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번엔 “김정은에게 ‘양키즈 야구 보러 가자’ 제안했었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4. 7. 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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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선 “핵무기 많은 자와 잘 지내는 게 좋아”

미국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시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미국에서 함께 야구 경기를 보자고 제안하며 긴장 완화를 유도했다고 20일 밝혔다. 지난 18일 공화당 전당대회 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하면서 “나는 김정은과 매우 잘 지냈다”고 언급한 데 이어 이틀 만에 거듭 친(親)김정은 발언을 한 것이다. 트럼프가 다시 당선될 경우 1기(2017~2021) 때 이뤄진 미·북 정상회담에 이어 다시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는 이날 대선 주요 경합주(州) 중 하나인 미시간주의 그랜드래피즈를 찾아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Vance)와 첫 공동 유세를 했다. 그는 “대통령 시절 핵무기만을 원하는 김정은에게 ‘긴장 좀 풀고 좀 느긋하게 있어라(just relax, chill). 당신은 충분히, 너무 많은 핵을 갖고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북한과 대화를 단절한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북핵 위협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의미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바이든이 고령 논란으로 당 안팎에서 사퇴 압박을 받고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한 ‘트럼프 2기’의 국제 정세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지난 19일 발표하면서 (당선 시) 교착 상태에 빠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방안을 논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이 20일 주요 경합주 미시간에서 야외 유세를 갖고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부통령 후보 JD밴스. 트럼프와 밴스가 야외 유세에 나선 건 이날이 처음이다. /로이터

트럼프는 지난 18일 전당대회 때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를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 언급한 데 이어 20일 유세 때도 “나는 (대통령 재임 때) 김정은과 잘 지냈다”고 했다. 당선되면 북한과 대화를 적극적으로 재개할 방침도 시사했다. 트럼프는 이날 “김정은은 핵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대통령이었을 당시 여러분은 결코 위험에 처할 일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김정은에게 (핵 도발 말고) 다른 것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하곤 했다. 그에게 ‘긴장 풀고 야구 경기나 보러 가자. 내가 야구를 가르쳐주겠다. 우리는 양키스(뉴욕 프로야구팀)

경기를 보러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미시간의 유권자들을 겨냥해 “우리는 시즌 첫 홈 게임 때 미시간에 와서 경기를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미시간은 MLB(미 프로야구)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있는 곳이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과 이 대화를 나눈 시점 등 세부 사항은 공개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앞서 지난 18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의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나는 북한 김정은과 아주 잘 어울렸다. 김정은도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 했다. 사전에 작성된 연설문에는 없던 즉흥적인 발언이었다. 트럼프는 “언론들은 내가 그렇게 (김정은과 친하다고) 말했을 때 ‘어떻게 그런 자와 잘 지낼 수 있었느냐’며 싫어했다. 글쎄, 핵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과 잘 지내면 좋은 일”이라고도 했다.

그래픽=이철원

트럼프는 과거에도 김정은과 ‘좋은 관계’였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왔다. 대부분 자신의 대북 대화 시도를 부각하려는 맥락이다. 대선 후보 경선 중이던 지난 3월엔 “북한은 심각한 핵보유국이지만 김정은과 우리는 좋은 사이였다”라고 했고, 지난 6월 바이든과의 첫 TV 토론 때는 “(나와 달리) 바이든은 김정은을 한 번도 압도하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이 김정은을 ‘상대 못 할 잔인한 독재자’로 비난하는 것과 달리 “매우 강한 사람”(5월 유세)이라거나 “똑똑한 남자”(6월 인터뷰)라고 김정은을 추켜세운 적도 있다.

김정은을 언급하는 맥락이나 기조가 최근 들어 바뀐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점점 커지면서 발언의 무게감은 차원이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한편 미 언론들은 전당대회 연설 ‘팩트 체크(사실 확인)’ 등을 통해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을 알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당대회 직후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기는 했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실제로 2018~2019년 싱가포르, 베트남 하노이, 판문점 등에서 김정은과 만났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은 제재 완화 및 핵개발에 대한 이견으로 파국을 맞았고 이후 대화가 일시적으로 재개됐지만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진전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와 북한이 밀착하며 무기를 공급하고 이에 유엔 대북 제재 위반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어, 미·북 관계가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빠른 진전을 보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많다.

여러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한국 정부로서는 트럼프의 김정은 옹호 발언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교부는 “미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있더라도 대북 외교에 대한 한미 간 조율이 있을 것”이란 원론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미 동맹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미국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모두 동의하고 있다”며 “미 대선 이후 행정부 교체가 있을 경우 미국의 대북 접근법이 달라질 수 있지만 한국의 국익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인 외교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외교부 내부적으로는 트럼프 재선 시 한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 미군 감축 주장과 함께 북핵을 단계적으로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를 일정 부분 묵인해 주는 타협적 조치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집권 1기에도 한국을 위협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사실상 미국이 묵인했다”며 “트럼프 집권 2기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해칠 수 있는 타협안을 북한과 협상하지 않도록 미국 정치권에 지속적으로 우리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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