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은 향만 50가지’ 요즘 향수 클래스, 퍼스트 클래스 [취저, 향수의 세계]

2024. 7. 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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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파펌나인’ 향수 원데이 클래스 체험기
주향 20가지·부향 30가지…시향하며 조합
찡한 코끝을 버티며 최종 50㎖ 향수로 완성
나만의, 세상 하나뿐인 ‘엑스트라 퍼퓸’으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파펌나인에서 진행된 시그니처 향수 클래스. 전새날 기자

[헤럴드경제=전새날·김희량 기자] 알 수 없는 향이 담긴 수십 개의 병이 눈앞에 놓였다. 뚜껑을 열고 향을 들이마셨다. 고개를 젓게 만드는 향이 있는 반면, 가까이 코를 대고 계속 맡고 싶을 정도로 좋은 향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것만 모으니 비슷한 향을 내는 병들만 남았다. 향수 클래스를 통해 발견한 ‘나만의 취향’이었다.

향기도 패션이다. 요즘 향수 시장에서는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우선하는 소비 트렌드가 뚜렷하다. 단순히 좋은 향을 택하는 것을 넘어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맞춤형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남들과 다른 나만의 향수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지난 18일 찾은 서울 마포구 파펌나인. 파펌나인이 진행하는 시그니처 향수 클래스에서 향을 조합해 원하는 향수를 제조할 수 있다. 수업은 조향 전문가인 주경 파팜나인 대표가 이끈다. 그는 “일반 공방과 다르게 체험 위주로만 운영하지 않고, 향수의 구입 패턴을 바꾸고 싶었다”며 “브랜드 제품은 가격 부담 외에도 취향과 거리가 먼 경우가 있어 퍼스널 향수의 질을 높여 꾸준한 구매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파펌나인에는 계절마다 어울리는 향수를 만들기 위해 주기적으로 방문하거나 자신의 조합으로 만든 향수를 재구매하기 위해 찾는 단골이 많았다.

주 향료를 선택하는 첫 번째 순서. 20가지 향료 중 한 가지를 선택한다. 전새날 기자

시그니처 클래스는 50㎖ 향수 한 병을 만드는데 1시간 정도가 걸렸다.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향에 대한 간단한 선호도를 확인한다. 그간 써왔던 향수를 떠올리며 사전기록표를 작성했다. 상큼・신선하며 자연스럽게 가벼운 ‘시트러스(Citrus) 향’과 나무껍질 향을 연상시키는 은은한 ‘우디(woody) 향’을 선호했다. 여기에 향은 어느 정도 진하지만 달콤하지 않은 향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모든 과정의 주인공은 소비자이자 제작자인 자신이다. 수업은 향수를 담는 용기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부터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형 용기까지 4가지 종류 중 한 가지를 택했다.

30가지 향료 중 선택한 향과 주 향료를 조합해보고 있다. 전새날 기자

이제 본격적으로 나만의 향을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먼저 20가지 향료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향 1가지를 골랐다. 20가지 향은 파펌나인이 시중에서 판매하는 명품 향수의 향을 유럽 조향사에게 의뢰해 비슷한 느낌으로 재현했다. 일부는 공방 스타일에 맞게 바꿨다. 니치향수에 익숙한 소비자라면 한 번쯤은 어디선가 맡아봤을 익숙한 향이었다.

차례대로 여러 향을 맡자 코끝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와인을 시음하면서 물을 마시듯 커피콩 향을 들이마시며 예민해진 코를 잠재웠다. 그 결과 20개 중에서 4개의 후보가 추려졌다. 고민이 깊어지자, 각 향의 특징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평소 우디한 향을 선호하는 점을 고려해 ‘집시워터’를 골랐다.

다음 향을 선택하기 전에 짧은 이론 수업이 이어졌다. 여러 향을 맡아 민감해진 코에 휴식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향수의 기본이 되는 건 노트다. 조향사는 “향수는 톱(top)·미들(middle)·라스트(last) 세 가지 노트(note)로 구성돼 조화를 이룬다”며 “향수 하나에는 적어도 수십 가지, 많게는 백여 가지의 향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트는 향 분자의 크기와 질량감에 따라 구분한다”며 “라스트로 갈수록 크고 무거운 분자를 뜻한다”고 부연했다.

최종 조합으로 각 향료를 비율에 맞춰 주입해 향수를 제조하고 있다. 전새날 기자

톱 노트는 향수의 첫인상과 같다. 분자가 작고 가벼워 빠르게 발향되고 지속력이 짧다. 미들에서 라스트로 갈수록 천천히 향이 발현되고 지속력도 길어진다. 미들의 지속시간은 1시간~1시간 30분이다. 거리를 걸으면서 맡는 향은 주로 미들 노트인 경우가 많다. 라스트 노트는 잔향이다. 끝까지 남은 향이 살과 맞닿아 낸다. 각 향이 조화를 이뤄 시공간에 따라 입체적인 향을 뿜는다.

다시 고민의 순간이 왔다. 30개의 향료가 눈앞에 놓였다. 최소 3개, 최대 6개를 골라야 했다. 6개 향을 선택했다.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수업 시작 전 달콤한 향을 싫어한다고 체크했는데, 직접 고른 향은 달콤함이 섞인 향이었다. 달콤한 향의 종류에도 수십 가지가 있었다. 거부감이 없는 달콤한 향이 어떤 향인지 알 수 있었다.

원하는 향을 모두 고르면 본격적인 향료 조합이 이뤄진다. 실시간으로 조합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바라는 향에 가까워졌다. 조향사의 추천에 따라 ‘나르시스’, ‘바이올렛’, ‘샌달우드’ 향을 스포이드로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10번 흔든 뒤 시향지에 뿌려 향을 맡았다. 이어 같은 방식으로 ‘피오니’와 ‘화이트린넨’ 향을 샘플 용기에 더해 두 번째 시향지에 뿌린 향을 맡았다.

기자가 시그니처 향수 클래스를 통해 직접 만든 퍼스널 향수. 파펌나인에는 별도의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전새날 기자

시향지를 비교하니 ‘화이트린넨’ 향을 더하면서 진해진 향이 아쉬웠다. “우디한 향이 더 강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조향사는 세 번째 조합을 추천했다. 그러나 너무 향이 가벼워 취향과 멀어진 느낌이었다. 다시 네 번째 조합을 시작했다. 샌달우드 향을 두 방울 추가하고, 화이트린넨 한 방울까지 넣었다. 가장 마지막에 제조한 향이 취향에 딱 맞았다.

샘플 용기에서 테스트를 거친 최종 조합은 50㎖ 향수 제품으로 완성된다. 저울에 용기를 올리고 각 향료의 g(그람) 수를 맞춰 스포이드로 주입한다. 조합 비율대로 넣은 향료에 에탄올을 넣으면 클래스가 끝난다.

이날 만든 향수는 지속시간이 4~5시간에 이르는 ‘엑스트라 퍼퓸(extra perfume)’이다. 향수는 항료와 에탄올을 섞어 만든다. 향수에서 향료의 원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부향률’이라 부른다. 주인공이 되는 향료가 얼마나 들어갔는지에 따라 발향력과 지속력이 달라진다.

향 선택부터 조합까지 오롯이 취향에 맞춘 나만의 향수. 5일의 숙성 기간을 거치면 사용할 수 있다.

newd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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