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애 키워보니…‘엄마의 정보력’ 실감났죠”[물고기를 기르는 법]

정다슬 2024. 7. 2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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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 미호 한성대 교수
27년간 한국살이한 '워킹맘 외국인'
청춘 즐기는 일본 비해 韓청년들 너무 힘들어 안타까워
저출산 고령화 대책은 일본도 지지부진

[편집자 주] 3개월의 출산휴가와 1년 반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기자로 컴퓨터 앞에 섰습니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학적 변화 앞에서 우리 아이들이 미래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 지를 고민합니다. 아이들이 늙고 작아지는 대한민국이 아닌 더 큰 세상에서 살기 위한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재합니다. 본 기획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 좋을 기사, 국경을 넘어서 부모로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의 인터뷰,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실험 등을 다룹니다.

도이 미호 한성대 교수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워킹맘이고 외국인이기도 하니깐 제대로 아이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2013년 도쿠시마현 오우지 초등학교의 초등학생 3학년 시간표. 8시 10분 등교해 먼저 운동장을 10바퀴 뛴 뒤 교실로 들어간다고 한다. 경쟁이 아닌 체력 단련의 의미가 있다. 금요일 있는 와쿠와쿠 타임(두근두근 타임) 시간은 반 친구들을 위해 재미있는 기획을 하는 시간이다. (사진=도이 미호 교수님 제공)
12일 도이 미호 한성대 교수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잠깐’일 줄 알았던 한국 유학생활이 어느덧 27년. 결혼도 출산도 여기서 했다. 일본어 교수로서 많은 학생을 만나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알려주는 보람을 맛보고 서울 지하철 일본어 안내 방송의 목소리 주인공으로서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드는 성취도 이뤘다. 그러나 출산을 하고 아이를 어디서 키워야 하느냐는 선택지에 놓였을 때, 미호 교수는 큰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일본에서 키우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아이랑 떨어져야 했어요. 결국 아이는 부모랑 같이 있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에서 키우기로 결심했죠”

도이 교수는 결심은 했지만, 일본과는 닮은 듯 다른 시스템에 많은 괴리감과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가장 먼저 느낀 차이점은 학원을 많이 보내는 것. 그는 “일본은 학교에서 내는 숙제가 많고 학원은 많이 다니지 않아, 나도 학원을 많이 보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며 “막상 키워보니 한국은 그게 답은 아니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다행히 아이는 ‘알아서’ 잘했다. 좋은 성적으로 국제고를 갔고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다. 하지만 아이 성향이 ‘문과’가 아닌 ‘이과’ 쪽이었고 하고 싶은 공부도 그쪽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고 한다. “좀 더 빨리 아이의 성향을 파악해 지원해줬다면…” 도이 교수의 못내 아쉽고 미안한 부분이다.

진학고도 ‘부활동’ 즐기는 日vs‘진로 컨설팅’ 있는 韓

‘엄마’를 처음 해본 탓도 있겠지만, 일본 교육 시스템을 생각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것 역시 원인이었다고 한다. 도이 교수는 “조카가 도쿄대생인데 엄마가 교육열이 높은 편이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까지 농구부를 열심히 할 정도로 학창시절을 즐겼다”며 “한국은 부속 활동은 내신 관리의 일환으로 의미가 다르더라”고 말했다. 자녀가 명문대에 들어가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한국에서 ‘엄마의 정보력’ 부족도 실감했다. 그는 “주변을 보니 엄마들끼리 정보도 주고받고 학원에서 컨설팅도 받던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본에는 ‘진로 컨설팅이 없냐’는 질문에 “수험 컨설팅이 있긴 하지만 흔한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한성대학교에서 수업하는 도이 미호 교수.
일본 교육 시스템에서 자란 자신과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자란 딸. 좀 더 청춘을 즐기고 자신을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딸에게 일본대학을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도 했지만, 딸은 자신은 한국인이라며 한국 대학 진학을 희망했다고 한다. 그 결정에 불만은 없지만, 너무 치열하게 사는 이 시대의 청춘들이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도이 교수는 “일본은 3학년 때부터 취업준비를 하고 4학년 때 대부분 내정을 받는다. 고졸도 취업이 잘되고, 요즘은 고등학교와 전문학교를 합친 고등전문학교(高專)라는 것도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이른바 ‘사’자 직업에 대한 선호는 한국과 마찬가지이지만, 이보다는 적성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진학과 취업이 이뤄지는 편이라고 한다. 그는 “도쿄대를 간 조카가 충분히 이공계를 희망할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투자 쪽을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경영학과 쪽으로 갔다”며 “일본은 사립대보다 국공립대를 선호하고 진학도 네임밸류보다는 배우고 싶은 교수님이 이 학교에 계셔서 등 동기가 다양한 편이다”고 말했다.

