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다들 군복 벗을 것” 군대 떠나는 군인들 ‘급증’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4. 7. 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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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핵심 계층인 장교와 부사관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병사들의 병영생활 만족도는 높아지고 있지만, 간부들의 직업만족도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육군 11사단 장병들이 주둔지 주변에 나타난 거수자를 수색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군 간부를 직업으로 추천하려는 심리를 위축시키는 모양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군인 중에서 간부가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초급간부(위관급, 중사 등) 계층에선 장기 복무 대신 전역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군의 허리인 경력 5년~10년 차 간부들이 줄줄이 군을 떠나는 것은 불투명한 미래와 열악한 여건, 조직에 대한 실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군인이라는 직업, 만족스럽지 않아”

활기가 넘치고 역동적인 조직을 만들려고 할 때 구성원의 감정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조직 관리는 곧 사람을 다루는 것이고, 사람을 잘 관리하려면 인간의 감정을 살펴야 한다. ‘감정 관리=조직 관리’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이유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군인들이 복무 중에 느끼는 감정은 군대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군대의 핵심인 간부의 감정은 군 조직 건전성과 직결된다.
육군 32사단이 주관하는 통합방위훈련에서 32사단 기동대대 요원들이 국가중요시설 테러를 위해 침투한 적에 대한 격멸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과연 간부들은 군 조직에서 긍정적인 심리를 지니고 있을까.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한국국방연구원(KIDA)과 국방부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발간한 ‘군 복무여건 개선사업 평가’ 보고서에서는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간부의 극단적 선택은 2014년 27건에 불과했지만 2021년엔 58건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엔 38건을 기록했다. 군인의 극단적 선택 중에서 간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40.3%에서 2023년 63.3%로 뛰었다.

KIDA가 2020년부터 매년 실시했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군 간부의 직업만족도는 2020년 71.9%에서 2023년 44.9%로 급락했다. 영관급(77.5%→61.3%)보다 위관급(63.3%→39.3%) 및 준·부사관(75.8%→44%) 하락이 두드러졌다.

직업으로서 군 간부를 추천하려는 의향도 떨어지고 있다. 같은 조사에선 ‘군인이라는 직업을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 답은 2021년 58.8%에서 2023년 29.3%로 반토막났다. 

우수 인재를 간부로 임용하려면 이미 복무중인 군인들의 적극적인 추천과 영입 활동이 필수다. 그런데 직업으로서 군인을 추천하겠다는 의사가 낮다면, 모병도 어려워진다.
육군 11사단 훈련에서 의무장교가 부상자에게 수혈을 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위관급과 준·부사관의 직업만족도 하락은 간부의 퇴직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대위·중사급에 해당하는 경력 5년 차에서 10년 차 간부들이 군을 떠나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1~2023년 간부 퇴직 자료에 따르면, 대위 퇴직자는 2021년 2259명에서 2023년 2775명으로 늘었다. 상사 퇴직자는 같은 기간 628명에서 1165명으로, 중사 퇴직자도 같은 기간에 2041명에서 3174명으로 급증했다.

대위와 상사, 중사는 일선 부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계급이다. 군 경험을 쌓았고 숙련도도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다. 이같은 수준의 간부가 퇴직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난다는 것은 한국군의 질적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퇴직이 잇따르면서 남아 있는 간부들의 업무 부담이 증가하고 심리적 동요가 커지는 것도 문제다.

지금까지의 군복무여건 개선 작업이 병사의 기본권 증진 효과는 있었으나 간부의 만족도를 충족하지는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해양 수산 분야 취업박람회에 해군 장병들이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간부는 왜 떠나나

그렇다면 간부들은 수 년에 걸쳐 쌓았던 군에서의 경력마저 포기한 채 군을 떠나려 할까. 우선 군의 조직·인사 관리와 업무 문제가 지적된다.

지난 16일 열린 서울안보포럼 창립 1주년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형래 예비역 상사는 “부사관을 교육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예초를 민간 위탁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부사관들이 예초기를 돌리고 있는가”라며 “군인으로 입대해서 집사처럼 일하는데 군생활을 하고 싶겠냐”고 말했다.

