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풍향계] 정치적 동반자? 극단 지지자? 팬덤 정치의 명암
[앵커]
막바지에 이른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열된 분위기에 극렬 지지자들의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졌습니다.
민주당도 강성 팬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요.
오늘 여의도풍향계에선 정치권의 새로운 문법처럼 등장한 '팬덤 정치'의 명암을 짚어봅니다.
방현덕 기자입니다.
[기자]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들의 합동연설회 도중 벌어진 일입니다.
비전과 정책 경쟁이 돼야 할 전당대회가, 후보 사이 갈등을 넘어 지지자 간의 욕설과 육탄전, 한 마디로 난장판이 됐습니다.
어쩌면 예견됐던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단 위 목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지 후보만 응원하거나,
<서병수 /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장(지난 15일)> ("한동훈!" "한동훈!") "좀 조용히 해주십시오. 다들 한동훈 자발적인 지지자들입니까, 동원하신 겁니까?"
경쟁자에겐 야유를 쏟아내는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동훈 /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지난 10일)> "늘 고백하지만 저는 부산이 참 좋습니다" ("배신자!" "배신자!")
특정 정치인에 대한 강력한 지지층, 이른바 '팬덤'은 이제 정치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정치인은 팬덤을 통해 지지를 얻고, 팬들은 정치인 통해 변화를 이뤄내며 효능감을 얻지요.
정치 참여를 더 활성화하는 장점, 분명히 있습니다.
국내 정치 팬덤의 시초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노사모'가 꼽힙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을 강타한 '노풍'의 주역이자, 결국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통령 당선을 이뤄낸 동력이 됐죠.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박사모', 문재인 전 대통령의 '문파'가 탄생했고, 지금은 각각 전당대회에 출마한 한동훈·이재명 두 당 대표 후보의 세력화된 팬덤이 두드러진다는 평가입니다.
팬덤의 어두운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편에게 강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게 대표적입니다.
'좌표 찍기'나 '문자 폭탄'의 행태,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조 팬덤, 노사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지지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결정한 이라크 파병에 반대 성명을 냈던 게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근래로 올수록, 무조건적인 지지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또 맹목적 지지의 이면인 상대방을 향한 반감이, 투표나 비판을 넘어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재명 전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때 벌어진 이탈표 색출 시도는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김진표 / 전 국회의장(지난 5월)> "진영의 큰 주장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다는 사람을 역적이나, 배반자로, 소위 요새 팬덤들이 이야기하는 수박으로…이것은 대의 민주주의의 큰 위기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당대회'란 말까지 낳은 극단적 갈등 양상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김성태 / 국민의힘 전 의원(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17일)> "이재명 대표 개딸, 이런 팬덤 정치에 대해서 엄청난 비판과 비난을 우리가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우리 진영에서도 저런 모습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강성 팬덤의 공격성은, SNS와 만나 증폭될 수 있습니다.
일부 유튜브 채널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그대로 전하며, 이른바 혐오의 정치를 더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 현상. 정치권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정 기능을 갖추지 못한 일부 유튜버들의 무책임한 주장이 음모론으로 번지고,
가뜩이나 극단으로 가는 정치판에 분노와 증오를 주입한 경우, 적지 않습니다.
여기 편승하는 정치인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윤태곤 / 더모아 정치분석실장(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9일)> "신경전이라든지 전략이라든지 함정을 판다든지…지금은 유튜버, 댓글 이런 걸 통해 가지고 싸우는 식이니까…"
하지만 잠깐의 정치적 이익이 달콤해도, 결과적으론 이들에게 의존하다 휘둘리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팬덤 정치의 폐해를 해소하려면 결국 소선거구제와 대통령 단임제 같은, 승자독식 정치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합니다.
다만, 이런 근본적인 개혁이 당장 이뤄지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치인 입장에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강성 팬덤이 어쩌면 고맙고, 또 의존하고 싶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들에 의해 정책과 노선이 좌지우지되면, 민심, 즉 일반 유권자와의 거리는 반대로 멀어질 겁니다.
강성 팬덤이 오히려 정치적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역설, 이걸 깨닫는 게 우선일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여의도풍향계였습니다.
PD 임혜정
AD 최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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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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