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배우’ 황정민의 맥베스는 순박, 사악, 오만, 광기 다 있다
한국 영화·드라마의 꾸준한 관객이라면 ‘황정민 스타일’의 연기를 대략 그릴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황정민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때로 야비했다가(<서울의 봄>), 때로 짜증냈다가(<수리남>), 때로 정의로웠고(<베테랑>), 때로 속 깊었다(<신세계>). 많은 작품에 나온데다가 그 중 많은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기에, ‘황정민 스타일’의 신선함이 떨어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황정민은 영리한 배우다. 매체를 가리지 않고 대중이 기대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해 표현한다. 영화계의 깊은 불황 속에서도 지난해 <서울의 봄>은 1300만 관객을 동원했고, 황정민의 전두광 연기도 호평받았다.
다음달 18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맥베스>는 황정민의 2년 만의 연극 복귀작이다. 워낙 유명한 셰익스피어 작품이라 초점은 ‘황정민의 맥베스’가 어떻게 표현될지에 맞춰진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맥베스>는 ‘검고 깊은 욕망’에 의해 스스로 파멸로 치닫는 사람들을 그린다. 맥베스는 승전의 기쁨에 취했다가, ‘왕이 된다’는 마녀의 예언을 반신반의하다가,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덩컨 왕을 죽이고, 양심의 가책에 조금씩 미쳐간다.
이 변화무쌍한 맥베스를 황정민은 찬스에 강한 타자처럼 효율적이며 집중력있게 연기한다. 관객이 장면마다 순박, 사악, 오만, 광기 등의 열쇳말을 쉽게 떠올리게 하는 친절한 연기 스타일이다. 그런 테크닉이야말로 황정민이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비결일 것이다.
양정웅 연출가, 여신동 무대미술가는 베테랑다운 실력을 선보였다. 객석 통로를 배우 동선으로 적극 활용해 대극장 연극에 대한 몰입감을 강화했다. 관객 머리 위를 나는 불길한 까마귀떼는 간단한 장치로 효과적인 표현을 만들어낸 한 사례다. 극의 처음과 마지막을 책임지는 세 마녀는 남성 배우들이 맡아 주로 기괴하되 가끔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창출했다. 현대적 의상, 소총, 게임기, 화상통화 등 요소를 넣어 시대 배경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피처럼 붉은 조명이나 신경질적인 녹색 조명이 번갈아 나오며 분위기를 순식간에 뒤바꾸기도 한다. 피투성이로 나타난 죽은 뱅코(송일국)가 연회 한 자리를 차지한 채 소리 없이 입 벌리고 웃는 장면은 공포영화를 방불케한다. 무대를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는 연회용 대형 테이블이나 음산한 대형 샹들리에는시각적 불안감을 자극한다.
김소진이 레이디 맥베스를 연기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냉정하고 철저한 전략가로 그려졌다. 송영창이 덩컨 왕, 남윤호가 맥더프 역으로 출연한다. 주요 배역은 모두 원 캐스트로 출연한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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