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신도시' 수출 마중물 된 대우건설의 '10년 적자사업'
하노이서 국내 첫 민간 한국형 도시개발사업
시간과의 싸움 버텨…이젠 현지 교두보 역할
"해외에 제2, 제3 '스타레이크시티' 개발할 것"
[하노이=김미리내 기자] 1991년. 한국이 베트남과 수교를 맺은 1992년보다 1년 앞서 베트남의 문을 두드린 기업이 있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당시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대우건설 지사를 설립하고 사회공헌사업부터 시작했다.
기회의 땅이 될 베트남의 미래를 내다보고 진출의 발판을 다진 것이다. 정부를 대신해 민간 외교의 첫발을 뗀 시도였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대우건설은 베트남에 국내 최초 민간주도 한국형 해외 신도시 '스타레이크 시티' 개발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에 이후 진출한 국내 기업들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준 것도 '대우'의 역할이었다. 이러한 김우중 전 회장의 '유산'을 이어받아 베트남 신도시 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을 베트남 하노이 L7호텔에서 만났다.
'하노이의 강남' 초대형 도시개발 프로젝트
베트남 스타레이크 시티(Vietnam Star Lake City)는 '하노이의 강남'을 목표로 대우건설이 기획과 토지보상, 인허가, 자금조달과 시공, 분양 및 운영까지 도시개발 전 과정을 민간 주도로 진행한 한국형 해외 도시개발사업의 첫 사례로 꼽힌다.
하노이 도심 북서쪽 서호 일대에 자리 잡은 스타레이크 시티는 여의도 면적 3분의 2 크기인 약 186만6000㎡ 대지 위에 주거·상업·행정·업무·교육·문화·의료 기능을 아우른 복합 신도시로 재탄생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이곳이 향후 정치, 산업, 외교, 주거의 신중심지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은 "(2021년 중흥이) 대우건설을 인수하고 베트남에 왔을 때 베트남 사람들이 친근감 있는 형제 같은 마음으로 대해주며 '대우'에 찬사를 보내줬다"면서 "대한민국을 대신해 민간외교를 대신해 준 회사라고 생각했고 김우중 전 회장의 정신을 받아들여 '대우'란 이름도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타레이크 시티는 지난해까지 총 사업비 31억달러가 투자된 사업이다. 현재 환율로 4조3100억여원이다. 2014년 1단계 사업, 2019년 2단계 사업을 착공했고, 현재 2단계 잔여부지 보상과 인프라 공사를 동시에 진행 중이다.
지난해 4월에는 베트남 정부가 구도심의 정부 부처를 스타레이크 시티 사업지 내로 이전하는 마스터플랜을 승인했다. 우리 건설사가 조성한 도시개발사업 부지에 2035년까지 13개 중앙부처가 순차적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를 내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정 회장은 "18년 전 스타레이크 시티 사업을 시작할 때는 5개 업체가 들어왔지만 나중에 사정이 어려워지자 대표회사인 대우건설이 모든 것을 인수했다"면서 "이후 10년간 대우가 적자를 메웠다. 해외 건설은 인허가가 어려움으로 꼽히지만 실상은 이보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고 설명했다.
적자 회사를 이끌고 10년. 그러나 베트남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규모 주거시설과 오피스 시설이 필요해졌고 스타레이크 시티가 요지로 떠올랐다. 기다림의 시간이 성공의 디딤돌 역할을 했다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스타레이크 시티가 베트남에서 갖는 상징성에 대해선 '새로운 도시'의 탄생이라고 답했다. 정 회장은 "스타레이크 시티는 정부 13개 부처가 들어온다. 국회 일부도 넘어온다. 나라의 대부분 부처가 스타레이크 시티에 모이게 되는 것이다. 도시 자체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국내와 같은 공사비 상승 문제에 따른 악영향도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원주 회장은 "개발사업은 망할 수도 있고 흥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지가 상승 시 이익이 커지고 원자잿값 상승과 집값이 내려가면 손해가 크게 날 수 있지만 베트남은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리가 높고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회사도 적어 지가나 집값이 하락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베트남은 매년 5~7%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고 이에 맞춰 지가가 상승해 공사비와 자잿값이 오른다고 사업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지 반응도 뜨겁다. 스타레이크에 위치한 1층엔 사업시설 2~3층은 주거시설을 갖춘 '샵하우스'는 7~8년 만에 가격이 두 배 수준으로 뛰었다. 늦게 분양한 아파트 역시 가격이 80% 가량 뛰었다. 공급이 부족한 만큼 가격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강남 못지않은 가격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성공사례는 '스타레이크=대우'라는 인식이 현지에 자리 잡도록 했다. 정 회장은 "스타레이크하면 대우, 대우하면 스타레이크라는 인식이 잡혀 베트남에서 좋은 땅을 가진 회사들이 계속해서 대우에 연락이 온다"며 "새로운 기회들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포화시장 벗어나…제2의 스타레이크 찾아야
정원주 회장은 포화된 국내 시장을 벗어나 국내 건설사들이 계속해서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대한주택건설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 회장이 회원사들과 함께 베트남 투자개척단을 꾸려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와 푸꾸옥 일원 주택건설현장을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 회장은 " 베트남엔 한국처럼 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체)들이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수만개 시행사가 있지만 여긴 전부 100개가 안 된다. 그래서 해외가 답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 때문에 베트남에 함께 왔으며, 회원사들에게도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국내 건설업은 현재 수주사업에서 투자개발사업으로 전환하려는 전환점에 있다. 대우건설은 베트남에 이 같은 물꼬를 트고 가장 앞서 발을 내디딘 건설사다.
그는 "회원사들이 스타레이크 시티를 직접 보고 대우와 함께 베트남사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회사들도 많았다"면서 "아무런 바탕 없이 진출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이미 베트남에 정착해 있는 만큼 손해나 위험부담 없이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완전히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원주 회장은 인허가 등의 어려움에 대해 "노하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 기업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2010년~2011년 대우도 베트남에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고 이후 15년을 투자만 하며 적자를 견디는 시간을 가졌다. 하노이나 호찌민에서 외국인들이 토지이용권을 사지 못하게 하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을 가지고 기다렸고 지금은 경제자유구역을 다시 열어주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스타레이크 시티 성공을 기반으로 글로벌 도시개발사업에 적극 뛰어들 계획이다. 제2, 제3의 스타레이크 시티 건설을 세계 무대에서 추진 중이다. 2~3년 안에 이 같은 계획들이 순차적으로 현실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을 넘어 개발, 금융, 인프라, 에너지를 아우르는 종합 디벨로퍼가 대우건설의 미래다.
정 회장은 "중흥그룹 역시 원래 도시개발 사업을 한 회사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한 축으로 대우건설의 도시개발사업을 추가로 진행하려고 하고 있다"면서 "북미와 캐나다(아파트 사업)의 경우 계약단계에 있고 이후 나이지리아에서도 호텔과 하이엔드(고급) 주거단지를 짓는 걸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리내 (panni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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