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집배원입니다. 카드 어디로 배송해드릴까요?” 보이스피싱이었다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전화 번호가 걸려 왔다. “우체국 집배원인데요. ○○카드 신청하셨죠? 어디로 배송해드릴까요?”
A씨가 카드를 신청한 적이 없다고 하자 집배원은 말했다. “명의도용 피해를 당하신 것 같은데 카드사 번호 알려드릴 테니 전화해보세요.” 다시 전화를 거니 고객센터에선 휴대전화를 원격으로 제어하는 앱을 설치하도록 했다. “명의도용 피해가 확인되었습니다. 금융감독원 대표번호로 전화해보세요.”
이 ‘금감원 직원’은 A씨 명의가 도용돼 중고거래 사기에 이용됐고 피해자 70여명이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 금감원 직원에세 ‘검찰청’ 대표번호를 안내받아 전화를 걸었다. 검찰청에선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된다”며 “새 휴대폰을 개통해 연락하고 불법 자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예·적금을 모두 해지해 지정 계좌로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 A씨는 약 7억원을 전달한 뒤에야 우체국, 금감원, 검찰청 직원들이 모두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원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체국 집배원이나 택배기사 등으로 속여 접근하는 방식의 보이스피싱 수법이 등장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런 수법의 특징은 원격제어 앱 설치를 유도한다는 점이다. 원격제어 앱은 보통 서비스 업체가 고객의 휴대전화 등을 원격으로 조작해 고장을 수리하거나 필요한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데 쓰인다. 사기범들은 이 앱을 이용해 피해자 휴대전화를 불법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악성 앱을 몰래 설치한다.
이렇게 되면 사기범이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 때에는 정상적인 대검찰청 등 기관의 대표번호가 화면에 표시되고 휴대전화의 모든 정보가 탈취된다. 범행 마지막 단계에서 대화 내용을 삭제시키는 등 증거를 인멸하는 용도로도 쓰여 수사를 어렵게 한다.
또 다른 특징은 피해자에게 새로운 휴대전화의 추가 개통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사기범은 피해자가 새로 개통한 휴대전화로만 연락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도록 지시한다. 외부와의 소통을 끊어 범행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수법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법이 다양해졌지만 최종적으로 검찰청 직원 등으로 속여 금전을 요구하는 수법은 일반적인 보이스피싱 사례와 같다”며 “수사기관은 절대로 보안 유지 목적으로 원격제어 앱의 설치 또는 휴대전화의 신규 개통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드 발급이나 상품 결제 등 본인이 신청한 적 없는 전화를 받으면 일단 끊고, 연락받은 전화번호가 아닌 해당 기관의 대표번호나 112로 전화해 보이스피싱 여부를 확인해 달라”라고 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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