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현의 재난백서] 생명을 살리려는 외침, 재난문자
2011년 7월 27일, 비는 그칠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밤새 비가 내렸고 아침에도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오전 7시 40분쯤, 우면산에서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토사가 쏟아져 내려온 건 우면산 서쪽에 있는 남태령 전원마을이었습니다. 수요일 아침 시간, 흙탕물은 한순간에 마을을 집어삼켰습니다.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순간이었습니다.
첫 붕괴가 시작되고, 얼마 안 가 우면산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임광 아파트, 래미안 아파트, 형촌마을, 보덕사로 흙과 돌덩이가 쓸려 내려왔고 우면산 주변 일대가 초토화됐습니다.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산사태로 1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산사태로 70대 아버지를 잃은 김 모 씨는 서초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김 씨는 서초구가 산사태 주의보와 경보를 발령하지 않았고, 대피 방송도 하지 않아 아버지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며 1억 3천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안전조치가 소홀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2천 7백만 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서초구가 대피를 권고했다고 해도 이를 전달받고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1천 2백만 원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1심과 2심의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습니다. 2019년 대법원은 서초구가 특보를 발령하거나 대피 방송을 했다면 아들인 김 씨나 지인이 고인에게 대피하라고 알렸을 가능성이 크다며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우면산 산사태가 일어난 2011년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재난 안내 시스템은 정말 많이 발전했습니다. 재난문자를 도입해 빠르게 문자로 위험 사실을 알리고 있죠.
재난문자에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안내안내문자와 긴급재난문자 그리고 위급재난문자입니다. 위급재난문자는 가장 높은 단계의 재난문자로 공습이나 핵 공격 위험이 있을 때 발송됩니다.
자연재해에는 보통 안전안내문자나 긴급재난문자가 사용됩니다. 안전안내문자의 알림 소리는 휴대전화와 연동됩니다. 만약 휴대전화를 진동이나 무음 설정했다면 확인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거죠. 반면 긴급재난문자는 문자를 받는 즉시 40데시벨의 소리가 함께 울립니다.
지난 7월 8일부터 10일까지 충청권과 전북 그리고 경북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건물이 침수되고 토사가 무너져 내리는 등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해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죠.
이때 호우, 산사태, 홍수로 전국에 발송된 재난문자는 836건이었습니다. 그중에 안전안내문자는 826건이었습니다. 반면 긴급재난문자는 1.1%인 10건에 불과했죠. 기상청이 극한호우가 내린 지역에 4건의 긴급재난문자를 보냈습니다. 상주시가 2건, 전북특별자치도, 영양군, 경산시, 대구 북구가 각각 1건을 발송했습니다.
다른 기관은 긴급재난문자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7월 8일~10일 폭우는 밤과 새벽에 쏟아졌고 그때 피해가 많이 발생했는데, 만약 휴대전화를 진동이나 무음으로 하고 잠들었다면 문자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거죠. 집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겨우 대피했다는 수재민은 “문자가 온 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그의 휴대전화에는 ‘즉시 대피하라’는 문자가 안전안내문자로 와있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만든 재난문자 발송기준에는 ‘테러, 방사성물질 누출 예상, 대피명령 발령 시, 호우 시’ 긴급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짤막한 문장이죠.
해석과 판단은 지자체의 몫이 됐고, 결과는 제각각이었습니다. 새벽 시간에 범람, 산사태 위험 등으로 주민들에게 대피하라는 비슷한 내용의 문구를 어떤 지자체는 안전안내문자로 보냈고, 어떤 지자체는 긴급재난문자로 보냈습니다. 물론 안전안내문자로 보낸 곳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요.
‘즉시 대피하라’는 문구를 안전안내문자로 보냈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의 대피명령은 보통 안전안내문자로 나간다”며 “긴급재난문자를 보내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피명령 시라는 문구는 호우로 인한 대피보다 더 긴급한 경우를 의미하는 것 같다”고 했죠. 문구를 해석한 결과 안 보내도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긴급재난문자를 보낸 지자체도 고민은 있었습니다. 지자체 관계자는 “주무시고 있는 분들도 빨리 대피하라고 회의를 통해 결정해 발송했다”고 말했습니다. 긴급재난문자로 보낼 때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지 않냐고도 물어봤습니다. 긴급재난문자를 보냈다가 소음 민원 등이 올 수 있으니까요. 관계자는 “당장 결정하는 게 먼저고 그런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해석을 해야 하고, 해석은 어려운 결정을 미루게 만듭니다. 혹시나 해석이 틀렸다면 새벽에 긴급재난문자를 보냈다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겠죠. 시끄러워서 잠에서 깼다는 민원이 들어왔을 때, ‘기준에 따라 보냈다’고 말할 수 없다면 누가 쉽사리 긴급재난문자를 보낼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기준이 있을 때 긴급재난문자를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건 기상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폭우가 내렸을 때 오전에 발송된 긴급재난문자는 총 23건이었습니다. 그중에 22건은 기상청이 보낸 것이었죠.
기상청은 시간당 50mm 비와 3시간에 90mm에 해당하는 호우 동시에 관측되거나 시간당 72mm의 비가 내리면 긴급재난문자를 보낸다는 기준이 있습니다. 덕분에 실무진은 객관적인 판단만 하면 됩니다. 기준이 맞는 폭우가 오는지만 분석하고 빠르게 재난문자를 보내면 되는 거죠.
물론 구체적인 기준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알림이 필요할 때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내지 못할 수도 있고, 반대로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문자가 남발될 가능성도 있죠.
다만, 지금은 대피명령이 발령돼도 긴급재난문자를 안 보내기도 하고, 비슷한 내용의 문자도 지자체마다 긴급재난문자와 안전안내문자로 제각각 다르게 보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긴급재난문자 발송 여부를 정할 때 어려움은 없는지 확인하고, 그렇다면 현재 기준에 무엇이 부족한지 따져보는 일은 필요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로 기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한밤중에 시끄럽게 울리는 재난문자를 받고 잠에서 깨면 불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잠이 안 오면 화도 나겠죠.
하지만 재난문자의 목적은 위급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위험을 알려 행동하게 하는 겁니다. 만약 강이 범람하고 있을 때 대피하라는 안내가 아무런 소리가 없이 전달되고, 내 가족이 이 안내를 보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긴급재난문자의 소음이 나와 내 가족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이웃의 생명을 지킬 수도 있죠. 재난문자의 소음은 생명을 지키려는 외침입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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