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 할래요”···교육 현장을 떠나는 세계의 교사들 [일당백]
미국·유럽 공립학교 선생님 비인기 직업으로 전락
교사기근 독일 등, 비필수 과목 수업시수 줄이기도
낮은 임금·많은 업무···"학부모·아이 상대도 힘들어"
우수 인재 유치 위해 교육 환경의 대대적 개선 필요해
많은 사람들의 장래희망이 선생님이었던 때도 있었다. ‘있었다’는 표현은 요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탓이다. 선생님, 특히 공립학교 초중학교 선생님은 세계 각국 어디에서도 대체로 인기 없는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저출산으로 가르칠 아이가 점점 줄어드는데도 선생님 수는 부족한 처지다. 선생님이 부족해 자격 없는 교사가 수업을 이끌고 예체능 과목을 가르칠 사람이 없어 아예 수업을 없애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 교육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에스토니아는 최근 젊은 교사를 채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교사의 절반 이상은 50세 이상으로 유럽연합(EU) 평균인 38%보다 훨씬 높다. 10년 안에 많은 교사가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새로 채용한 신규 교사 3명 중 1명은 3년 이내 직장을 관두고 있다. 심지어 절반 가량은 5년 이내에 교직을 떠난다. 에스토니아의 상공회의소는 2023년 “지난 10년간 단 13명의 물리학 교사만을 양성했다”고 경고했다. 에스토니아의 청소년은 유럽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학업 성취를 자랑한다. 하지만 교사들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이 같은 성취를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사 부족 현상은 에스토니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대부분이 고질적인 교사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의 한 연구는 43개 교육 시스템 중 38개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든 교사 인력과 관련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네덜란드 현지 매체 NL타임스는 13일(현지시간) 새 학기가 한 달 반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3200개 이상의 초·중학교의 교사 공석을 채우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일 간 400개의 채용 공고가 추가됐지만 중학교 3곳 중 1곳, 초등학교 10곳 중 1곳은 선생님이 부족하다. 네덜란드에서 그다지 놀라운 소식이 아니며 그나마 지난해보다 교사 결원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관련 단체에 따르면 “1만 명의 교사가 부족하며 때로는 지역마다 필요한 인원의 25%까지 부족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 역시 지난 10년간 교사 양성 과정이 고초를 겪었다. 지원자가 부족해서다. 특히 지난해에는 교사 연수를 시작하는 사람의 수가 2019년보다 20% 감소했다.
미국에서도 교사를 꿈꾸는 사람은 빠르게 줄고 있다. 브라운대학교의 매튜 크래프트는 미국에서 교직에 대한 인식이 5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설문조사 결과 ‘선생님이 자녀에게 좋은 직업이 될 것’이라고 응답한 학부모의 비율은 2022년 37%까지 떨어져 2009년 대비 반 토막이 났다. 학교나 대학에서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한 고등학생의 비율도 거의 비슷하게 줄어 10명 중 한 명 꼴로 내려 앉았다.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는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미쳐 2006~2020년까지 미국 공립학교에서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의 수는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선진국에서 교사가 인기 없는 직업이 된 가장 큰 이유로는 낮은 급여가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부유한 국가의 교사들은 비슷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보다 평균 10%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 실질임금으로 따지면 점점 더 줄어드는 모습인데 예컨대 영국 교사들은 2010년에 비해 2022년 12% 더 적게 벌었고 미국도 비슷한 기간 동안 약 6% 실질임금이 감소했다. 실제 지난 6월 워싱턴DC에서 열린 미 상원 보건·교육·노동·연금위원회에 참석한 유타주의 초등교사 존 아서는 자신이 공립학교 교사로 재직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아내가 나보다 더 돈을 잘 벌어서”라고 했다. 버니 샌더스 교육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3월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만큼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수십 년 동안 공립학교 교사들이 과로, 저임금, 인력 부족 등에 시달리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교사들을 인터뷰해 “교직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한국의 상황에 빗대 설명하자면 일단 에스토니아 정부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동을 ‘특수학급’ 등 별도 교육이 아니라 모두 함께 교육을 받는 ‘일반교실’에 배치하기를 원하지만 교사들은 그에 관한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학부모들도 과거보다 선생님들과 자주 부딪힌다. 한 교사는 요즘 학생들이 그리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또 다른 교사는 휴대폰 등의 미디어 매체탓에 아이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애리조나주립대의 브렌트 매딘의 말을 인용해 신입 교사와 10년 차 교사의 업무가 비슷하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입사원이 입사 첫날부터 베테랑과 거의 비슷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신입사원을 지치게 하는 반면 노련한 베테랑에게는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는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높은 지위를 꿈꾸는 야심 찬 사람들에게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지에서 배제하게 만든다.
