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한 전공의들 "차라리 미국 가자"?…'내외산소' 종말 현실 되나
사직 전공의들에게 '마지막 부활 찬스'가 22일부터 주어진다. 정부는 이날부터 사직 전공의(7648명)에 대해 전국 수련병원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가을 턴)에 지원할 수 있도록 특례를 제공한다. 하지만 5개월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가 하반기 모집에 지원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만약 지원하더라도 인기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기피과로 꼽히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의 씨부터 마를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수련병원이 정부에 제출한 '가을 턴' 모집 인원은 7707명에 달한다. 복지부 산하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오는 22일 하반기 전공의 모집공고를 낼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각 수련병원은 병원 홈페이지에 전공의 채용 공고를 올리고 진료과별 모집 인원, 필기시험 및 실기시험 일정, 지원 자격, 시험별 배점 비율 등을 공개한다. 이들 병원에선 오는 31일까지 하반기 전공의 모집 원서를 접수한 후, 필기·실기 시험과 면접을 진행해 최종 인원을 선발한다. 선발된 인원은 9월1일 수련을 시작한다.
정부는 사직 전공의의 기존 전공과목, 연차, 지역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면서 이번 '가을 턴'에서 구멍 난 인력을 메꾸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마음이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동네 병·의원에 페이닥터로 취업하거나 직접 개원할 가능성, 미국 등 해외로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전공의는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을 더는 하지 않을 생각"이라면서 "친구들도 그렇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교수는 "사직 전공의 중 절반 정도는 개원가로 빠지거나 (전문의를 목표로 삼았더라도) 전공을 바꿀 것 같다"고 했다.
사직 전공의가 전문의의 길을 포기하고 일반의로 남는 경우 채용인력 시장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구직난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대한의사협회에선 전공의들을 위한 구인·구직 프로그램을 준비했지만 구인보다 구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개원의를 대상으로 채용을 독려할 것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의사회는 25개 각구의사회를 통해 구별로 수련병원과 매칭해 전공의들을 돕기로 했지만 사정이 녹록지 않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의협에서 분배한 기금을 전공의 지원에 써왔는데 오는 8월이면 소진될 예정이어서 재원을 마련할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구인과 구직을 연결해주는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일부 사직 전공의가 가을 턴에 지원한다 해도 피부과·성형외과 등 인기과로 빠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내·외·산·소' 등 필수의료 진료과의 사직 전공의가 지원할 가능성이 작게 점쳐지자, 필수의료 붕괴가 빨라질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필수의료 진료과 저년차는 적어도 70% 이상이 안 돌아오고, 고년차도 50% 정도는 각오하고 있다"면서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지났다"고 토로했다.
전공의는 주로 암·중증·희귀 난치질환 등 고난도 진료를 하는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해왔다. 특히 '빅5' 병원의 전공의는 전체 전공의(1만3531명)의 21%가량에 달했고, 병원 내 전체 의사 중 비중도 37%에 이르렀다. 그러나 상당수 전공의는 이번 사태로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깨진 데다 의사에 대한 적대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굳이 전문의를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신동규 서울적십자병원 외과 과장은 "외과 같은 필수의료 인력이 계속 줄어 지방·필수의료는 붕괴할 것"이라면서 "저비용 고효율 의료 시대의 종말이 왔다. 그나마 남아있는 필수의료 진료과 의사도 환자와의 신뢰가 깨어져 방어 진료와 소송전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참에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전공의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15개 주 정부 차원에서 외국 의대 졸업생이 미국 의사 면허 시험(USMLE)을 보지 않고도 의사 면허를 딸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거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사직 전공의의 절반 정도는 미국행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미국은 국내보다 환자를 적게 진료하면서도 연봉 수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MZ세대 전공의들이 과거 세대보다 영어·일어 등 외국어에 능숙해 언어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해외 진출을 고려하는 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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