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부터 '다꾸'까지 일상 파고든 일본어…"쓰면서도 양가감정"
전문가 "간판은 공공재적 성격도 있어 한글 병기해야"
(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저는 괜찮아요. 외국에서 한국어 간판을 쓰는 거랑 비슷한 것 아닐까요?" "요즘 역사 문제도 예민한데 굳이 일본어로 간판을?"
시민들은 일상 속 일본어 사용에 엇갈린 시선을 나타냈다. 거리 간판부터 '다이어리 꾸미기'(다꾸)나 각종 디자인 상품까지 한글과 다른 특유의 감성에 일본어 활용이 늘고 있지만, 일본어 메뉴판까지 쓰는 과도한 사용, 접근성에 대한 지적과 함께 한일 역사 문제가 뒤얽히면서 "쓰면서도 양가감정을 느낀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식당 '전문성' 드러내는 일본어 간판?…시민 반응은 21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역 9번 출구에서 11번 출구 사이 골목에는 간판에 일본어를 사용한 음식점이 9곳에 달했다. 음식점 9곳 중 5곳은 간판에 별도로 한국어를 병기하지 않았다.
을지로 3가에서 일본식 주점을 운영하는 A 씨(남·40)는 일본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말을 간판으로 하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며 일식당으로서 전문성을 나타내기 위해 일본어 간판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일본어 간판이 전달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일본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안 좋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에서도 한국 음식을 팔 때는 한글 간판을 써야 신뢰를 갖고 들어갈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시민 반응은 엇갈렸다. 을지로 일대에서 만난 김보미 씨는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어 간판도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B 씨(여·26)는 "일본어 간판이 너무 싫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B 씨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일본어 타령이냐"며 "한국인데 한국인들이 알아볼 수 없는 외국어로 써뒀다는 점에서 접근성도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동글동글 귀여운 모양의 히라가나 스티커…쓰면서도 '양가감정'
식당 간판뿐 아니라 취미로 '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본어 스티커가 인기다. '다꾸'가 취미인 20대 중반의 회사원 C 씨는 2021년부터 히라가나 스티커를 애용했다. C 씨는 "(일본어는) 모양이 동글동글해서 귀엽고, 영어보다 덜 친숙해서 문자보다 그림에 가까운 느낌이라 데코레이션에 적합하다"며 히라가나 스티커를 사용하는 이유를 말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문소희 씨(가명·25·여)도 작업하면서 일본어 문구를 활용한 적이 있다. 그는 후와후와(ふわふわ·둥실둥실)·게키오코뿡뿡마루(げきおこぷんぷんまる·몹시 화남을 뜻하는 신조어) 등 의성어와 신조어를 활용해 스티커 사진 감성의 굿즈를 제작했다.
문 씨는 "한글 폰트는 각지고 딱딱한 느낌이고, 조합하는 글자라서 꾸밈없이 짧게 끝난다"며 "곡선이 많은 폰트는 조잡해 보일 수 있는데 일본어는 정돈돼 있으면서 부드럽고 귀여운 느낌의 폰트가 많다"며 작업물에 일본어를 활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문 씨 일본어 폰트가 귀엽긴 하지만, 때때로 '양가감정'을 느낀다고 밝혔다. 문 씨는 "(일본어 사용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사실 이해가 간다. 나도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며 "간판이나 메뉴판까지 일본어를 써야 하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연령대에 정보 전달이 필요한 경우에는 한글을 써야 한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간판은 공공재적 성격…한글 병기해야"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간판은 자기 건물 앞에 내거는 거지만, 길거리를 다니면서 보기 때문에 공공재적 성격도 있다"며 "일본어 간판을 내거는 게 개인의 자유라지만 (간판에는) 소통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어 간판을 사용하더라도 한글을 조그맣게 병기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실제로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에 따르면,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외국 문자로 표시할 때는 한글과 함께 병기해야 한다. 그러나 관리법 시행령 제5조에 따라 간판 면적이 5㎡ 이하면서 3층 이하에 설치될 경우 신고나 허가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이에 실질적인 관리나 규제가 힘든 실정이다.
그러나 반일 감정에 따른 거부감에 대해선 일상과 정치를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소비 생활까지 정치적인 것을 연결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며 "인식을 갖는 건 좋지만, 일상생활까지 도배하면서 그렇게 살라고 누가 감히 요구할 수 있겠냐"고 생각을 밝혔다.
shush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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