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몫까지 씩씩하게…” 서초구 순직 교사 부모님은 다짐했다
“교육현장이 아직도 바뀌어야 하는 게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라는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의 일상이 보다 안전하며, 교육 현장이 더 밝게 변화되기를 마음 모아 기원합니다.”
교원의 교육활동 침해 심각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서초구 초등교사 사망사건’이 18일 1주기를 맞은 가운데, 해당 교사 부모의 추도사가 뒤늦게 알려졌다.
21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18일 서울시교육청 공식 추도식을 마치고, 서초구 초등학교를 방문해 조문하고 서울교대에서 열리는 추도식에 참석했다. 거기서 교사유가족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서초구 선생님의 사촌오빠가 엄마아빠의 추도사를 낭독했다”며 “너무 깊은 감동을 주어 공유한다”고 밝혔다.
“세상이 무너져 내려버린 잔인했던 지난 여름의, 기억조차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날이 결국 돌아오고야 말았다”는 말로 시작하는 추도사는 먼저 떠난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부모는 “신규 교사가 겪어내야 할 성장통이라 여기며 크게 걱정하지 않았기에 지켜주지 못하고 딸을 잃은 고통과 슬픔, 저희 곁을 떠났다는 상실감은 아직도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을 파고 든다”고 적었다.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낸 적 없는 성실한 삶 그 자체를 살았던 아이라 이런 불행에 대해 하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갓 시작된 교사 초년생이었던 딸아이에게 벗어날 수 없었던 아픔은 무엇이었으며, 그 어디서 불어온 바람이 광풍이 되어 착실하고 성실하게만 살았던 딸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뽑아 조각조각 부셔버렸을까”라며 아픔을 토로했다.
이어 부모는 지난 1년 동안 함께 목소리를 내준 동료 교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그들은 “딸아이의 선택이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교육시스템의 문제이고, 이 나라 교육제도의 문제라고 길거리에 나서며 그동안 참고 인내했던 교육현장에서의 아픔들을 절절한 심정으로 한을 토해내듯 외쳐 주셨다”며 “수많은 선생님들의 지치지 않은 외침과 절규 속에서 순직이라는 큰 위로를 받았음에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부모는 “딸아이가 무엇을 바라는지를 생각하며 극복하고자 애쓰고 있으며, 슬픔에 휘둘리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와 본연의 삶을 사는 게 딸아이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강해지고자 노력도 하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딸아이 몫까지 더 씩씩하고 행복하게 살자는 오기 가득한 마음도 생긴다”며 재차 “한마음으로 지금까지 애써주신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20대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 민원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사들은 그동안 교육활동 침해를 겪으며 참아온 분노를 쏟아냈다. 사회적 공분이 일면서 ‘교권보호 5법’(교원지위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아동학대처벌법)의 개정 등 후속 조처가 이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는 추가 법 개정과 실질적인 대책 마련 요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아래는 추도사 전문.
딸아이 1주기를 추모하며
딸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슬프고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잘살고 있다고 여겼던 믿음직스러웠던 딸아이에게 벌어진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작년 7월, 세상이 무너져 내려버린 잔인했던 지난 여름의, 기억조차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날이 결국 돌아오고야 말았습니다. 억지로 꾹꾹 눌러놓은 감정들이 또다시 헤집고 끄집어내어져 먹먹하기만 합니다.
