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부터 여자할래”...한국도 性전환 ‘셀프 선언’시대 도래하나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4. 7. 21.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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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톺아보기-137]
지난 2019년 성별정정을 하려면 반드시 성전환수술을 받도록 한 법률이 “현 시점에서는 합헌”이라는 일본 대법의 판결후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훔치는 청구인 우스이 타카키토. [연합뉴스]
“성별 변경에 항상 수술이 필요하다고 할 경우 신체를 훼손하지 않을 권리에 위배돼 위헌 소지가 있다.”

지난 10일 일본 히로시마 고법에서 내려진 이 같은 판결은 일본 사회에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외적으로 ‘남성의 성기를 가진 여성’을 법적 여성으로 인정하겠다고 사실상 결론을 내린 셈이기 때문입니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결정이 “향후 수술 없는 성별변경에 대한 길을 열어주는 사법적 판단”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해당 심리의 청구인 A씨는 출생 및 호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오래 전 ‘성동일성 장애’로 진단된 바 있습니다. 성동일성 장애란 육체적으로는 완전한 남성 또는 여성이지만, 스스로를 반대의 성으로 확신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장기간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 여성의 정체성으로 살아왔다는 그는 성별 변경에 수반되는 외형 요건이 수술 등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해왔습니다. A씨는 “소원이 이뤄졌다. 사회적 성별과 호적 성별의 차이로 어려웠던 점들에서 드디어 해방됐다. 지지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日대법 판결 5년만에 뒤집혀...정치권도 법개정 논의
지난해 10월 일본 대법원이 성별 변경시 불임 수술을 의무화한 법 규정이 위헌이라고 판단하자 소송을 제기한 측 변호인단이 ‘(하급심으로의) 파기환송’ ‘위헌’이라고 쓴 글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성별변경 관련 민원이 늘자 지난 2004년 성별 변경이 인정되는 요건을 담은 ‘성동일성장애 특례법’을 제정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성별 변경이 인정되기 위해선 전문 지식을 가진 2명 이상의 의사로부터 성동일성 장애로 진단 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만 18세 이상 성인일 것 △현재 결혼하지 않은 상태일 것 △미성년 자녀가 없을 것 △생식선·생식 기능이 없을 것 △변경 후 성별의 성기와 비슷한 외관을 갖추고 있을 것 등 5가지 요건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즉, 성별을 바꾸려면 사실상 생식기능을 없앤뒤 변경후 성별과 유사한 성기 모습을 갖출 것을 요구했던 겁니다. 이 두가지 요건이 바로 최근 쟁점이 된 사안입니다. 히로시마 고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은 마지막 요건에 해당하는 ‘외관 요건’ 이었습니다.

지난 3일 성별변경에 있어 수술 요건을 삭제하는 법 개정 목표를 밝히는 일본 연립여당 공명당 의원. [NHK 캡처]
사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10월 일본 대법원에서 성별변경을 위해 생식선· 생식기능 수술을 요구하는 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을때 예고된 수순이었습니다.

일본 대법원은 지난 2019년 동일한 취지로 제기된 소송에서는 이 요건에 대해 “변경 전 성별의 생식 기능에 의해 아이가 태어나면 사회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며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5년 뒤에는 이를 뒤집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일본내외 인권단체들은 수술없는 성별전환을 막는 것은 세계적 흐름에 어긋난다며 목소리를 높여왔는데, 이로 인한 압력이 어느정도 작용한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옵니다.

대법 판단 이후 예상대로일본 각 지역 법원에서는 수술없는 성별 변경을 인정하는 사례가 잇따르기 시작했고, 정치권에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집권 자민당은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성별 변경 요건 재검토 의견을 받아들여 올 가을 법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씨의 대리인을 맡은 변호사는 “정치권에서 이미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안다. 성소수자들의 어려움과 불이익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입법 논의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인권과 존엄성 고려한 옳은 판단” vs “호르몬 치료 기준 자의적...혼란 불가피”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에서 한 일본 여성단체 회원들이 대법원의 성별 변경시 수술 요건 철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다만 이 같은 흐름에 대해서는 일본 일반 시민들은 물론 성소수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과 함께 찬반이 엇갈리는 모습 입니다.

