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 ‘청년 공시족’의 분노…110여명 사망 ‘반정부 시위’ 불 당겼다
청년실업률 40% 불만…군발포로 110여명 숨져
대법 “신규 채용 93%, 할당제 미적용…일반 개방”
방글라데시 정부가 ‘독립유공자 후손 공직 할당제’ 반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에 발포 명령까지 내려 110명 넘게 숨졌다. 독립 유공자 후손 공직 할당제에 대한 격렬한 반발의 배경에는 방글라데시의 극심한 취업난이 배경이다.
20일(현지시각)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등 주요 도시 길목에는 군 병력이 동원되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장갑차 등을 동원해 거리 순찰을 벌이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방글라데시 당국은 이날 정오부터 2시간 동안 주민들이 생필품을 살 수 있도록 통행금지령을 잠깐 해제했다가 다시 통행금지령을 복원했다. 집권여당인 아마미연맹의 사무총장 오바이둘 쿼더는 “군 병력에 극단적인 경우에는 시위대를 겨냥해 발포해도 좋다고 허용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도 오후 들어서면서 주거 밀집 지역인 람푸라에서 몇천명이 거리로 나섰고, 이에 경찰이 최루탄과 고무탄 등을 사용하며 해산에 나서는 등 시위가 이어졌다.
앞서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는 20일 자정부터 21일 오전 10시까지 전국에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경찰의 치안유지를 돕기 위해 주요 도시 거리에 군대를 배치하라고 명령했다. 하시나 총리는 21일 출발할 예정이었던 스페인과 브라질 등의 해외 방문 계획도 취소했다. 외신들은 이번 시위가 2009년 집권 이후 15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러온 하시나 총리에게 최대 정치적 위기가 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애초 이번 시위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에게 공직의 30%를 할당하는 제도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대에서 시작했다. 독립유공자란 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에서 독립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을 때 참전해 공적을 세운 이들을 말한다.
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작된 시위는 16일부터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전국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방송사와 경찰서 등 정부 시설을 습격하고 불을 질렀다. 현지 언론은 시위대가 수도 다카 북부의 나르싱디 지역 교도소를 습격해 수감자 800여명이 탈출했다고도 전했다. 시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할당제 반대 시위에서 점차 반정부 시위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경찰 병력을 동원해 최루탄과 고무탄 등을 쏘며 강경 진압으로 맞섰지만, 상황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격렬해지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정부는 공식 사망자와 부상자 숫자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외신들과 현지 언론은 숨진 이가 100명이 넘는다고 보도하고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자체 집계로 적어도 133명이 숨졌다고 보도했고, 로이터는 사망자가 적어도 114명은 넘는다고 전했다.
또 당국은 핸드폰과 인터넷 서비스를 전격 중단해 전국의 온라인 통신을 마비시켰다. 이에 따라 국영 방송도 일부 프로그램 송출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주요 현지언론들의 누리집이 대부분 작동되지 않았다.
시위대는 독립유공자 할당제가 차별적이며 1971년 독립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집권 여당 지지자들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방글라데시 정부는 독립전쟁에 참전한 유공자들이 정파와 무관하게 합당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공무원 할당제는 방글라데시 독립 직후 독립 유공자와 여성 등에 공직 일정 비율을 배정하는 형태로 시작됐다. 하지만 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2018년 대규모 학생 시위 뒤 하시나 총리가 행정명령을 내려 폐지됐다. 그러나 지난달 다카의 고등법원이 ‘할당제를 복원해달라’는 독립전쟁 유공자들의 청원에 대해 “정부의 폐지 결정은 무효”라고 결정해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시위가 격렬해지자 21일 오후 공무원 할당 제도 대부분을 폐지하라는 요지의 판결을 내렸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공무원 신규 채용 93%는 할당제를 적용하지 않고 일반에 개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통신은 전했다.
격렬한 시위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방글라데시의 청년 실업률이 40%에 이를 정도로 일자리 부족이 심각하다는 데 있다. 특히 공무원은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아, 해마다 40만명의 졸업생이 공직 3천개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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