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하면 한국 경제에 득일까, 실일까[산업이지]
한국 주력 산업 자동차·2차전지·반도체 등 영향 커 전략 재수립 필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오는 11월5일(현지시간) 치러집니다. 100일 넘게 남은 21일 예측이 쉽지 않지만, 여론조사나 미국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전해집니다.
같은 날 대선뿐 아니라 상·하원 의회 선거도 함께 치러집니다. 현재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은 물론,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원도 공화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현재 상원은 민주당이 51석, 공화당이 49석이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또 한 번 입성하면 한국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득일까요, 실일까요? 분명 득인 부분도 있고, 실인 부분도 있을 겁니다. 올해 들어 국책연구기관 산업연구원을 포함해 여러 연구기관에서 다양한 보고서를 낸 바 있습니다.
보고서에 따라 일부 다른 분석도 있지만, 공통으로 전망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2차전지 등이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복수의 기관이 전망하고 있습니다. 관세 확대 등으로 대표 산업인 반도체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들 산업을 중심으로 어떤 게 득이고, 어떤 게 실일지 정리해봤습니다.
바이든 정부 상징 ‘인플레이션 감축법’ 폐기될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의 상징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을 폐기할 가능성이 매우 클 것으로 보입니다.
IRA는 친환경 에너지, 건강관리 등 분야에 4370억달러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기후 변화 대응을 목적으로 하는 법으로 2022년 8월 발효됐습니다. 친환경 에너지·제조업·차량·연료 관련 세액공제가 핵심이죠. 정확히는 세액공제지만 보조금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IRA는 ‘새로운 녹색 사기(New Green Scam)’라며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보조금만 퍼주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축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시켰다”고 밝혔습니다.
IRA가 폐기되면 미국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한국의 자동차, 2차전지 산업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IRA가 살아남을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IRA를 폐기하려면 이를 무력화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IRA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오바마 케어’ 폐지를 시도했지만, 공화당 내 이탈표 등이 발생하며 폐지는 상원에서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IRA 폐기보다는 축소될 가능성 클 것으로 관측
폐기까지는 아니라도 행정명령 등을 통해 IRA 지원 규모를 축소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액공제 요건을 기존보다 더욱 엄격하게 적용해 수혜 차종의 수를 줄이고, 내연기관차 지원을 확대해 전기차 보급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IRA 지원 규모 등이 축소되면 자동차보다 2차전지 산업이 더 타격이 클 것이란 전망이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가 지금까지 발표한 미국 투자 계획들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2027년 635기가와트시(GWh)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대규모로 투자한 데는 IRA 때문인데, IRA가 축소되면 투자로 거둘 수 있는 미래 이익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사실상 투자 실패가 되는 셈이죠. 이에 따른 충격은 태평양 건너 한국까지 전달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비해 자동차 산업은 타격이 작고, IRA 축소가 오히려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전기차 수요가 감소하는 부분은 한국 자동차 기업들에 다소 부정적이지만, 내연기관이나 하이브리드차량의 경쟁력도 높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국내외 전기차 관련 생산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인데 향후 전기차 수요가 정체되면, 친환경 자동차 관련 부품 업체의 경우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관세 확대가 미칠 영향은
IRA 폐기와 함께 거론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표 정책은 관세 확대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모든 수입품에 대해 전면적으로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특히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는 최소 60%에서 최대 200%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확대는 한국의 자동차 부품 산업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른바 중국산 부품이 한국산으로 대체돼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다만 관세 확대는 미국 시장에서 호조를 보이는 완성차 수출에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국내 생산 물량 중 약 90%를 미국에 판매하고 있는 한국GM은 추가 관세 부과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스마트폰·PC·서버 등 제조 기지의 탈중국과 인도·태평양 주요국으로 이전·분산하는 흐름이 급격히 가속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거론됩니다.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가 강해지면 고율 관세에서 비켜나 있는 한국의 반도체 기업 판로에 단기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산업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합친 한국 반도체 산업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2017년(70.2%) 이후 점진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홍콩을 포함한 대중국 수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55.4%로 1위입니다. 극단적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한국 기업들의 판로 변화 대응과 탐색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위기가 기회될 수도
한국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을 통해 발전했습니다. 성장 전략이나 경제 체질을 대폭 전환할 수 없다면, 국제 정세를 면밀히 주시하고 대비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있는 겁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을 하든 재집권을 하지 못하든 미국의 자국 중심 보호무역주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대부분의 보고서는 전망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이 확대될 것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습니다.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여러 기관은 분석했습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5월 말 발간한 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 위기인가 기회인가’ 중 한 문장으로 기사를 마무리합니다.
“무엇보다도 ‘각자도생’ 시대를 맞은 현재 정책 당국의 ‘합리적·규범적’ 운영 원리보다 ‘합목적·전략적’ 행동 논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과 트럼프 간 차이는 존재하나 보호무역주의 및 자국 산업 기반 강화라는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미래 ‘전략 논리’의 30년은 경제안보를 기치로 더 이상 절차적 정당성 및 국제관계상 고상한 규범과 도덕에 기반한 시대가 아니다. 우리의 핵심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가용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고, 선례가 없다면 만들면서 나가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 자료
산업연구원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 위기인가 기회인가’, ‘미 대선 향방에 따른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 방안’,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한국 배터리산업 리스크 분석 - IRA 변화 전망과 국내 산업 영향을 중심으로’, ‘미 제47대 대선과 반도체 국제 분업 구조 변화’, ‘미 대선에 따른 한국 자동차산업의 영향’,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국내 산업 영향과 시사점 - 자동차와 이차전지산업을 중심으로’
대한상공회의소 ‘한미통상포럼 : 미 대선 통상정책과 공급망 대응전략’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공화당과 트럼프의 통상분야 공약 주요 내용과 시사점’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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