찬성측은 기본적으로 수술을 원치 않는 이들에게 수술을 강요하는 건 인권 침해라는 점에서 옳은 판단이라는 의견 입니다. 타나무라 마사유키 와세다대 명예 교수는 NHK에 “외형 요건을 대폭 완화해 수술없는 성별 변경을 인정하는 혁신적 결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몸에 칼을 대는 일 없이 성 정체성에 따라 살아가려는 개인의 존엄과 이익을 구제하려 노력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반면, 반대측에서는 수술이 필요없다면 성별 변경에 자의적 판단이 작용할 수밖에 없어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 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호르몬 치료로만 성별이 바뀌게 된다면 과연 어느정도 수준까지가 여성인 것이고 남성인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너무 주관적이고 모호해진다는 겁니다.

한 일본인 성전환자는 “여성 호르몬으로 남성이 위축되는데에는 개인차가 크다. 경험상 여성 호르몬을 장기 투여했다고 해서 발기가 아예 안되는 것도 아니고 성기능이 완전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만약 성별 변경 뒤 여성 호르몬 투여를 중단해 남성 기능이 회복될 경우는 어떻게 되나” 라며 “성범죄라도 일어난다면 그 책임은 재판부가 져 줄 것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이들이 피해를 보게될 거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일본의 성동일성장애자들로 구성된 ‘성동일성장애특례법지킴이모임’은 “이대로라면 수술후 부여받은 성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사라질 것” 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수술후 바뀐 성별로 가까스로 사회에 받아들여지던 이들까지 “남자 성기가 그대로 있을것”이라고 의심 받게 된다는 겁니다. 이들은 “이번 판결은 성전환 수술을 했지만 남성 느낌이 많이 남아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격” 이라며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고 호소했습니다.

세계적 흐름은 ‘성전환 간소화’ ...유럽선 ‘셀프 선언’ 성전환 확산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성소수자 등의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CSD·Christopher Street Day) 행진모습. 이날 독일은 당사자가 법적 성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자기 주도 결정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연합뉴스]
일본에서는 비교적 최근들어 논란이 됐으나 성전환시 수술필요 여부는 유럽, 남미 등지에선 훨씬 이전부터 이슈가 됐던 사안입니다. 예컨데, 유럽에서는 영국이 2004년, 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가 2012년 처음으로 수술없는 성전환을 허용하는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움직임이 잇따랐습니다. 동아시아에서도 일본에 앞서 지난 2021년 대만에서 수술없는 성전환을 허용하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일부 국가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수술은 물론 아무런 의학적 진단도 없이 ‘셀프 선언’(self-declaration)만으로 성별변경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만 16세 이상에 서류절차만 거치면 의사의 판단이나 호르몬 치료 없이도 성별을 바꿀수 있습니다. 벌써 스페인, 독일, 스웨덴, 덴마크, 아일랜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스위스, 스코틀랜드 등등 유럽에서만 20여개 국가들이 이런 흐름에 동참한 상태 입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1년뒤 재변경도 허용한다고 하니, 가령 지난해 남자였다가 올해 여자, 다시 내년엔 남자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사회적 성별을 극도로 중시한 결과 성별을 구분하는 기준이 생물학적 특성 대신 당사자의 주장이 돼버렸습니다.

이처럼 성전환이 간소화 되는 추세는 세계적 대세로 자리잡은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 대해 소위 ‘진보주의자’ 들은 “개인의 인권과 정체성을 존중하고 자율성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획기적” 이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탈의실 등 공공장소 이용 논란 및 범죄 악용 우려도
지난해 미국의 한 요가학원에서 여자 탈의실 사용을 제지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트랜스젠더 딜런 마일즈.[뉴스원]
하지만 사회적 혼란과 이를 악용한 범죄 가능성 등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절대 다수의 권리와 공공의 안전을 간과한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일본의 여성단체 ‘여성의 공간을 지키는 모임’은 “남성의 체격에 성기까지 갖춘 ‘호적상 여성’과 화장실이나 목욕탕을 함께 쓰는 것을 여성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라며 “이들이 여성들의 공간을 이용할 수 없게 하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성이 요가학원에서 여자 탈의실을 이용하려다 제지당하자 해당 학원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 남성은 호르몬 치료를 받는 중이었지만 성전환 수술은 받지 않았는데, 같은 탈의실에서 그를 본 여성들은 충격과 공포감을 호소했습니다.

