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효율성 높이는 종부세…성장주의자가 좋아할 세금

한겨레 2024. 7. 2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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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상민의 나라살림
종부세 오해와 효과
지난해 11월23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강남우체국에서 8만7천여통에 이르는 강남구 종합부동산세 고지서 분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받는 가장 흔한 오해가 있다. 종부세는 부의 재분배에는 필요하나 시장원리에는 맞지 않는다는 착각이다. 형평성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가 추구할 만한 세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부세는 형평성 이전에 시장의 효율성과 부가가치를 높여 경제성장에 이바지하는 세금이다. 즉, 종부세는 자유시장주의자 또는 성장론자라면 추구해야 할 시장원리에 맞는 세금이다.

소득세는 소득을 ‘분배’하는 세금이다. 시장에서 발생한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고소득자에게는 높은 세금을, 저소득자에게는 낮은 세금을 부과한다. 형평성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세금이다. 다만, 이론적으로는 시장의 효율성을 낮춘다고 한다. 소득세가 높으면 여가와 노동이라는 재화 중 노동보다는 여가를 더 많이 선택해 노동 공급량이 줄어들어 경제성장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현실 세상에서는 이 이론이 딱 맞는지는 모르겠다. 세금이 증가한다고 소득 증대를 피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소득세는 형평성에 긍정적이나 효율성에 부정적인 세금인 것은 맞다.

과세로 토지 공급량 줄지 않아

가장 좋은 세금은 무엇일까? 바로 세금을 걷을 때 시장의 수요-공급량을 왜곡하지 않는 세금이다. 예컨대 소득세로 여가와 노동이라는 재화의 수요-공급량이 왜곡될 때, 시장의 효율성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자유시장주의자가 국가의 개입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수요-공급 곡선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수요-공급량을 왜곡하지 않는 세금이 있을까? 바로 종부세와 같은 부동산 보유세가 그렇다. 토지에 세금을 부과한다고 토지 공급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은 가장 시장 친화적인 세금이다. 주택 등 건물에 부과하는 보유세는 주택 공급량을 다소 줄이기는 한다. 그러나 건물은 다른 재화에 비해 건축 시간과 비용이 대단히 높은 재화다. 또한 부동산 규제도 많아 세금에 따른 공급량 변화(탄력성)가 상대적으로 낮다. 결국, 건물에 대한 세금은 소득세나 다른 세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 친화적인 세금이다.

성장주의자라면 종부세와 같은 부동산 보유세를 좋아해야 한다. 성장주의자가 싫어해야 하는 것은 무수익 자산 또는 저수익 자산이다. 경제성장률을 높이려면 모든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되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종부세와 같은 부동산 보유세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세금이다. 보유세가 낮으면 활용하지 않는 자산도 보유하게 된다. ‘언젠가는 오르겠지’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보유세가 1%라면 1% 이상 부가가치나 효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자산은 시장에 내놓게 된다. 그리고 그 자산은 1% 이상 효용이나 부가가치를 창출할 사람에게 이전된다. 그래서 종부세와 같은 보유세는 저수익 자산을 없애고 시장 효율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세금이다. 최소한 자유시장주의자는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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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보유세, 미국 1%-한국 0.2% 미만

물론 부동산 보유세를 지방세인 재산세 형태로 할지, 국세인 종부세 형태로 할지는 선택해야 할 문제다. 부동산 보유세는 재산세라는 형식을 통해 지방정부의 재원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다. 이는 지방정부가 행정을 잘하면 사람이 모여들고, 사람이 모여들면 땅값이 오르고, 땅값이 오르면 재산세수가 증가하는 좋은 행정의 인센티브를 통한 선순환 고리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데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 등의 땅값이 비싼 이유가 과연 이곳 단체장이 좋은 행정을 펼쳐서일까? 아니면 중앙정부의 비대칭적 개발 전략의 일환일까? 강남 땅값이 비싼 이유는 중앙정부의 차별적 개발 전략의 일환이다. 강북의 좋은 학교를 강제로 이전하기까지 했다. 차별적 전략으로 개발한 강남구의 모든 부동산 보유세를 강남구가 독점해 소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해 강남구 세출액은 1조2500억원이다. 그런데 세입은 1조6100억원이 걷혔다. 비싼 땅값에 따른 재산세 덕이다. 쓰지도 못한 잉여금이 무려 3600억원이다. 지방자치단체는 균형재정이 원칙이다. 세입과 세출이 일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들은 세수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던 지난해에도 강남구는 못 쓴 돈 3600억원이 강남구 통장에서 현금으로 놀고 있다.

그런데 2022년 강남구에서 발생한 종부세액이 3600억원이다. 3600억원을 현금으로 쌓아둔 강남구에 추가로 3600억원을 더 지급하면, 한쪽에서는 돈이 부족하고 다른 쪽에서는 돈이 넘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그래서 강남구에서 걷은 종부세수는 전국에 배분되는 게 맞다. ‘돈맥경화’를 막고 돈이 돌아야 경제가 성장하고 효율성이 증대된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경향신문 칼럼(한국 종부세와 미국 보유세의 3가지 차이점,종부세 폐지 공론화 - 고민정 의원이 옳다)에서 종부세를 비판하면서 우리나라는 거래세(취득세)가 높다는 이유를 들었다. 맞다. 우리나라는 거래세가 지나치게 높고, 보유세가 지나치게 낮다. 그렇다면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높여야 한다는 결론이 정상이다. 거래세가 높으니 보유세(종부세)를 낮춰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또한 최 소장은 한국과 미국의 부동산 보유세의 차이점을 여러개 나열했다. 그러나 세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세율이다. 최 소장은 부차적인 차이점은 언급하면서 가장 중요한 세율 얘기는 빼놓았다. 미국의 주택 보유세율은 약 1%다. 우리나라 주택 보유세율은 0.2% 미만이다.

재정에 대한 시각에서 보수와 진보는 너무 달라 보인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가 합의를 이룬 몇 안 되는 정책 목표가 있다. 바로 거래세(취득세)를 낮추고 보유세(종부세와 재산세)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시장원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부세 개혁은 중장기적 보유세 실효세율 목표를 국민적 합의를 통해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일 중장기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 목표치가 0.5%라면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방식의 재산세·종부세 인상, 그리고 취득세 비율을 낮출 로드맵을 정하는 것이 정치다. 단기적인 득표 전략만으로 정책을 정하는 것은 정부나 정당이 아니라 선거캠프일 뿐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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