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피격으로 본 저격수의 세계..."600m 거리 한 발이면 충분, 1㎞ 밖에서도 명중"[문지방]
아덴만 여명 작전서 입증된 'K저격'의 능력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 유세 연설 도중 피격당했습니다. 총격범이 쏜 8발의 총알 중 한 발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오른쪽 귀를 관통했습니다. '포인트 컨셔스니스'라는 유튜브에 올라온 피격 당시 3차원 분석 영상을 보면, 총알은 관자놀이를 겨냥해 날아갔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단 1㎜ 차이로 빗나갔습니다. 아찔한 상황이었고, 하늘(God)이 도운 덕에 목숨을 구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격으로 비밀경호국의 책임론이 제기됐습니다. 비밀경호국도 경호 실패를 인정했습니다. 경호 저격 요원이 범인을 사살했지만, 총을 쏘도록 허용한 것 자체가 명백한 경호 실패였기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한 총기 전문가 태상호씨는 "경호의 핵심은 장거리 저격이 가능한 1㎞ 반경의 경계망 내에 무기를 가지고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사건이 터지면 경호는 실패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총격을 시도할 법한 장소를 사전에 파악해 경호원을 배치하거나 건물 입구를 봉쇄해야 하는데, 비밀경호국은 이를 소홀히 했습니다. 연단에서 불과 130m 떨어진 창고 건물을 상대적으로 보안이 느슨한 지역 경찰에게 맡긴 겁니다. 경찰은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진작에 받았지만, 결국 대처하지 못했죠.
VIP 경호는 3선이 원칙… 대저격 작전 반경은 1㎞
그렇다면 피격에 대한 우리나라의 VIP 경호는 어떻게 이뤄질까요? 경호 체계는 보안 사항이라 세세한 내용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총격을 포함한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을 수립해 실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VIP 경호도 미국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먼저 경호는 VIP와 가까운 순으로 1선, 2선, 3선으로 구분됩니다. 1선은 근접 경호를 하는 수행팀입니다. 총격 사건이 발생할 경우 범인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VIP를 대피시키는 게 최우선 임무입니다. 총성이 울리는 즉시 자신의 몸으로 VIP를 감싸고 단상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이죠. 2선은 방탄복과 헬멧 등으로 중무장한, '캣팀'(CAT·Counter Assault Team)이라 불리는 공격대응팀입니다. VIP 주변을 둘러싸면서 추가적인 공격을 방어하는 동시에, 육안으로 확인되는 적을 무력화하는 역할입니다.
진짜 반격은 3선의 저격대응팀의 몫입니다. 저격수를 잡는 저격수인 셈이죠. 이들은 사전에 범인의 입장이 돼서 VIP 행사 장소 반경 1㎞ 이내에 저격이 가능한 곳을 탐색합니다. 그리고 미리 그 공간을 점유하거나, 아니면 그곳에 범인이 나타날 경우 저격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해 둡니다. 행사 중에는 조준경을 통해 원거리 감시를 지속하면서,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범인의 위치를 확인해 공격하고 사살하는 임무가 주어집니다.
트럼프 암살 시도범은 저격범일까?… 총격과 저격의 차이
사건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범인은 총격범일까요, 저격범일까요? 기사마다 혼용돼 있어 확인해봤습니다.
먼저 저격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대상을 노려서 총을 쏘는 행위'를 뜻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도 '저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조준경을 갖춘 뛰어난 성능의 저격총을 사용해 원거리에서 표적을 맞히는 것과는 차이가 있죠.
군 관계자에 따르면 총격은 일반적으로 권총, 소총 등을 사용해 통상 460m 이내에서 이뤄집니다. 일종의 근접 사격으로, 기본적인 총기사용 기술만 갖추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저격은 다릅니다. 특수한 저격총과 그에 맞는 직진성이 좋은 탄환을 사용하며, 소총의 사거리 밖에서 매우 정밀하게 목표를 타격하는 고도로 전문적인 기술을 요합니다. 통상적으로 약 600m 내외, 원거리 저격은 800m~1㎞, 초장거리 저격은 1.2~1.5㎞에서 이뤄집니다. 그래서 경호의 범위도 1㎞를 기준으로 삼곤 합니다. 참고로 북한 호위총국의 경호 범위도 1㎞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격수는 '기술자'의 영역입니다. 바람의 방향과 속도, 온도와 습도, 눈·비 등 날씨, 이동하는 표적의 예상 경로, 심지어 지구 자전에 의한 코리올리스 효과(물체가 북반구에서는 오른쪽으로, 남반구에서는 왼쪽으로 미세하게 휘어지는 현상)까지 감안해야 합니다. 그래서 원거리 저격의 경우 사수와 관측수가 한 팀이 돼 관측수가 알려주는 정보에 따라 오조준을 하고, 사격을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물론 '트럼프 피격' 사건의 범인을 총격범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LA 경찰 등에 따르면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저격은 100m 정도라고 합니다. 개활지에 비해 방해 요소가 많기 때문입니다. 비록 전문적인 장비와 기술을 익히지 않았더라도, 이 기준을 적용한다면 저격범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닌 듯합니다.
