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희망이다] "건강·맛, 다잡을래요"…해외간호사 경험살려 건강식 개발
당뇨 병동 근무, 도장 감리사 등 이색 경력…"현재의 경험, 새로운 도전 자산 될 것"
[※편집자 주 = 지방에 터를 잡고 소중한 꿈을 일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입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때로는 인연이 없었던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청년의 존재는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됩니다. 연합뉴스는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과 꿈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건강에 좋은 음식은 맛이 없고, 음식 맛을 포기해야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죠. 하지만 건강에 좋다는 음식에 실제로는 몸에 나쁜 성분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 반대로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건강에 좋고 맛도 보장되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설탕과 밀가루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은 식재료와 그 재료로 만든 기능성 식품을 생산하는 '로슈'의 김중경(37) 대표.
비만이나 당뇨 환자조차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판매하는 동시에, 그 사업 영역을 점차 넓혀가는 과정에 있는 유망한 청년 사업가다.
현재 김 대표가 걷는 길만 보면 식품학을 전공한 전문가쯤으로 짐작하기 쉽지만, 그의 이력은 꽤 이채롭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인도의 국제학교에서 유학하면서 중·고등학생 시기를 보냈다.
이후 호주로 건너가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현지 정착을 꿈꿨다.
당시 2년간 당뇨 병동에서 중증 환자들을 돌봤는데, 이때 경험은 훗날 식품 사업을 현실화하는 데 큰 자산이 됐다.
"환자들이 '유기농', '비건', '무설탕' 등이 강조된 간식을 먹는데, 환자들에게 안전하지 않은 성분도 분명 있었어요. 보기 좋은 수식어를 붙여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만든 제품들이었죠. 혼자 살면서 홈 쿠킹이나 베이킹에 관심이 많아 관련 지식이 제법 있던 터라, 그런 점이 더 아쉬웠어요."
한국의 계신 부모님의 건강 악화로 호주 정착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김 대표는, 고국으로 돌아와 병역 의무부터 이행했다.
이후 경력을 살려 간호사로 일하는 방법을 찾았지만, 국내 자격을 위해서는 1년가량 다시 공부가 필요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김 대표는 일단 돈을 벌기 위해 국제 도장 품질검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선박의 특수 도장 품질을 관리하는 감리사 일을 시작했다.
경남 거제와 울산의 외국계 기업에서 7년가량 직장 생활을 이어갔는데, 뜻밖에도 대사증후군 직전 단계에 이를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고 말았다.
불규칙한 식사, 잦은 회식, 스트레스 등이 몸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당뇨 환자를 돌보던 간호사로서 건강에는 전문가라고 자부하던 김 대표였기에, 스스로 건강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곧장 직장 생활을 정리한 김 대표는 유기농 차와 그에 맞는 빵·과자 등을 판매하는 베이커리 카페에 취업했다.
평소 관심사에 맞는 직업에 드디어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건강에 좋은 베이커리 제품을 개발하는 업무를 2년가량 하면서 전문성을 키웠어요. 직접 사업을 해볼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당시 사장님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죠. 그렇게 2022년 10월 로슈를 창업했고, 로슈의 제품을 제가 근무했던 카페에 납품하면서 꾸준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창업 과정에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청년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창업 자본과 경험이 없는 청년에게, 이들 지원사업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청년창업사관학교, 울산경제진흥원의 울산청년CEO 육성지원사업 등에 참여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잡아주는 컨설팅, 연구 설비 지원, 사업화 지원 등 도움을 받았다.
충실한 준비를 거친 김 대표는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아이디어를 하나씩 제품화했다.
김 대표는 설탕과 밀가루 없이 20가지 이상 곡물과 기능성 원료로 만든 '베이킹 믹스', 당류와 열량이 없는 천연 유래 설탕 대체제, 무설탕 절임 과일, 설탕 없이 카카오빈을 갈아 만든 초콜릿과 무설탕 소스 등 다양한 대체 원료를 만들었다.
이 원료들을 조합해 만든 빵, 과자, 피자, 초콜릿 등 완제품이 현재 40여종에 이른다.
앞으로는 아이스크림, 잼, 선식을 비롯해 다양한 간편식 등으로 개발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요즘 전국을 누비며 각종 품평회와 농식품 창업경진대회에 참여, 직접 개발한 제품을 알리며 판로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회사를 설립한 울산 울주군에 애정을 갖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울산을 공업도시로만 아는 분들이 많은데, 영남알프스와 동해가 있어 천혜의 환경을 갖춘 울주군은 울산 전체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친환경 특산물을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갖췄죠. 우렁이 농법으로 생산한 현미를 계약해 활용 중이며, 앞으로 무화과나 배 등을 활용한 제품도 구상 중입니다."
해외 간호사에서 선박 도장 품질관리를 거쳐 식품업체 창업까지, '다소 먼 길을 돌아온 듯하다'는 어리석은 질문에 김 대표는 지혜로운 답변을 내놓으며 기자를 부끄럽게 했다.
아울러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청년들을 향한 애정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제 경력이 현재 사업과 상관없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간호사는 영양학 지식을 습득하고, 제품 아이디어를 고안하는 기회가 됐죠. 특히 건강 관련 분야가 발달한 해외에서 최신 트렌드를 읽고, 다양한 논문을 공부할 수 있었어요. 선박 도장 감리사는 제품 품질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노하우를 얻는 계기가 됐어요. 전공을 바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기 쉽죠. 하지만 나중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지금 내 경험을 제대로 활용하는 날이 있을 겁니다. 우선 현재에 충실히 임한다면, 즐거운 미래를 낙관해도 좋습니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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