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암살 실패 아쉬워” 막말…정치에 뿔난 사람 왜 이리 많을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최고야 기자 2024. 7. 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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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격으로 상처를 입은 귀를 붕대로 감싼 채 공화당 전당대회 리허설에 나선 모습. 밀워키=AP 뉴시스

“아, 아깝네(AWWWW SO CLOSE)”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총격범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것을 두고 미국 현지에서 나온 밈(meme)이다. 저승사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인형뽑기 기계에서 뽑다가 떨어뜨리는 그림에 ‘아깝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현직 FBI 직원이 자신의 SNS에 ‘이 밈은 정말 최고’라고 올렸다가 논란이 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글쓴이의 정치적 이념과 직업 등을 차치하더라도, 사람 목숨을 두고 ‘못 죽여서 아깝다’고 밝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현직 FBI 직원이 SNS에 해당 밈을 올렸다가 문제가 되자 계정을 삭제했다. 데일리메일 캡처

사실 선 넘는 혐오와 경멸은 멀리 미국 사례까지 갈 것도 없다. 국내 정치에서도 상대 진영 간 도 넘는 감정싸움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는 같은 당 안에서도 특정 후보를 비방하며 의자를 내던지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왜 이렇게 정치 때문에 비뚤어진 사람들이 많은 걸까. 또 어쩌다 폭행, 암살 시도 같은 일까지 벌어지게 되는 걸까.

● 반복된 분노… “사람 취급 안 해”

15일 충남 천안시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 일부 참석자가 한동훈 후보에게 ‘배신자’라고 외치며 의자를 던지는 등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천안=뉴시스

보통 우리가 누군가에게 화를 낼 땐,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을 바꿔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런데 암만 화를 내봐도 통하지 않는다는 좌절 경험을 반복해서 하게 되면, ‘나는 상황을 해결할 힘이 없다’는 무력감이 생긴다.

이때 내가 무력하다는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고 비하하면서 불쾌함을 상쇄해 보려고 한다. 아무리 권력을 쥔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하찮고 혐오스러운 ‘벌레 같은 존재’라고 욕하면 마음이 한결 시원해진다. 싫어하는 정치인을 저주스럽고 치욕적인 멸칭으로 부르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그런데 혐오와 경멸이라는 감정은 폭력과 친하다는 게 문제다. 벌레에겐 인격적 대우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롱하고 욕해도 괜찮고, 심지어 때려도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해 내가 아무리 타당한 비판을 하고, 투표로 심판해 봐도 현실적으로 바뀌는 게 없다고 느껴지면, 거듭된 분노에 경멸이 더해진다.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욕설과 조롱도 시작한다. 이런 감정이 증폭된 일부 사람들은 물건을 던지거나, 때리고, 흉기를 휘두르는 폭력성을 나타낼 수 있다.

이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1년 6월 프랑스 남부 드롬주의 소도시를 방문했다가 한 20대 청년에게 뺨을 맞았다. X 캡처

이렇듯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경멸과 혐오, 폭력성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영국 세인트 앤드루스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어떤 감정 상태에서 폭력적인 의사 표현 방식을 선택하게 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대학 등록금 정책에 반대하는 대학생 332명을 조사했다. 조사 당시 학생들은 대체로 학교 정책에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개중에는 화를 넘어 학교 당국과 관련 책임자들을 경멸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항의해봤자 학교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학생들이 이미 이 싸움에서 졌다’는 무력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 강렬한 항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돌·유리병 던지기, 경찰 폭행, 건물 방화를 저지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정책 관련 책임자를 해치거나 그들의 사유재산을 공격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반면, ‘우리가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학교 당국을 경멸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들은 청원서 서명, 토론회 참석, 전단지 작성 등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항의하겠다고 했다. 자신들에게 아직 상황을 바꿀 힘이 있다고 인지하는 학생들은 폭력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은 것이다.

● 서로에게 “지능 낮은 멍청이”

상대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우리보다 열등하다’는 근거 없는 편견을 갖게 되면, 상대편을 더 조롱하고 깔보는 마음이 생겨난다. 결과적으로 진영 간 감정싸움은 더 격화되고, 정치가 혼탁해진다. 실제로 온라인 뉴스 댓글에 상대 정당 지지자들을 향해 ‘저능하다’고 비난하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특징은 정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미국에서 공화당, 민주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정말로 서로를 자신들보다 멍청하고, 사악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연구팀은 미국 성인 481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공화당 지지자가 얼마나 지능이 낮고, 사악하다고 느끼는지 조사했다. 실험참가자들은 무당층을 제외하고 모두 민주당 또는 공화당 지지자들로만 구성했다.