반면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그가 느끼는 한국의 취업시장의 문은 좁기 그지없다. 그는 “장학금도 여러 번 받고 성적도 좋은 친구도 삼성 취업에서 떨어지더라”며 “다들 너무 열심히 하는데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인재 양성 난항…‘이과 여학생’ 늘리려는 노력도

일본의 실업률은 1990년부터 서서히 올라 2010년 정점을 찍은 후, 서서히 내려와 현재는 ‘완전고용’에 가깝다. 일본의 합계 출산율은 1970년부터 서서히 하락 추세로 2005년 1.26명을 기록한 뒤 소폭 반등했다. 다만 2023년 다시 1.26명을 기록했고 작년은 1.20명으로 최저치를 경신했다.
일본에서 최근 ‘뜨거운 감자’인 ‘5080 문제’도 화두에 올랐다. 5080문제란 1990년대 정상적인 사회 진출에 실패하고 히키코모리가 된 자녀가 50대가 될 때까지 80대인 부모의 연금에 의존해 사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2%대로 거의 ‘완전 고용’을 이루고 있는 일본이지만, 1990년 후반부터 서서히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의 여파가 당시 청년들을 덮치기 시작했고, ‘적령기’를 한번 놓친 이들이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려웠다.

특히 일본은 대학졸업 직후가 ‘슈카츠’(就活·취업활동) 적령기로 대학졸업은 물론, 이후 몇 년간 취업활동을 해도 이상하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다. 시기를 놓쳐 사회 진입에 실패한 이들을 그동안은 부모가 일해서 먹여 부양했지만, 그 부모들마저 이제 돌아가실 연령층이 되면서 이들이 다시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 당시 청년들이 사회진출에 실패하면서 출산율이 낮아지고, 부모가 되지 못하면서 다시 출산율을 낮추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의견도 있다.

도이 교수는 “지금도 히키코모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가정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국가적인 것으로 이어지지 못하니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일본 사회를 거울삼아 한국사회가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을 사회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출산고령화를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절실하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는 것이 도이 교수의 평이다. 그는 “학생 부족이 심각하다 보니 이를 채우기 위해 우수한 외국인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면서, 일본의 학기를 여타 선진국처럼 ‘봄학기’(일본 대학은 통상 4월에 시작)에서 ‘가을학기’(9~10월)로 옮기자라는 논의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됐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생산성 있는 인재로 탈바꿈시키려는 노력 역시 ‘공교육의 붕괴’ 앞에 위협받는 상황이다. 일본은 ‘몬스터 페어런츠’라고 불리는 부모의 과보호 및 교사에 대한 갑질 문제와 노동강도에 비해 적은 수입으로 교사에 대한 인기가 떨어진 지 오래다. 이에 정부는 ‘특별면허’ 발부를 통해 임용고시 통과 없어도 교원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50년 만에 교직조정액 인상 논의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의 기술·연구직 진출을 늘리기 위해 국립대를 중심으로 여성학생을 대상으로 이공계 전형이 생겼다고 한다. 미쓰비시UFJ리서치&컨설팅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전체 입학생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과는 30.2%, 공과는 15.2%에 불과하다.

도이 교수는 “저출산이 오랫동안 진행돼 왔지만, 일본은 이를 위한 교육적인 대비가 거의 안 되고 있다고 느낀다”며 “변화에 신중하다 보니 오히려 우왕좌왕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다슬 (yamy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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