근육 손상, 불균형한 식습관 등 신체적인 문제와 정신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근거다. '일반적인 이용자'는 게임이용장애에 해당하지 않으며, 극히 일부가 해당된다는 게 WHO 측의 설명이다.
ICD-11이 도입되면 게임 이용자들을 치료 대상 환자로 분류될 수 있다. 나아가 ICD-11에서는 게임과 도박을 연결지었다. 게임과 도박의 융합으로 정신적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게임업계와 이용자들 모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 우선, 게임 주 이용자가 10대인 점을 감안하면 질병코드 도입은 게임 이용자를 '잠재적 환자'로 여기는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임산업 역시 도박과 다를 바 없는 치명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유병률 추정치를 부풀린 경우가 많고 제한된 데이터를 가지고 질병에 대한 증거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임상 수준 연구가 부족하고, 문제적 게임 이용을 판정하는 증상 진단과 평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실제로 게임이용장애 관련 연구를 해온 미국 정신의학회(APA)는 "아직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태"라는 입장이다. 2022년 발간한 DSM-5-TR에 따르면 '인터넷게임이용장애'는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연구자마다 장애 기준이 달랐고, 게임이용이 문제행동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했다. 아시아권 중심 특정 문화권에 집중되는 경향도 한계로 꼽혔다.
APA는 2013년 △인터넷 게임 이용 집착 △불안감 등 금단증상 △게임 이용 시간 증가 △게임 이용 통제력 상실 등 타 중독과 동일한 증상과 함께 △게임 외 취미 관심 감소 △게임 이용 관련 거짓말 △부정적 감정 완화를 위한 게임 의존 등을 '인터넷게임이용장애'로 제시한 바 있다.
WHO는 ICD-11 공표 이후 '게임이용장애' 연구를 꾸준히 이어가면서 논리를 보강하고 있다. 2023년 개정 버전에는 기존 진단지침(조절력 상실, 현저성, 부정적 결과)에 기저질환 배제를 추가했다. 또한 '정상적인 게임과의 차이'라는 문구와 '감별진단', '발달적 특성', '성별특성', '추가적 임상적 특성' 등 항목이 추가됐다.
WHO는 지난 3월 ICD-11 내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에 대한 진단 가이드(CDDR)를 발표했다. 증상과 질병 진단에 대한 일종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CDDR에 따르면 온·오프라인에서 지속적으로 게임을 할 경우 게임이용장애 진단 대상이다. 구체적으로는 게임 이용의 통제를 어려워하거나 일상 활동보다 게임을 우선시할 경우, 가족 갈등, 성적 하락에도 게임을 하는 경우 등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CDDR은 게임이용장애의 추가적인 임상 특징도 7가지 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별개로 진단 기준만 충족되면 게임이용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7가지 항목 중에는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 타임과 빈도를 늘리거나 더 고도화된 게임을 시도하는 게 포함된다.
질병코드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온라인 게임 이용 급증에 따라 사회적 문제 발생이 늘었고, 게임이용장애가 도박증독 장애와 유사한 뇌 반응을 일으킨 점을 근거로 꼽는다. 게임업계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국내 의료계는 ICD-11 도입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통계법 제22조에 따라 유엔이나 WHO 같은 세계 기구가 제정한 표준분류를 국내 표준으로 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게임 이용에 따른 문제를 개선하고 치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게임업계는 ICD-11 수용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 2022년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 통과에 따라 '문화예술'에 포함된 게임에 도박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CDDR 작업에 참여한 한 정신의학 전문가가 게임에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사라는 주장도 있다. 이 가운데 민·관협의체는 11차례 회의를 이어왔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방향성도 잡지 못하고 있다. 협의체는 2026년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9차 개정 시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목표다. 이후 KCD 10차 개정은 2030년에나 이뤄진다. 정부는 내년 1월 ICD-11의 KCD 도입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정부가 주권을 유지한 채 ICD-11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통계법 제22조는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KCD를 작성하도록 하는데 지금까지 정부는 반드시 따르는 것으로 통계법을 해석하면서 ICD를 KCD로 관례적인 규정을 해왔다.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실은 통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 21대 국회 당시 폐기된 법안을 재발의한 것이다. 이 법안은 문제로 지적되는 '기준으로'를 '참고해'로 수정하는 것이 골자다.
김영욱기자 wook95@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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