코끼리는 공화당, 당나귀는 민주당을 상징. 각 당의 상징이 그래프 위쪽에 위치할수록 더 멍청하고, 사악하다고 답한 것이다. 왼쪽 노란색 표시는 민주당 지지자의 시각이고, 오른쪽 초록색 표시는 공화당 지지자의 시각이다.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그 결과는 위 그래프와 같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자기들보다 더 멍청하고, 사악하다고 답했다(왼쪽 노란색 사각형 표시). 이와 반대로 공화당 지지자들 민주당 지지자들이 자신들보다 더 멍청하고, 사악하다고 생각했다(오른쪽 초록색 사각형 표시).

이 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상대 진영 지지자들을 열등한 존재로 비인간화하는 것은 마음대로 조롱하고 비하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며 “이런 인식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더 심해지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지난 기사 참고: 보수·진보, 서로 얼굴만 봐도 “혐오감…화가 난다”).

자기 삶 꼬여 있을수록 정치 이유로 폭력적

개인적 삶의 문제 때문에 과격한 방식으로 정치에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이러저러한 심리적 문제를 어딘가에서는 해소하고 싶어 하는데, 그게 정치 영역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내 삶은 썩 행복하지 않을지라도, 이 사회와 국가를 위해 대의를 추구한다는 명분이 있어서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 연구진 등은 실제로 이런 경향이 문화권이나 이념과 관계없이 나타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프랑스, 터키, 벨기에, 브라질 성인 124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들에게 주관적으로 느끼는 사회적 고립 정도, 삶의 의미, 무력감 등과 함께 정치 성향, 급진주의 정도, 폭력적 정치 행위 참여 의사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국가, 문화, 정치 이념 등과 관계없이 자기 삶이 무의미하고, 무력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돼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정치적 이유로 폭력적인 행동에 나서겠다고 답한 경향이 상당히 두드러졌다. 살면서 겪은 개인적 수치심, 굴욕감, 상대적 박탈감, 고립감, 무의미함 등을 해소하려고 정치를 일종의 탈출구로 삼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개인의 심리적 상태가 정치 영역에서 폭력적인 극단주의, 테러리즘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더 혐오하라” 정치인들이 지지자 부추겨

동아일보 DB
더 나쁜 건 정치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지지자들의 혐오와 폭력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연설 등 공개석상이나 SNS에서 상대방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지자들을 감정적으로 격앙시켜서 과격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본보 기사 참고: 파국으로 치닫는 與 전대… 증오 부추긴 당권 주자들은 남탓만)

미 콜로라도 볼더대 연구진은 정치인의 감정 표현이 지지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해 봤다. 연구진은 성인 1390명에게 민주당,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가 서로 정책 토론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실험참가자 일부는 각 후보가 침착하게 발언하는 장면을 봤고, 또 다른 일부는 각 후보가 상대 후보를 향해 격렬한 분노를 드러내며 싸우는 장면을 봤다.

그 결과 사람들은 지지하는 정당의 정치인이 화내는 장면을 보고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감, 분노 수준이 상승했다. 반면, 상대 정당의 정치인이 분노하는 모습을 봤을 땐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지자들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의 감정에만 민감하게 반응했다. 연구진은 “정치인들이 연설에서 어떤 감정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지지자들의 행동을 부추길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끼리는 정서적 전염(emotional contagion)이 잘 이뤄지는 심리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세계관,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일수록 표정, 제스처, 발성 등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빠르게 알아채 그대로 따라 하기 쉽다. 그래서 지지하는 정치 후보자가 연설에서 상대 후보를 비방하며 화를 냈다면, 지지자들도 그 감정을 그대로 흡수한다. 흥분한 지지자들은 더 결집해 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지고,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은 올라간다.

지지자들이 정치인의 감정적 반응을 잘 흡수한다는 점을 역이용한다면 혐오와 경멸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분노, 혐오, 경멸 대신 상호 존중과 이해의 태도를 보여주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아 보인다. 연구진은 “정치인들은 분노한 지지자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선거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에 화를 부추기는 정치 지도자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 점에서 전당대회를 치르고 있는 여당에서 ‘소시오패스’ ‘좌파 숙주’ 같은 과격한 비난 표현이 나오는 것은 참 씁쓸한 현실이다. 우선 정치권이 진흙탕 싸움과 ‘네 탓’ 공방을 멈춰야 정치 때문에 뿔난 마음들이 조금은 가라 앉을 수 있지 않을까.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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