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23명 사망한 ‘화성 참사’ 불씨는? [세상에 이런 법이]
2001년 겨울, 깜깜한 새벽이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어느 인력사무소는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책상에 무심하게 놓인 바구니에 사람들이 신분증을 쌓았다. 내 주민등록증도 그 위에 올려졌다. 잠시 후 나를 포함한 몇 명이 호명되었고, 그 순서대로 사무실 밖 승합차에 태워졌다. 차는 곧 어디론가 떠났다. 아무도 목적지가 어디인지 묻지 않았다. 첫째 날은 경기 용인의 신축 아파트 공사장, 다음 날은 서울 선릉의 대형 빌딩 공사장이었다.
열흘 남짓, 그렇게 이곳저곳으로 운반되어 시키는 일을 했다. 별 기술이 없는 탓에 주로 공사 자재나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일이 주어졌다. 나를 채용한 사장(인력사무소)과 나에게 일을 시킨 사장(건설회사)이 달랐으니, 일종의 ‘파견’ 노동이었다. 건설공사 현장 업무는 예나 지금이나 파견 사업 대상이 될 수 없으니(파견법 제5조 제3항 제1호), 불법파견인 셈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나의 노동이 불법인지 몰랐다. 그저 일이 고되고 날이 추웠으며, 많은 것이 참 낯설고 무심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떨구어진 일터와 주어진 일,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낯설었고, 서로에게 참 무심했다. 굳이 익숙해지거나 친밀해질 필요도 없었다. 당장 내일은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다른 사람과 하게 될 수 있었으니까.
그 낯설고 무심했던 노동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2016년에 발생한 끔찍한 산재사고 때문이었다. 부천의 휴대전화 부품 공장에서 다수의 노동자가 메탄올에 중독되어 실명하고 말았다. 사업주가 작업공간에 분사되는 절삭 용액으로 에탄올보다 값이 싼 메탄올을 사용한 게 원인이었다. 노동자들은 그 용액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고, 적절한 보호장비도 지급받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실마리는 파견이었다. 피해 노동자들이 모두 인력사무소를 통해 그 공장에 투입된 파견직이었다. 과거에 내가 짧게 경험했던 파견 노동을 사업주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낯설고 무심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사업주에게는 어떤 존재로 비칠까.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구매한 인력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사정으로 이곳에 왔는지, 언제까지 여기서 일할지 모두 관심 밖일 것이다. 그들의 안전이나 건강 따위를 신경 쓰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법은 위험한 일터에서는 파견 노동이 허용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정부의 부실한 관리·감독을 틈타 불법파견이 횡행했고, 2016년 메탄올 중독 사고는 그러한 불법파견 현장에서 발생했다. 당시 많은 활동가가 불법파견 문제를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 이유다. 고용노동부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사고 원인으로 고작 사업주의 부도덕이나 안전불감증 따위를 내세웠고, 파견 문제와 관련짓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까지 보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파견 규제 완화, 파견업 확대를 앞장서 추진했던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안전교육 못 받았고 비상구도 몰랐다”
파견 규제 완화 기조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계속되어, 불법파견 사업장에 대한 소극 행정으로 이어졌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노동부가 불법파견 근로감독을 한 사업장 수는 2020년 636개, 2021년 534개, 2022년 489개, 2023년 465개였다”라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 또 한 번의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화성의 리튬 배터리 공장에서 노동자 23명이 화재로 사망했다. 그들은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고 비상구도 알지 못했다”라고 했다. 불이 난 공장에서 대피로를 찾지 못하던 노동자들이 출구 반대편에서 우왕좌왕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체 왜, 또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번 의문도 파견이라는 키워드로 풀린다. 사망자 대다수가 위장도급 업체에 의해 불법파견된 노동자로 나타나고 있다. 위험한 일터에서 자행된 불법파견이 또 하나의 참사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정부의 태도는 여전하다. 이번 참사도 파견 문제와 관련짓지 않으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심지어 파견 규제 완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가 파견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보려면 더 많은 노동자가 시력을 잃고 생명을 잃어야 하는 걸까. 노동자들에게 참 고약한 국가다. 화성 참사 피해 노동자들의 명복을 빈다.
임자운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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