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너지 노렸는데 ‘잘못된 만남’이었나…‘지분 동맹’의 현주소
성과 없이 주가 하락으로 손실만…“경영권 방어용” 비판도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 속에서 동종 업계 제휴는 물론 업종을 뛰어넘어 동맹을 맺는 기업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업종 간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 '시너지'를 내기 위한 승부수다. 최근에는 각자의 회사 지분을 맞교환하는 '지분 동맹' 체결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이 같은 시도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더해 보유 지분 가치만 떨어지며 자사주를 최대주주 지배력 강화를 위한 우호 지분으로 활용했다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코로나 특수 끝나자 주가 내리막길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 네이버의 주가가 내리막길을 걷자 미래에셋, CJ, 신세계 등 네이버와 지분을 교환한 기업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앞서 네이버는 2017년 미래에셋증권과 5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맞바꿨다. 이어 2020년엔 CJ그룹(CJ대한통운·CJ ENM·스튜디오드래곤)과 총 6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했다. 이듬해엔 신세계그룹(이마트·신세계)과도 2500억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한 바 있다. 외연 확장을 위해 업종을 가리지 않고 지분 동맹을 체결한 것이다.
하지만 네이버 주가는 지난해 8월 52주 신고가(24만1500원)를 기록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7월16일 종가 기준 네이버 주가(17만1600원)는 연초(1월2일·22만7500원)와 비교하면 24%, 지난해 8월과 비교하면 29% 빠졌다.
지분 동맹을 맺은 기업들의 네이버 지분 가치 역시 30%가량 하락했다. 1500억원에 네이버 지분 0.24%를 취득한 이마트의 경우 지분 가치 하락률은 50%대에 달한다. 아울러 CJ그룹 계열사 3곳의 평가손실률 역시 30% 수준이다. 유통업계의 업황 악화로 CJ와 신세계의 주가도 하락세에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지분 동맹이 현재까진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CJ와 신세계는 지난달 물류, 유통, 미디어 분야의 전방위 협력 방안이 담긴 이른바 '외사촌 동맹'을 체결하기도 했다.
카카오와 자사주를 교환한 SK텔레콤도 속이 쓰린 상태다. 2019년 11월 SK텔레콤은 3000억원 규모의 자기 주식을 카카오에 매각하고, 카카오는 신주를 발행해 SK텔레콤에 배정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맞교환했다. 미래 ICT 분야 사업협력 등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을 위한 상호 지분 교환이 목적이었다.
당시 SK텔레콤은 카카오 신주를 주당 13만7779원에 매입했다. 이후 코로나 특수에 카카오 주가는 55만8000원까지 치솟았고, 2021년 4월 1주를 5주로 액면분할(당시 주가 12만500원)한 후에도 15만7500원까지 올랐다. 당시 SK텔레콤의 카카오 보유 지분 가치는 2조원에 육박했다. 취득 당시보다 6배 넘는 평가이익을 거둔 것이다.
이후 카카오 주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연초 5만7900원이었던 주가는 7월16일 기준 4만900원을 기록했다. 올 들어서만 30% 넘게 떨어졌다. 지난해 말 장부가액 기준 5874억원이었던 SK텔레콤의 카카오 지분 가치는 현재 4414억원 수준이다.
문제는 네이버와 카카오 주가가 더욱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가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라인야후 지분 매각 이슈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네이버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카카오의 상황은 더욱 불투명하다. 검찰은 최근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수사 중인 카카오 관련 사건만 4건이다.
희비가 엇갈린 기업도 있다. 2022년 9월 현대차그룹과 KT는 75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맞교환했다. 6G 자율주행과 미래항공모빌리티(AAM), 전기차 충전 인프라 등 미래 모빌리티 시장 선점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이다.
하지만 양사의 밀월 관계는 기대보다 깊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오히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제네시스·현대차·기아 전 차종에 LG유플러스의 무선통신 회선을 독점 공급받는 상황이다. 업계에선 지난해 KT가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며 협력을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추측을 내놓고 있다.
미미한 협력 속 앉아서 1800억 이득 본 KT
협력은 더디지만 KT 입장에선 마냥 울상을 지을 이유는 없다. 최근 현대차 주가는 연이은 최대 실적 달성과 인도법인의 주식시장 상장 등 호재에 힘입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분 동맹을 통해 현대차 자사주 221만여 주(지분율 1.04%)와 현대모비스 자사주 138만여 주(지분율 1.46%)를 들고 있는 KT로선 앉아서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2022년 당시 KT의 현대차 주식 취득가액은 20만1000원이었는데, 7월16일 종가 기준 현대차 주가는 27만4500원이다. 36%의 상승률이다. 덩달아 지분 가치도 올랐다. 4456억원에 취득했던 KT의 현대차 지분 가치는 6086억원으로 뛰었다. 취득 당시와 비교해 1630억원의 이익을 보고 있는 셈이다. 현대모비스 지분 가치도 3003억원에서 3197억원으로 오르며 194억원의 이익을 봤다.
KT 지분을 각각 4.6%, 3.1% 보유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상황은 정반대다. KT 자사주 취득가액은 3만7100원이었지만 현재는 3만6500원(7월16일 종가 기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에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KT 자사주 취득 시점 대비 지분 가치가 각각 72억원, 49억원 감소했다.
지분 가치가 올랐다고 해도 보유 지분을 처분하는 일은 흔치 않다. 다만 지분 동맹을 통한 사업적 시너지를 내지 못할 경우 주주들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자사주 맞교환으로 배당이 희석되면서 기존 주주들의 배당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자사주 맞교환이 최대주주의 우호 세력을 확보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주주 공동의 재산인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자기 주식 취득 규제 완화의 취지를 저버렸다는 이유에서다. 올 초 한미약품과 OCI가 지분 맞교환을 통해 경영권을 강화하려 했던 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재계 관계자는 "지분 동맹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택한 경영진의 전략적인 결정"이라면서도 "즉각적인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다면 지분 맞교환과 함께 자사주 소각을 진행해야 주주들의 지지와 신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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