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만든 법에 OTT 있으랴" 낡은 법 더 낡은 규제 [視리즈]

이혁기 기자 2024. 7. 2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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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돈 없으면 못 보는 시대의 유감➋
알쏭달쏭 보편적 시청권
정의 모호해 논란 가중
2007년 규정 만들어진 탓에
OTT는 규제 대상에 없어
해외에선 자국 특성까지 고려
테니스‧음악제‧F1 등 보호해
국회나 정부에선 개선 의지 없어
소비자의 '볼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우리는 '돈 없으면 못 보는 시대의 유감' 1편에서 보편적 시청권을 둘러싸고 어떤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OTT‧유료방송이 야구‧축구‧농구 등 프로 스포츠 경기를 독점중계하면서 '돈을 받기' 시작한 게 논쟁의 발단이 됐습니다.

# 그러자 한편에선 "소비자들의 보편적 시청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무려 17년 전에 만들고 이렇다 할 개정 작업이 없었던 현행법이 소비자의 '볼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 틀린 말은 아닙니다. 보편적 시청권의 정의가 워낙 애매모호해 '볼 권리'를 지켜줘야 할 콘텐츠를 고르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몸집과 영향력이 몰라보게 달라진 OTT가 보편적 시청권의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 영국‧프랑스 등 해외에선 자국 특성에 맞게 보편적 시청권을 정의한 지 오래입니다. 한국도 법 개정이 시급하지만, 어째서인지 정부와 국회는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입니다. 소비자의 볼 권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돈 없으면 못 보는 시대의 유감' 2편입니다.

OTT는 보편적 시청권의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경기대회 및 그 밖의 주요 행사(이하 국민관심행사) 등을 보여주는 방송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방송법 제2조 25항).' 우리나라 정부가 정한 보편적 시청권의 정의입니다.

법 조항의 내용이 다소 난해한 듯하지만 읽어보면 단순합니다. 국민 대다수가 '국민관심행사'를 볼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호하는 겁니다. 정부가 고시로 지정한 국민관심행사로는 동‧하계 올림픽이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법에 따라 방송사업자나 중계방송권자 등은 국민관심행사를 송출할 때 국민 전체 가구의 75~90%가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문제는 '국민관심행사'의 정의가 불분명한 탓에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의 중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행사'란 부분만 봐도 알 수 있죠. 추상적이고 수치화하기가 어려워 어떤 방송이 국민관심행사에 포함되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기준 없는 OTT = 논의가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OTT는 여전히 방송법상 보편적 시청권 규제 대상이 아닙니다. 보편적 시청권은 TV와 라디오를 타깃으로 2007년에 도입했는데, 17년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개정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OTT가 대상에 포함됐을 리 없습니다. OTT가 TV의 자리를 빼앗고 있는데도 말이죠. 지난 6월 티빙의 월간활성화사용자수(MAU)는 739만9000명, 쿠팡플레이는 662만9000명에 달했습니다(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

이같은 법적 공백은 2022년 국회 입법조사처가 펴낸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OTT 사업자는 보편적 시청권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과 시행령을 개정하는 등 입법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보편적 시청권을 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입법기관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국회든 정부든 '보편적 시청권'을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산하기구인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에서 지난해 12월 '보편적 시청권 관련 금지행위 세부 기준 개선 연구' 보고서를 발표한 게 전부일 정도입니다.

■ 해외에선 어떻게 = 그럼 해외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해외에서도 OTT나 유료 방송이 인기 스포츠 경기를 독점 중계하는 경우는 빈번합니다. 북미가 특히 그렇습니다. OTT 서비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가 미식축구 경기인 NFL의 목요일 경기와 MLB 뉴욕양키스 21개 경기의 독점 중계권을 확보한 게 대표적입니다.

애플TV플러스도 지난해부터 미국 프로축구(메이저리그사커·MLS) 전 경기를 독점 중계하고 있습니다. 스포츠계에서 '올타임 레전드'로 꼽히는 축구 선수 메시가 그해 7월 MLS 소속팀 인터 마이애미에서 뛰기 시작하면서 애플TV플러스도 쏠쏠한 재미를 봤죠.

다만, 북미에선 보편적 시청권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공영 방송사들이 NFL·MLB 등을 무료 중계하고 있어 법제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연합(EU)에선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편적 시청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1955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보편적 시청권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은 올림픽과 월드컵 외에 테니스·럭비·골프 등 자국에서 인기가 많은 경기를 '영국 국민관심 지정행사목록(Listed sporting events)'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구기 종목 스포츠 외의 행사에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산레모(San Remo) 음악제, 오스트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엔나 필 오케스트라의 신년 콘서트를 보장 대상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인기 레이싱 경기 '포뮬러1(F1) 그랑프리 레이스'처럼 해당 국가의 중요 산업과 직결하는 종목을 고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 국가가 인기뿐만 아니라 문화적·산업적 특성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프랑스는 F1 그랑프리 레이스의 보편적 시청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자료 | 업계 종합]

여기까지가 보편적 시청권을 둘러싼 국내외 방송 업계의 현주소입니다. OTT·유료방송 등이 독점 중계권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돈을 내고 스포츠 경기를 봐야 하는 건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습니다.

이 때문에 숱한 소비자가 원치 않은 OTT 결제를 위해 지갑을 열어야 합니다. OTT 결제가 부담스러운 이는 스포츠 중계를 볼 권리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지금의 낡은 법 체계에선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OTT의 힘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답을 찾을 수 있는 '골든타임'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우린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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