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접는 게 이득" 상반기 하루 5개 기업 '파산 신청'…역대 최대
작년 이어 '파산 > 회생' 현상 지속
A 대표는 2015년 지인들과 함께 퓨전음식 식당 프렌차이즈를 창업하고 개인 자금을 투자해 수도권 일대 여러 곳에 가맹점을 출점하는 등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이색적인 음식 메뉴가 입소문을 타면서 TV 홈쇼핑에 진출하는 등 성과를 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매장 영업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적자가 불어났다. A 대표는 개인 주택까지 처분하며 사업을 지키려했으나 결국 지난달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받았다.
올해 파산 신청을 한 기업이 지난해에 이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 및 고금리·고물가 등으로 경영상황이 어려워진 영세기업들의 줄파산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플랫폼 스타트업도 줄폐업
21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해 1~6월 전국 법인파산 접수 건수는 987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보다 36.3% 증가해 작년에 이어 또다시 반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법인파산 접수 건수(1657건)는 작년 대비 65% 급증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4월에만 196건을 기록하는 등 매월 100건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법인파산 사건의 70%는 수도권에 집중됐다. 법원별로 살펴보면 서울이 상반기 447건으로 14개 법원 가운데 가장 많았다. 이어 수원 189건, 대전 73건, 대구 63건, 부산 44건 등 순이었다.
도산법원을 찾는 기업 대부분은 중소기업·소상공인이다. 2015년 설립된 평택의 B 제조업체는 강구조물 생산해 대기업 등에 납품하다가 최근 직접 건설사 입찰에도 참여할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저가 입찰로 인한 출혈 경쟁에 빠져든 데다 원자재 가격마저 급등하면서 극심한 자금난을 겪었고, 굵직한 공급계약까지 무산되면서 파산선고를 받게 됐다.
플랫폼 관련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플랫폼 소프트웨어 전문인 ‘1인 기업’ C사는 2019년 베트남 부동산 플랫폼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수년 간 준비한 플랫폼 론칭이 기약 없이 연기됐다.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한 이 업체는 결국 서버 유지비 등 고정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신청을 하게 됐다.
대기업들의 투자를 받아 주목받은 프롭테크 스타트업 어반베이스도 최근 서울회생법원에서 파산 절차를 밟는 것으로 알려졌다. 3차원(3D) 공간데이터 전문기업으로 한 때 국내 아파트 9만8000여 개의 3D 도면을 구축하는 등 잠재성을 인정받았으나, 부동산 경기 불황에 벤처투자 시장마저 위축되면서 자금난을 겪다 결국 법인회생을 신청했다. 회사 매각 대금으로 채무를 변제하려 했으나 인수자를 찾지 못했고, 이에 법원은 회생계획을 폐지하고 파산 절차를 밟도록 했다.
◆하반기도 줄파산 예고
상반기 법인회생 신청 건수 역시 816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 늘었다. 문제는 재기의 희망을 잃은 기업들이 회생 대신 사업을 아예 포기하는 파산을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점이다. 연간 법인파산 접수 건수는 지난해 처음 법인회생을 앞질렀는데, 올해도 이런 추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한계 상황에 이른 중소기업·소상공인의 파산 선고가 하반기에도 잇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의 경영 여건이 나아질 조짐이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87.7%이지만 중소기업 부채 비율은 114.3%로 2018년 1분기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분기 대기업의 매출액증가율은 3%로 전년(-1.3%)보다 크게 개선됐으나, 중소기업은 -1.5%에서 -6.9%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도산 전문변호사는 “파산 선고를 받을 경우 사업주는 임금 체불, 민·형사 처벌 등의 부담을 면제받을 수 있다”며 “사업을 지속하는 것보다 청산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판단하는 기업들의 파산 선고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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