늘 든든한 장녀였고, 맞벌이 부모 밑에서 제 할 일은 묵묵히 알아서 스스로 하는 타입이었던 딸아이였기에 지친 모습을 보였을 때에도 이겨낼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신규 교사가 겪어내야 할 성장통이라 여기며 크게 걱정하지 않았기에 지켜주지 못하고 딸을 잃은 고통과 슬픔, 저희 곁을 떠났다는 상실감은 아직도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을 파고 듭니다. 좀 더 자상한 부모였더라면, 한 번 더 찾아가 손잡아 주었더라면, 딸 아이와 함께 한 시간들이 좀 더 많았더라면... 뒤늦은 회한과 자책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슬픔은 사랑의 또다른 표현이라는데 행복했었던 만큼 그 댓가를 치루는 것인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취약한지, 얼마나 덧없이 지나갈 수 있고, 얼마나 소중한지, 오늘 존재하지만 내일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지, 번뇌의 시간들을 겪어내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밝고 활달한 편이었으며 호기심도 많아 여러 방면에 다양하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손재주도 많아 그리기, 만들기, 악기 연주 등 다방면에 재능이 많았고, 여행도 잘 다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아이라 나름 열심히 살았습니다. 오케스트라 동아리 활동, 대만 학교와의 교환 실습, 제주 교대 교환 학생 1년 생활, 임용고시 바로 합격 ,졸업 후 기간제 협력 교사로 1년 재직, 서초구 초등학교 발령, 전문성 향상을 위한 대학원 공부 병행 등,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낸 적 없는 성실한 삶 그 자체를 살았던 아이라 이런 불행에 대해 하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발령통지서를 받아들고 기뻐하던 모습, 설렘 반 기쁨 반의 모습으로 급하게 짐을 꾸리고 서울 한 모퉁이에 방을 구하고 상기 된 얼굴로 “엄마, 아빠! 걱정하지마. 나 잘할 거야, 엄마 아빠도 화이팅” 을 외치던 대견스러웠던 아이를 뒤로하고 내려오던 그 때가 아직도 엊그제인 듯 선명합니다. 홀로 서서 사회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에 걱정은 되면서도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딸아이를 응원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교사로서의 첫걸음을 지켜보며 언제나 밝게 웃어주던 딸아이를 든든하고 안전한 방패가 되어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지켜줄 수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갓 시작된 교사 초년생이었던 딸아이에게 벗어날 수 없었던 아픔은 무엇이었으며, 그 어디서 불어온 바람이 광풍이 되어 착실하고 성실하게만 살았던 딸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뽑아 조각조각 부셔버렸을까요? 이제와 되돌릴 수도 없고 가슴 터지게 불러봐도 대답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슬픔과 아픔은 부모인 저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에 딸아이를 보내는 절차마저도 충분한 이별의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서둘러 보내야 했던 암담하고 절망적인 시간 속에서 헤매일 때, 많은 선생님들이 딸아이 가는 길에 함께 해 주시고 손 내밀어 위로해 주셨습니다. 또한 딸아이의 선택이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교육시스템의 문제이고, 이 나라 교육제도의 문제라고 길거리에 나서며 그동안 참고 인내했던 교육현장에서의 아픔들을 절절한 심정으로 한을 토해내듯 외쳐 주셨습니다. 수많은 선생님들의 지치지 않은 외침과 절규 속에서 순직이라는 큰 위로를 받았음에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누군가의 행동이 단초가 되어 사회적으로 큰 반향과 변화를 만들어낸 계기가 된 것에 위안 삼아 보려 하지만 딸아이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아직도 서툴 수밖에 없어 슬픔은 줄어들지가 않습니다. 상실감이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 마음을 헤집기에 아픔을 달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딸아이가 무엇을 바라는지를 생각하며 극복하고자 애쓰고 있으며, 슬픔에 휘둘리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와 본연의 삶을 사는 게 딸아이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강해지고자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딸아이 몫까지 더 씩씩하고 행복하게 살자는 오기 가득한 마음도 생깁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 속을 파고드는 슬픔과 고통의 무게를 느끼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실감이라는 날카로운 감정도 언젠가는 좀 더 무뎌지겠지요. 천천히 애써 숨을 고르고 오늘도 마주한 현실과 세상을 받아들이며, 주어진 시간 속을 꿋꿋하게 의연한 마음가짐으로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한마음으로 지금까지 애써주신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교육 현장이 아직도 바뀌어야 하는 게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라는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의 일상이 보다 안전하며, 교육 현장이 좀 더 밝게 변화되기를 마음 모아 기원합니다.
저희 딸아이의 추모를 위해 함께 해주시고 애써주신 많은 선생님들, 교사 단체들, 교육청 관계자님들과 교사유가족협의회에 감사드리며, 딸아이도 그 곳에서 평안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7월 18일
엄마 아빠 드림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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