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공의 처리 두고 복지부·수련병원 '엇박자'…의료개혁 차질 빚나
보건복지부와 수련병원 간 '엇박자'로 의료공백 해결이 더욱 요원해졌다. 1만3000여명의 전공의 중 사직 처리도 복귀하지도 않은 전공의가 40%에 달한다. 복지부는 전공의 사직·복귀의 책임을 병원에 떠맡겼고, 수련병원은 사법 리스크와 의대 교수들의 반발에 '파행 운영'을 선택했다는 비난이 인다.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8일 오전 11시 기준 전국 수련병원의 총 1만3756명의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중 1167명(8.5%)만이 병원에 출근했다. 7648명(약 55%)은 정부가 각 병원에 전공의 사직·복귀를 확정해달라고 한 지난 17일 기준으로 사직이 처리됐다. 나머지는 여전히 사직 처리도 되지 않고 병원에도 돌아오지 않은 '미복귀 전공의'다.
복지부는 각 수련병원에 전공의 사직 처리를 두 차례에 걸쳐 요청했다. 6월 30일에서 7월 15일 마감으로 보름을 더 늘렸다. 사직 처리를 하지 않은 병원은 내년도 전공의 정원 감축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직이 처리되지 않은 '미복귀 전공의'가 아직도 많은 건 복지부와 병원 사이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복지부는 전공의 사직 처리를 통해 하반기 모집 시 총지원자가 증가하길 바랐다. 사직서가 처리돼야 각 병원의 전공의 정원이 비고, 하반기 모집 인원과 지원자가 모두 늘 수 있다. 더 많은 전공의를 복귀시키기 위해 1년 이내 동일 과목, 동일 연차로는 수련받을 수 없다는 규정을 완화하고 권역 제한을 풀기도 했다. 다른 지역 병원, 원하는 진료과를 선택해 수련받을 수 있게 '특혜'를 제공한 것이다. 사직한 전공의가 대학병원에 복귀하지 않아도 1·2차 병원에 취업하면 전반적인 환자 수용 역량이 강화될 것이란 계산도 있었다.
반면에 수련병원, 특히 지역 병원은 사직 처리로 인한 이익이 그다지 크지 않다. 우선 권역 제한이 풀리면서 사직 전공의가 지역을 떠나 빅5 병원 등 수도권으로 몰려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 사직 처리율이 낮은 수련병원은 대부분 수도권 외 지역에 있다. 익명을 요청한 지역 A 대학병원장은 "하반기 전공의를 모집해도 다 채우지 못할 것이란 게 중론이었다. 이탈한 전공의를 기다리겠다는 게 모든 교수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고 말했다.
사직 시점에 따른 '사법 리스크'도 사직 처리를 미룬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제출한 2월을 기준으로 처리를 요구하는데, 이를 수용하면 "7월까지 밀린 월급을 달라"며 병원에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다. 정부가 6월 4일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을 철회해 이를 기준으로 수리하는 게 병원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지만 이를 선택하기도 쉽지만은 않다. A 병원장은 "6월로 사직서를 수리했는데 하반기 복귀하지 않으면 특례 적용을 못 받는다. 내년 3월에도 못 돌아오고 최소 6월 이후 수련을 재개할 수 있다"며 "남성 전공의는 군대도 가야 하는데 후배의 장래를 망치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사실 권역 제한과 사직 수리 시점에 관한 문제는 일찌감치 제기됐었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는 이달 초 정부에 2월 29일자로 전공의 사직서를 일괄 수리하고, 권역별로 제한을 둬서 지역의료를 살리자고 건의했었다. 하지만 복지부는 "병원과 전공의 당사자 간 법률관계는 정부가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면서 전공의 처분 시점을 병원 재량에 맡겼다. 또 "전공의가 1명이라도 더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로 권역 제한마저 해제했다. 병원계의 요청을 모두 거절한 것이다.
전문의 중심 병원, 일반·중증 비율 조정 등 정부의 의료 개혁이 수련병원을 '정조준'하는 상황에 전공의 사직 처리를 기점으로 병원과 정부 간의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모든 병원의 병원장은 의사이기도 하다. 실제 서울대·부산대·경북대·전남대·전북대병원 등 적지 않은 수련병원은 사직자 대비 하반기 전공의 모집 신청 인원이 매우 적은데, 이를 두고 "병원이 정부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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