실제로 최근 들어 교사는 매력 없는 직업으로 인식되는 중이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2023년 10월 미국 공립교사 25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선생님들의 68%는 업무가 너무 많으며 70%는 학교에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또 52%는 지금 직업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교사가 되라고 조언하지 않겠다고 답했고 77%가 일 때문에 자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공립교사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전체 근로자의 평균보다 전반적으로 낮은데 ‘아주 만족’한다고 답한 교사 응답자가 전체의 33%로 전체 근로자의 응답(51%)와 비교해 18%포인트나 낮았다.
교사 부족에 대한 걱정은 교육의 품질에 대한 우려와 맞물린다. 미국 한 연구에 따르면 상위 25% 교사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하위 25% 교사가 가르치는 아이들보다 두 배 더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인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오늘날 교사 부족의 문제가 학교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은밀하게 아이들의 학업에 영향을 준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에스토니아는 현재 약 5분의 1의 교실에서 정식 교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수업을 진행한다. 10년 전인 2014년과 비교해 두 배 늘어난 수치다. 또 30세 미만 교사 중 연수를 받은 교사는 2012년 67% 수준이었지만 2022년 50% 수준으로 내려 낮았다. 독일의 경우 일손 부족으로 일부 학교가 주 4일 수업으로 전환했으며 역사 등 ‘비핵심 과목’의 경우 한 달에 몇 번씩 취소된다고 한다. 30년 넘게 함부르크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레베카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학교는 결원을 채우지 못하고 동료 교사들은 과로로 지쳐 몇 주, 심지어 몇 달씩 병가를 간다”며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는 현재 1만 4000개의 정규 교사 자리가 공석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과소 평가됐다”며 2035년까지 교사의 총 공석 수가 시간제를 포함해 50만 개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교사가 되기 위한 경쟁이 사라지면서 신규 채용의 질도 떨어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전체 졸업생의 20%를 차지하는 미국 엘리트 대학들이 신규 교사는 7% 정도만 배출하고 있는 반면 졸업생 13% 정도를 차지하는 중하위권 대학에서 신규 교사의 4분의 1을 배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 현장에 실력 있는 선생님을 늘리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형편 없는’ 급여 수준을 정상화하고 업무 부담은 덜어줄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공립학교 교사 확보를 위해 젊은 교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부담을 줄이는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교사 초과 근무를 월 20시간으로 줄이는 동시에 업무 첫 해에는 부담이 큰 담임교사 대신 교과교사로 배치하고 수업 시수를 줄이는 방안 등을 담았다. ‘교실을 책임지는 선생님’이라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 환경을 꾸리는 방법도 고민해볼 만하다. 애리조나주 매딘 박사는 이코노미스트에 “한 명이 아니라 하나의 팀으로 구성된 여러 명의 교사가 전 학년 그룹을 동시에 책임지게 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렇게 구성된 팀은 젊은 교사들의 부담을 더는 동시에 학부모와의 관계 등에서 교사의 고립감을 덜 느끼게 하는 등의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 역시 자신의 수준에 맞는 교사를 만날 기회가 늘고 교실은 더욱 역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일의 기쁨과 실망’ 속에서 몸부림치곤 합니다. 그리고 이는 옆 나라와 옆의 옆 나라 직장인도 매한가지일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결코 피할 수 없는 ‘일 하는 삶’에 대해 세계의 직장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매주 일요일 ‘일당백(일요일엔 당신이 궁금한 100가지 일 이야기)’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미생들의 관심사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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