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는 다 죽어!"…'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시장의 수수께끼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7. 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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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쏙 취파] 귀에 쏙! 귀로 듣는 취재파일
 

티켓값의 수수께끼?... "이러다가 다 죽어"

지난달 이맘때쯤 '5월 한국 영화 점유율 역대 최고'라는 헤드라인을 단 기사들이 줄줄이 쏟아졌습니다.

"한국 영화가 어렵다 어렵다 하더니, 엄살이었네"라는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팩트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맥락이 제거된 팩트는 오해와 왜곡을 부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발표된 6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을 보니 한국 영화 점유율이 5월의 반토막인 30%대로 추락하며 10개월 만에 외국 영화에 밀렸습니다.

'5월 한국 영화 점유율 역대 최고'는 범죄도시4의 흥행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었습니다.

한국 영화 시장이 '대박 아니면 쪽박'으로 흘러가면서 이런 착시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극장에 올리면 더 손해라는 이유로 코로나 이후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이 더러 남아 있는 가운데,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는 예전 같지 않아서 내년이 문제고 내후년은 더 문제라는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천만 영화를 제외하면, 지난해에는 여름 시장까지 관객 200만 명 이상을 동원한 한국 영화가 두 편 있었습니다

'밀수'가 500만,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300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올해는 지금까지 단 한 편의 200만 영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천만 영화와 독립·예술 영화 사이를 적절하게 메워주며 관객들을 지속적으로 극장에 데려와야 할 이른바 '중박 영화'는 멸종하다시피 했습니다.

 

'영화인연대', 멀티플렉스 3사 공정위에 신고

지난주 '영화인연대'는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극장 측이 통신사 할인 등 프로모션을 통해 깎아주는 관람료 정산 내역을 상세하게 공개하지 않아 수익 배분을 불투명하게 하는 등 불공정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A라는 관객이 주말에 15,000원짜리 티켓을 통신사·카드사 멤버십 할인을 받아 9,000원을 내고 파묘를 봤다고 치면, 극장료 수입은 배급사와 극장이 대략 5:5의 비율로 나눠 갖습니다.

그런데, 극장 측은 'A라는 관객이 어느 통신사나 카드사의 어떤 할인율을 적용받아 최종적으로 얼마를 내고 봤다'와 같은 상세 내역과 기준은 배급사에게 주지 않습니다.

다만 특정일에 특정 영화를 6천 원에 본 관객 몇 명, 7천 원에 본 관객 몇 명, 1만 원에 본 관객 몇 명 등등, 다 합해서 평균을 내면 관객 1인당 평균 관람료 이른바 '객단가'가 얼마다, 이런 식으로 뭉뚱그려 배급사에 넘긴다는 게 영화인연대와 배급사 측의 얘깁니다.

티켓값이 단기간에 많이 올라서 관객들은 티켓값 비싸다고 아우성인데, 배급사와 제작사는 자신들이 받는 객단가는 1만 원도 안되니 불만이 생기고, 게다가 극장 측이 객단가가 왜 1만 원 안팎밖에 안 되는지 세부 내역을 알려주지도 않으니 '깜깜이 정산'을 조사하라고 공정위에 신고까지 한 겁니다.

사실, 극장과 배급사가 수익 배분을 놓고 다툰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10여 년 전에는 법정까지 간 적도 있었습니다.

다만,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한국 영화가 잘 나가던 시절에는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지"하며 넘어가던 문제들도 영화 산업 전체가 어려워지니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극장 측도 할 말은 있습니다.

극장 측은 관람료 할인 세부 내역은 '영업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멀티플렉스 3사와 3대 통신사, 각 카드사들도 제각각 해당 시장에서 경쟁하는 만큼 똑같은 조건으로 협상할 수 없는데, 이런 세부 내용까지 다 공개하면 영업에 지장이 생긴다는 겁니다.

다만 카드사나 통신사 할인으로 인한 보전액까지 모두 객단가에 포함해 정산하고 있다고 해명합니다.

극장 측은 자신들이 통신사/카드사와 각각 맺고 있는 계약 내용이 경쟁 극장에 새나가면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멀티플렉스 3사는 제작-배급-상영까지 수직계열화한 대기업 계열사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롯데시네마는 CJ가 배급한 영화도 상영하는데, 배급사인 CJ에게 객단가 상세 내역을 공개하면 이게 CJ계열사인 CGV에 들어가지 않겠냐는 겁니다.

하지만 냉정히 얘기하면 그건 제작-배급-상영을 수직계열화한 대기업 내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지난해 한국 영화 시장 흥행 톱텐 중 7편을 4개 메이저 배급사가 배급했습니다.

나머지 3편은 디즈니가 배급했습니다.

1위~10위 영화의 전체 매출액 점유율은 49%에 이릅니다.

그런데 그 4개 메이저 배급사 중 플러스엠과 롯데 모두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라는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메이저 배급사라고 해도 계열사인 극장에 대놓고 문제 제기를 하기가 힘들고, 극장 체인이 없는 메이저 배급사 등도 극장 눈치를 보느라 항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2000년대 내내 이어졌던 폭발적인 성장세와 달리 2010년대 중반부터 극장 매출과 관객 수는 '정체상태'였습니다.

코로나가 발발한 2020년을 제외하면 영화 산업이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까지 전국의 극장 수와 스크린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수요는 줄었는데 공급이 늘다 보니 경쟁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시장이 됐습니다.

극장은 공짜 티켓을 늘려서라도 관객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매점 수입 확보를 위해섭니다.

'되는 영화'는 관객들이 경쟁 극장에 못 가게 더 많은 상영관을 열어야 합니다.
 

'틴셀타운' 할리우드에도 불어 닥친 위기감

코로나 이후 심화된 영화 산업의 위기는 한국 영화 시장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난달 LA타임스는 "역사의 철권이 마침내 할리우드에 도래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아무도 할리우드의 주 소득원인 장편 영화의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지금 할리우드가 겪고 있는 위기의 폭과 깊이는 1950년대 초를 제외하면 비견할 만한 것이 없다"라고 썼습니다.

1950년대 초는 미국 가정에 TV가 보편화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반독점법에 의한 이른바 '파라마운트 판결'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수직계열화가 금지되면서 이들이 더 이상 극장을 소유하지 못하게 된 것도 이때입니다.

영화 산업이 재편되면서 할리우드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 판결이 날 당시만 해도 미국 인구의 2/3인 9천만 명이 매주 영화관에 갔지만 그 10년 뒤에는 관람객이 반토막 났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 1950년대 위기를 TV프로그램 제작과 판권 판매, 굿즈 제작, 비디오테이프 판매, 해외 시장 개척 등으로 극복한 할리우드는 1977년 '스타워즈'로 프랜차이즈 영화의 새 시대를 열고 슈퍼 블록버스터 I.P. 를 탄생시키며 오늘날까지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공장으로 우뚝 서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를 휩쓸어왔던 마블의 슈퍼 히어로 장르 영화들도 이제는 인기가 시들합니다.

대중은 유튜브를 보거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LA타임스는 넷플릭스 같은 인터넷 영상 플랫폼이 부상하는 물결 속에서 할리우드는 관객을 되찾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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