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마음껏 즐겼다”
(시사저널=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배우 주지훈이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를 통해 파격 변신을 시도했다. 《탈출》은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린 통제 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 생존 스릴러물이다.
주지훈은 극 중 인생 한 방을 노리는 레커 기사 '조박' 역을 맡았다. 주지훈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색다른 비주얼과 극 중 반려견 '조디'와의 깜찍한 팀플레이로 유쾌한 매력을 발휘한다.
《탈출》은 고(故) 이선균의 유작이기도 하다. 이선균은 극 중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안보실 행정관 '정원' 역을 맡았다. 사상 최악의 재난 현장을 맞닥뜨린 후 극한의 상황 속에서 점차 변해 가는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
주지훈은 데뷔작 《궁》을 시작으로 《신과함께》 《킹덤》 《공작》 《암수살인》 《마왕》 《하이에나》 등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하며 강렬한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까칠한 황태자부터 장난기 많은 저승사자, 지능형 살인범, 엘리트 변호사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해 왔다. 《탈출》을 통해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그를 만나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와 연기관에 대해 들었다.
《탈출》은 크랭크업 하고 무려 3년5개월 만에 개봉했다.
"떨린다. 여름 극장가가 전쟁터 아닌가. 아무리 경력이 오래돼도 배고픔이 사라지지 않듯이 늘 긴장이 된다. 계속 트렌트와 흐름이 바뀌다 보니, 그사이에 영화가 뒤처지지는 않을까 불안요소가 있다. 그럼에도 재미있게 봤다. 팝콘무비로서 빠른 전개와 통쾌한 마무리가 좋았다. 명확한 방향성이 좋았다."
그간 볼 수 없었던 코믹한 캐릭터다.
"코미디 장르를 좋아한다. 위트 있는 것들에 매력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인터뷰도 진지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왕이면 위트 있고 편하게(웃음). 극 중 목소리 톤도 일부러 크게 높게 한 게 아니라 감정을 숨기지 않고 하다 보니 확실히 높게 나오더라. 리얼리티다."
사실 그간 멋진 이미지를 쌓아오지 않았나. 그래서 감독도 시나리오를 줄 때 크게 기대를 안 했다더라.
"홍콩배우 주성치의 팬이다. 어릴 때부터 그의 영화를 좋아했다. 더구나 요즘은 다들 살기 힘든 세상이지 않나. 이럴 때 잠시 위트 있는 콘텐츠를 보며 한숨 내려놓으면 얼마나 좋나. 어릴 때 진짜 행복한 순간은 재미있는 비디오를 빌려 쌓여 있는 과자를 먹으며 보는 것이었다. 그 취지에 맞는 작품이라 선택한 부분도 있다."
얼굴 낭비를 한다는 반응도 있다. 굳이 변신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대본을 읽고 구체화한 게 극 중의 모습이지 변신을 목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다만 외형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고, 무엇보다 저는 그런 것에 거부감이 없다. 그리고 제가 변신을 한다고 해서 그게 변신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더라. 관객이 느끼는 것에 따라 다르더라."
영화계 선배들과 잘 지내기로도 유명하다.
"후배보다 선배를 대할 때 오히려 편하다, 그게 버릇없이 누워서 반말하고 그런 게 아니라 기본적인 매너를 잘 지키면 어려울 게 없다는 의미다. 오히려 후배들 대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매너를 지키면 후배들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어서다. 맞다. 나는 꼰대다. 하하. 요즘 세상에 매너 운운하는 게 꼰대 아닌가. 누군가가 10분 늦으면 '10분 가지고 그래?' 할 수도 있지만,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게 아니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후배들에게 한다. 꼰대다.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아서 더 그렇다."
강아지와 호흡을 맞췄다. 극 중에서 늘 붙어다녔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프로 조련사님이 늘 옆에 계셨다. 강아지 복지가 배우 복지 못지않다(웃음). 휴식시간도 보장된다. 강아지의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은 컷은 소품 인형으로 대체했다."
재난 영화이다 보니 힘든 점은 없었나.
"이 작품이 의외로 규모가 있는 작품이다. 이럴수록 사전에 철저하게 합을 맞추고 준비를 많이 해서 오히려 불편함이 없고 쭉쭉 나간다. 반대로 잔잔한 수채화 같은 작품은 현장이 '빡센' 경우가 많다.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큰코다친다. 이번 촬영은 안전상의 이유도 있고 위험요소도 있어서 준비를 많이 했다."
이선균 배우의 유작이기도 하다.
"좋은 선배고 좋은 배우다. 제가 선배를 평가하기는 뭐하지만, 동료로서 완전히 믿고 신뢰가 가는 배우다. 그리고 작업을 할 때 한예종 출신 특유의 디테일한 무엇이 있다. 똑같은 대본을 누구한테 주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형에게는 그런 맛이 있다."
지난해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에 갔다.
"너무 좋은 기억이다. 칸은 세계 영화 마니아가 모이는 곳 아닌가. 배우 입장에서는 꿈같은 곳이다. 칸에 있는 동안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좋았다. 선균이 형과 같이 앉아서 커피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했다.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주지훈의 '로코'를 기다리는 팬도 많다. Z세대들에게 드라마 《궁》(2006)의 밈이 다시금 화제다.
"명동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화제더라. 지금 생각하면 저걸 어떻게 찍었나 싶다. 요즘 세상엔 불가능한 작품이다. 뉴스에 나오는 영상들도 거리 전경을 찍을 땐 배경이 전부 모자이크이지 않나. 그때는 뒤에 계신 시민들의 얼굴이 다 나와도 싫어하지 않으셨다. 그 시절이니까 가능했다."
거의 20년 전이다. 그때와 지금, 촬영현장에도 변화가 많다.
"그때는 조금은 비인간적이었다. 쪽대본이 나오는 시절이라 강행군이 많았다. 그래서 다들 어디가 아팠다(웃음). 굳이 장점을 꼽자면 실시간으로 찍었기 때문에 대중들의 반응을 면밀하게 살펴서 그걸 반영할 수 있었다. 요즘은 촬영현장이 규격화돼 있다. 잠잘 시간도, 준비할 시간도 준다. 당연히 퀄리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영화계가 어렵다. 사실 어려웠던 상황이 꽤 오래됐다. 개인적으로는 그 환경에 어떻게 적응 중인가.
"제가 이 상황을 타파할 능력이 있는 게 아니기에 원대한 계획은 없다. 단지 작품을 고를 때 명확한 것은 있다. 요즘 들어 더 확고한데, 기획 의도와 내용이 일치하는 작품에 마음이 간다. 이 작품은 누가 봐도 어두운 작품인데, 제작사나 감독이 그걸 비틀어서 다른 콘셉트와 버무리면 그 작품은 선택하기가 부담스럽더라. 리스크가 크다는 생각에서다. 우울하고 진지해도 여전히 사랑받는 작품이 있다. 문화적으로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시대는 영화가 개봉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OTT로 넘어간다. 100개국에서 20만 명만 봐도 2000만 명이 본 셈이다. 그렇게 넓은 관점으로 생각한다. 잘 팔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작품의 장점을 명확히 알고 그걸 부각시키는 제작자를 선호한다."
제작에도 관심이 있다고 들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걸 좋아한다. 선배님들이 도전하는 걸 보고 용기가 생겼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대부분 제 여가시간을 감독, 작가, 제작자와 놀고 있더라.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 크다. 물론 경영은 하지 못한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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