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대신 몰래 쉰다"…'조용한 휴가' 떠나는 속사정 [글로벌X]

이소현 2024. 7. 2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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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사직’에 이어 美 직장 내 인기
美 유급휴가 5명 중 1명 못 받아 부족
원격근무로 업무·개인 시간 경계 모호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올여름 미국에서 많은 근로자가 유급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원격근무를 가장해 은밀한 휴가를 보내고 있다.

한 여성이 해변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근무시간 중 여가를 즐기는 이른바 ‘조용한 휴가’(Quiet Vacation) 사용 실태에 대해 조명했다.

조용한 휴가는 사표를 안 내고 최소한의 일만 하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게으르다고 느껴질 만큼의 유연한 근무 형태를 지닌 ‘꿀 직업’(lazy-girl jobs)에 이어 최근 소셜미디어(SNS)을 중심으로 유행해 올여름 실제 직장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미국 직장 내 전반적으로 조용한 휴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해리스폴이 1200명 미국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분의 1 이상이 ‘무단 휴가’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들은 조용한 휴가를 보내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항변했다. 우선 유급휴가가 불충분하다는 이유가 꼽힌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 민간 부문 근로자는 평균적으로 1년 근무 후 11일, 5년 근무 후 15일의 유급휴가를 받다. 그러나 이는 운이 좋은 경우이며, 5명 중 1명은 유급휴가가 전혀 없다.

시카고에 사는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 A(37)씨는 1년에 10일의 유급휴가를 받지만, 현재까지 단 하루만 사용했다고 전했다. 상사에 휴가를 요청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휴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며 “과거 직장에서 쉬는 날이면 동료가 마지못해 업무를 떠맡아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가장 최근 조용한 휴가는 지난 5월 상사 몰래 남편과 친구들과 며칠간 라스베이거스로 떠났지만, 휴양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리지는 않았다. A씨는 “수영장에서 놀면서 가끔 오는 업무 메시지에 노트북에 로그인했지만, 전혀 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제한 휴가 정책이 있는 회사의 직원들조차도 조용한 휴가를 사용하기도 한다. 너무 많이 쉬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다. 한 해운 회사의 고객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니콜 워커(33)는 무제한 휴가 정책을 사용하는 대신, 가족과 함께 재미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서 해변에서 일하다가 일을 마치면 휴가 상태로 전환한다. 그는 “휴가를 쓰면 업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며 “이 방법(조용한 휴가) 덕분에 일 년에 한 번 이상 가족과 휴가를 가면서도 근무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남성이 해변 해먹에서 휴식을 취하며 노트북으로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활성화된 원격근무는 개인 시간과 업무시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해리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항상 ‘온라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80%에 가까운 근로자들이 주어진 유급휴가를 최대한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리비 로드니 해리스폴 최고전략책임자는 “취약한 위치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이 조용한 휴가를 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용한 휴가는 종종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진정한 휴식을 취하지도 못하고 생산성도 떨어질 위험이 있으며, 상사에게 발각될 위험도 있어 상호 신뢰관계를 저하할 수도 있다. 조직 컨설팅 회사 콘 페리의 디팔리 비야스 수석은 “관리자들은 팀원들과 화상 통화에서 가상 배경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거나 요청에 대해 밤늦게 답변을 하는 경우 등에서 조용한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며 “평소보다 생산성이 30% 정도 떨어지기 때문에 직원들이 조용한 휴가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생산성이 낮아진다는 데에 반박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의 모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는 제이미 칼데론 선임 애널리스트는 “가끔 휴가를 보낼 때보다 더 체계적으로 하루를 계획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소현 (atoz@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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