아시아권 최초 미 국제 저격수 대회 참가한 K저격
범인을 제압한 건 경호 저격수였습니다. FBI에 따르면, 범인이 첫 발을 쏜 지 11초 만에 저격수가 목표물을 찾아냈고, 이후 15초 만에 범인을 사살했습니다. 26초가 걸린 셈입니다. 태 기자는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저격수의 능력 외에 정치적 결정도 변수로 작용한다"며 "일반 저격 작전에서 26초는 대응이 늦었다고 볼 수 있지만, 정치적인 자리에서는 충분히 걸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저격수의 능력은 정확한 사격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국제 저격수 대회에 아시아권 최초로 우리 육군 저격팀이 참가했는데, 사수인 1군단 특공연대 '흑표범연대' 소속 박대운 상사에게 저격수에게 요구되는 능력과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 물어봤습니다.
미국 대회에서는 총 15개 종목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습니다. △소총·권총·저격총 사격 및 이들을 동시에 운용하는 복합 사격 △장소를 옮겨가며 표적을 제압하는 '건물 내부 이동 사격' △제한 시간 내 다수 표적 제압 △이동 표적 사격 △주어진 목표물에 대한 침투 및 표적 식별 △장거리 사격 등이 포함됐습니다.
박 상사는 "사격 진지를 계속 이동하면서 고정 및 이동 표적에 사격을 하는 종목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미국 사격장은 한국 사격장에 비해 좌우 폭이 평균 8배 이상 넓기 때문에 첫 진지에서 사격한 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거친 호흡과 빠른 심박 때문에 정확한 조준 사격도 어려웠을 테죠.
박 상사는 또 "특히 이동 표적은 실제 사람의 옆모습 형태의 로봇 표적으로, 노출 범위가 작고 속도와 방향이 지속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사격이 매우 어려웠다"고 토로했습니다. 반면 장거리 사격은 가장 자신 있었고, 실제로 좋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박 상사는 "평소 바람을 읽는 훈련과 관측수가 탄을 추적하는 훈련을 통해 탄도값을 계산하는 연구를 꾸준히 했다"고 말했습니다.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는 유명 영화의 대사처럼 말입니다.
베트남전 땐 일반 전투원 5만 발 vs 저격수 1.7발… 아덴만서 빛난 'K저격'
그래서인지 저격수에게는 '사살' 외에도 정찰 및 정보 수집 임무가 함께 주어집니다. 아군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전략적 이점을 확보하기 위해서죠. 정찰에 적합한 위치까지 침투하기 위해 저격수는 저격총뿐만 아니라 권총 훈련까지 받는 것입니다. 또 "훌륭한 저격수는 자기가 원하는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저격수"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확률이 떨어지는 원거리 저격보다, 단 한 발로 적을 확실히 제압하는 게 저격의 핵심이기 때문이죠.
박 상사는 저격수 임무를 수행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으로 '사격 전 준비 단계'를 꼽았습니다. 박 상사는 "길리슈트(위장복)를 입고 침투하는 과정에서 인내심,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하다"며 "무더위나 영하의 날씨에서 긴 시간 대기하면서 표적에 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저격수 교육과정에서 길리슈트를 입고 기어서 침투하던 중 붉은 불개미에 물려 극심한 통증을 겪었는데, 이를 참으면서도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했다"며 "육체적·정신적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비로소 저격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격수의 힘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됐습니다. 일반 전투원이 적 한 명을 사살하는 데 1차 세계대전 때 7,000발, 2차 세계대전 때는 2만5,000발, 베트남전쟁에서는 5만 발의 총알이 소요됐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전에서 저격수가 적 한 명을 저격하는 데 사용한 총알은 1.7발에 불과했습니다.
'K저격'도 실전에서 위용을 뽐낸 적이 있습니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을 상대로 펼친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였습니다. 당시 청해부대 소속 저격수들은 헬기에 탑승한 채 인질을 보호하면서 정확히 해적을 무력화했습니다. 바람의 영향에도 민감한 저격을, 흔들리는 헬기에 탄 채로 헬기 프로펠러의 하강기류를 감안해 배 위에서 둥실거리며 움직이는 표적을 향해 정확히 구사한다는 건 극도로 어려운 작전입니다. 명중이 아니라 무력화에 방점이 찍힌 이유입니다. 저격수의 엄호 덕분에 대원들은 무사히 삼호주얼리호에 승선해 해적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보통 헬기 탑승 저격은 300m 거리에서 이뤄진다고 합니다.
5년간 저격수 임무를 수행 중인 한 육군 중사는 "유효 사거리 내 모두 명중이 가능할 만큼 자신이 있다"면서 "그중에서도 7.62㎜ 구경 기준으로 660m 거리에 있는 표적은 백발백중으로 맞힐 자신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멋있게만 보이던 저격수가 얼마나 극한 훈련을 받고, 혹독한 환경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전 성공을 위해 활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저격수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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