그는 “장교는 역보직이 없지만 부사관은 부소대장 하다가 해당 소대 분대장으로 보직이 바뀌기도 한다. 주임원사 임기가 끝나고 행정보급관을 하는 걸 부사관 후배들이 보는데 무슨 자긍심이 생기겠나”고 덧붙였다.

2∼3중 보직에 따른 과도한 업무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군의 인사관리는 고도 성장과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많은 인원을 입대시켜 단기간 활용하고 사회에 내보내서 예비전력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계급정년·연령정년 제도도 이같은 시기에 형성됐다.

이는 초저출생·저성장 시대에는 맞지 않다. 병역 자원을 나날이 줄어들고 있고, 부사관이나 장교를 지망하는 사람도 크게 감소하는 추세다. 업무와 보직도 이에 맞춰 조정을 하지 않으면, 군에 남아있는 간부들의 업무 과중은 피하기 어렵다.

복무여건도 문제다. 특히 주거문제는 끊임없이 지적되는 사항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군 관사는 2014년 이래 수요를 충족했던 적이 없다. 특히 지난해엔 수요가 8만3649세대였으나 보유세대는 6만6589세대로 1만7060세대가 부족해 지난 10년 이래 가장 부족분 규모를 기록했다. 간부숙소도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부족분이 1만2000실이 발생했다.
해병대 수색부대 장병들이 해안에서 정찰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노후화로 인한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 소요를 감안하면, 실제로 제공될 수 있는 숙소는 더욱 줄어든다. 

연령정년 문제도 군 간부의 전역에 영향을 미친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퇴역연금 수령이 가능한 계급은 영관급과 원사, 상사다. 대위, 중사는 정년 문제로 수령이 곤란하다.

위관급의 정년은 43세, 중사는 45세, 하사는 40세다. 1962년 이래로 60여년간 변함이 없다. 연금 수령이 쉽지 않다. 간부 연령정년이 수 차례 조정됐지만, 연금 수령이 가능한 장군과 영관급, 준위와 상사만 바뀐 셈이다.

청년들이 직업군인의 길을 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정성이다. 급여나 처우가 민간 기업보다 낮더라도 오랜 기간 복무하고 전역하면 퇴역연금을 받아서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문제는 현 체제에서 퇴역연금 수령이 가능한 영관급이나 준위·상사 계급까지 진출할 수 있는 사람은 처음 임관한 동기생들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역 후 퇴역연금 수령이 어렵다면, 정년이 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사회로 진출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래야 민간 조직에서 더 빨리 자리잡고 경력도 많이 쌓을 수 있다. 퇴직하는 간부 중 대위와 중사가 많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육군 9사단 장병이 시가지 훈련에서 소총을 조준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직·인사관리의 근본적 전환이 필수다. ‘있는 사람 잘 지키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간부로 임관한 사람이 가능한 오랜 기간 군에서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자세로 복무할 수 있도록 정책적 전환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위관급과 중사·하사 연령정년 연장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6급 이하 경찰 및 소방공무원 정년은 60세, 경호공무원 정년은 50세다. 미군(45∼62세), 독일군(55∼62세), 일본 자위대(54∼57세)와 비교해도 낮다.

일각에선 인건비와 연금 등 재정부담 소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병사 급여의 급속한 인상이 가능했던 상황에서 연령정년 연장에 따른 인건비와 연금 증가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며, 중도 전역을 원하는 사람에게 언제든 군을 떠날 기회를 준 상태에서 연령정년 연장은 우수 인력의 장기적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불필요한 행정·민원업무를 과감하게 축소하고 보직과 직위 중에서 중복되거나 통합이 가능한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기적인 조직 진단을 각 제대별로 실시, 보직과 직위 및 업무 조정을 상시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주거여건 개선에 대한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 군 숙소 우선 거주 방침은 2∼4년마다 이뤄지는 부대 이동에 따른 이사와 직결된다. 군 숙소에 입주하기 위해 대기하는 기간도 문제다. 잦은 이사는 군인과 가족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주거 선택권을 부여해 주거안정을 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군대는 첨단무기만 갖춘다고 위력을 떨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인의 사기와 능력이 갖춰져야 그 위력이 극대화된다. 이를 위해선 간부들이 열정적으로 복무에 전념할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정책 전환이 절실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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