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휴가'도 반납하고, '방출 통보'에도 선발 등판…끝까지 진심 켈리, "LG는 내 마음에 특별한 존재"
[OSEN=잠실, 한용섭 기자] 이런 외국인 선수가 또 있을까.
치열한 순위 경쟁일 때는 출산 휴가도 마다하고 팀에 헌신했다. 그렇게 6시즌 동안 LG 유니폼을 입고 뛴 외인 투수는 구단의 방출 통보를 받고도 다음날 예정됐던 선발 등판을 정상적으로 준비하고 등판했다.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는 2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 LG 유니폼을 입고 고별 경기를 치렀다.
LG는 새 외국인 투수와 계약하며, 켈리의 방출을 결정했다. LG 구단은 19일 켈리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문제는 20일 선발 로테이션이 켈리였다.
염경엽 감독은 구단 프런트와 상의해 켈리에게 결정권을 줬다. 염 감독은 20일 경기 전에 “최원태도 있고, 켈리가 안 던지면 다른 던질 투수는 있었다. 켈리를 선발로 안 쓰려고 했는데, 5년 이상 우리 팀에서 뛰었고 무엇이든 마지막까지 잘 해주고 싶었다. 프런트와 상의해서 팬들 앞에서 켈리가 고별 무대를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켈리에게 그 결정을 맡겼다. 마지막 경기를 던지고 갈지, 그냥 팬들에게 인사만 하고 갈지 의견을 물었다. 켈리가 가족과 상의하고, 어제 경기 끝나기 전에 얘기해주겠다고 했다. 경기 끝나고 켈리가 오늘(20일) 선발로 던지겠다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방출이 결정되고, 선수의 마음은 평소와 다를 것이다. 아무래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테고, 멘탈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켈리는 마지막까지 LG와 LG팬들에게 진심을 다했다. 켈리는 이미 정해진 순서로 선발 등판을 책임지기로 했다. 켈리의 두터운 팀 로열티는 6년간 익히 알려졌고, 그로 인해 LG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 왔다.
2021년 9월에 켈리의 아내는 둘째(아들)를 미국에서 출산했다. 보통 외국인 선수들은 자녀 출산 때는 아내 옆을 지키며 가족애를 최우선으로 한다. 그런데 켈리는 시즌 후반 순위 경쟁이 한창이라 출산 휴가를 마다했다. 가족 보다 팀을 우선시하며 미국을 잠시 다녀오지 않고 계속 경기에 등판했다.
만약, 켈리가 20일 선발 등판을 하지 않겠다고 했더라면 LG는 다른 투수를 선발 예고하면서 켈리의 방출 결정을 공개하려 했다. 켈리가 20일 선발 등판을 자청하면서, LG는 켈리의 교체 결정 공개를 하루 미뤘다. 켈리는 구단에 “방출 소식을 20일 두산과 경기 전까지는 발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20일 오후 5시, 켈리는 잠실구장 그라운드에 나와 몸을 풀기 시작하자, LG팬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격려했다. 켈리는 외야 워닝 트랙을 뛰면서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손하트도 날렸다. 오후 5시40분, 외야에서 몸을 다 풀고 덕아웃으로 돌아오자 LG팬들은 켈리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오후 6시, 경기 시작을 앞두고 켈리가 선발 투수로 소개되자, 1루측 LG 응원석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찬 박수갈채가 나왔다. LG 투수들은 불펜 문앞에 2줄로 도열해, 뛰어나오는 켈리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선발 출장한 야수들은 그라운드에 모여 마운드에 오르는 켈리를 바라보며 박수로 격려했다.
켈리는 3회 2아웃까지 한 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폭우였다. 장맛비가 내리면서 우천 중단됐고, 1시간 29분을 기다렸지만 경기 재개를 앞두고 또다시 폭우가 쏟아지면서 우천 노게임이 됐다. LG가 6-0으로 앞서 있었고, 무엇보다 마지막 경기였던 켈리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우천 노게임이 된 후 켈리를 위한 고별행사가 진행됐다. 쏟아지는 비처럼 LG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다. 주장 김현수를 비롯해 임찬규, 오지환, 박해민, 박동원, 오스틴 등은 일일이 켈리와 포옹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LG팬들은 비를 맞으면서 켈리와 마지막 시간을 함께 했다.
켈리는 "지난 5년 반 동안 시간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 팬들의 응원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1번 더 등판 기회를 얻어서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
켈리는 "어제 마지막으로 아내와 상의를 하고, 오늘 던지기로 결정했다. 잠실에서 팬들 앞에서 한 번 더 하자, 그런 생각으로 결정했다. 또 다른 이유는 5년 반 동안 함께 한 동료들과 한 번 더 해보고 싶었다. 두산전에 던지는 것이 항상 즐겁고 신났기에 동료들과 한 번 더 경기를 하고 싶었다"고 방출이 결정되고도 등판한 이유를 설명했다.
노게임으로 끝났지만, 미련은 없었다. 켈리는 "두 번째 비가 쏟아져 중단되면서, 이게 내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2이닝을 잘 던져, 동료들과 함께 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켈리는 구단이 마련한 고별행사에 감동했다. 그는 "굉장히 놀라웠다. 이전에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 이런 행사를 했던 것을 본 적이 없다. 5년 반 동안 특별한 시간이었고, 세리머니가 열린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울지 않으려고 잘 참았는데, 세리머니가 시작하자 눈물이 그치지 않고 계속 흘렀다. 팬들이 궂은 날씨에도 기다리고 남아줘셔서 내 마음 속에 특별하게 남을 것 같다. 구단 프런트에 감사하고, 팀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켈리는 "5년 반 동안 동료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가족과 다름없다. 지금도 동료들을 응원하고 앞으로도 응원할 거다. LG는 내 마음에 특별한 존재로 남아있는 팀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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