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과 한동훈이 돌벽에 대고 했어야 할 말[노원명 에세이]
심수봉은 지난 6월 초순 어느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 나가 본인 대표곡 중 하나인 ‘그때 그 사람’의 그 사람이 선배 가수 나훈아라고 고백했다.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던, 비가 오면 생각난다던 그 사람 말이다. 나는 ‘과연’하고 감탄했다. ‘상남자’ 나훈아의 매력과 능력에 보내는 감탄이다. 미국에 앤터니 퀸이 있다면 한국엔 나훈아가 있다. 미남도 아니면서 철철 넘치는 남성미, 인간미로 뭇 여성의 사랑을 받고 어느 한명에 안주하지 않되 누구의 원망도 사는 법 없이 ‘그때 그 사람’으로 별처럼 기억되는 남자들이 있는 것이다. 앤터니 퀸이 주연을 맡기도 한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인간형이다.
나는 나훈아 노래도 좋아한다. 심수봉이 나훈아를 한때 연모했다 해서 실망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6월 그 방송 이후 심수봉 노래 듣기가 예전 같지 않다. 뭔가 몰입이 안 되고 있다. 심수봉의 노래는 대부분 한 남성을 향한 애상의, 부치지 못한 러브레터다. 혹은 국화처럼 나이 든 누님이 위스키 한잔 힘을 빌려 털어놓을 그때 그 사람 이야기다. 심수봉이 나훈아와의 연관성을 인정한 것은 ‘그때 그 사람’ 뿐이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모든 심수봉의 노래에 나훈아를 투영하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가령 ‘당신은 누구시길래’에서 심수봉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다정했던 그날의 우리 사랑 지울 수 없을 거예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 마음 가져갔나요’라고 읊고 있다. 예전같으면 신산한 세월을 겪고도 여전히 고운 중년여인을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중간에 나훈아가 불쑥불쑥 치고 들어온다.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어요’(사랑밖엔 난 몰라)는 나훈아를 찍어놓고 하는 이야기 같다. 폼 잡지 않고 진실한 말 한마디로 여성의 마음을 훔치는 연애 대가는 그렇게 흔치 않다. 딱 나훈아급이다. ‘어젯밤 꿈에 당신을 보았죠 다시 한번 뜨겁게 사랑을 해 주던 마지막 그 모습이 오늘 밤 또 나를 울리네’(미워요) 같은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주 징그러워진다. 테스형 얼굴이 자꾸 겹쳐 보이는 것이다. 심수봉은 ‘그건 나훈아씨와 상관없어요’ 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세요’ 같은 얘기다. 나는 심수봉이 실수했다고 생각한다. 만인에게 환상을 심어야 할 연예인이 그 환상을 깨고 말았다.
보아하니 그는 손해는 절대 안 보는 성격인 듯하다. 김 여사 문자에 답하지 않은 것은 책잡히지 않는 그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스마트한 사고, 법률적 논리로 무장한 사람이라면 십중팔구는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 아이큐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그러나 그는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 아닌가. 그리고 정치는 현상을 타파하는 기술이 아닌가. 엉뚱하게도 한동훈 후보가 차라리 어도어 대표 민희진 같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민희진은 서울 법대를 나오지도, 한동훈처럼 모든 말에 다 반박하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언어로 어지러운 진흙 싸움을 멋진 활극으로 승화시켰다. 현상타파! 정치에서도 민희진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한동훈은 진흙이 더럽다며 손가락질만 하고 있다. 처음에는 신선했지만 들을수록 따분하고 약간은 밉살스럽다. 정치인은 저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한동훈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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