지난해 스코틀랜드에서 여성 두 명을 성폭행한 뒤 재판을 기다리던 중 여성으로 성전환해 여성 교도소에 수감돼 논란을 일으킨 이슬라 브라이슨. 그는 개명까지 했다.[X캡처]
같은해 스코틀랜드에서는 더 골치아픈 일이 발생했습니다. 여성 두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남성이 재판 도중 여성으로 성별 변경을 신청한 겁니다.

범행당시 여성들을 강간했던 남성을 여성으로 취급해야하는 혼란스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녀는 성기를 삽입했다” 라는 기이한 진술이 법정에서 통용됐습니다. 그가 여자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 남성의 전 아내는 현지 언론에 “그는 한번도 성 정체성에 관해 말한 적이 없었다”며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여론의 뭇매에 스코틀랜드 사법당국은 결국 그를 남자 교도소로 이감시켰습니다.

국제 인권 감시 기구 ‘휴먼 라이츠 워치’ 에 따르면 자기 선언만으로 성전환을 허용하는 법이 시행된 이후 독일에서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범죄가 늘었습니다. 2년전 퀴어 퍼레이드 때는 트랜스젠더 남성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이에 이 같은 급진적 변화가 오히려 성소수자들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서도 “성전환 수술 강요는 위헌소지” 판결...유럽 따라가나
챗 GPT가 미래에 자기 선언만으로 성별변경이 가능해지는 한국의 모습을 상상해 그린 이미지.
아직 한국에서 성별 정정 요건을 명시한 법률은 없습니다. 다만 사법체계가 닮았기 때문인지 대법 판례가 기본적으로 요구해온 기준은 일본과 유사합니다. 여기에는 △성전환 수술을 받아 생식능력을 상실하고 신체 외관이 바꾸려는 성별로 바뀌었을 것 이라는 요건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은 현재 예규를 통해 성별을 변경할때 성전환 수술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참고사항으로 규정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성전환수술 여부를 성별 정정 허가 기준으로 삼는 이 같은 예규가 현행 법률에 위배된다는 판단이 일선 법원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청주지법 영동지원은 수술을 받지 않은 성전환자 5명의 성별 정정을 허가하며 “해당 예규 조항을 들어 성별정정을 불허한다면 대법 판례에서 요구하지 않은 사항을 허가 요건으로 삼게 돼 법리에 반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법률이 아닌 예규가 기본권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며 위헌성을 지적했습니다.

같은 달 정의당 소속 장혜영 당시 의원이 성전환 수술 없이도 성별 정정을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유럽에서는 수술없는 성별 변경 허용에서 더 나아가 자기선언 만으로도 가능해지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성전환 오남용 가능성을 지적하며 조치를 요구하는 이들은 ‘성소수자 혐오론자’ 라는 낙인과 함께 ‘진보의 길’ 을 방해하는 수구세력으로 취급받는 상황입니다.

최근 판결들과 정치권 움직임을 볼 때 한국도 성전환 간소화라는 대세를 반영해 이미 이 같은 방향을 향해 첫발을 띤 것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유럽처럼 누구나 성별을 바꾸고 싶을때 손쉽게 바꾸는 ‘셀프 성별 선택’의 시대가 도래하는 한국의 모습도 완전 배제할순 없어 보입니다. 어제 성별을 변경해 오늘 여자가 됐지만 좀 지내보니 다시 남자가 되고 싶어 다시 성별을 바꾸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다만 성인남성에게만 병역의무가 주어지는 한국의 특성상 사회정치적 혼란은 다른나라들 보다 몇배는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과연 지금보다 풍요롭고 이상적이며 그들이 주장하는 소위 ‘진보적인’ 사회의 모습일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매우 의구심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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