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아픔 서린 소록도 보전계획 마련…국립공원 등 검토

이재영 2024. 7. 2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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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자연과 역사·문화자산 보전 마스터플랜 마련 착수
한센인 차별과 배제 역사 남아…왕래 적어 자연환경도 보전
코로나19 대유행에 통제된 일반인 출입이 4년만에 허용된 지난 2월 6일 소록도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한센인의 아픔이 서린 전남 고흥군 소록도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한센인을 차별하고 배제한 역사를 기억하고 섬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환경부는 소록도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훼손지는 복원하는 한편, 섬에 남은 한센인 격리·치료시설을 유산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담은 마스터플랜 수립에 착수했다고 21일 밝혔다.

마스터플랜 수립 시 소록도를 국립공원이나 생태경관보전지역 등 보호지역이나 자연공존지역(OECM),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될 예정이다.

환경부는 "소록도는 한센인 치료를 위해 외부인 접근이 제한된 곳으로, 우수한 자연환경과 특별한 역사·문화 자산이 있어 국가적으로 가치가 있기에 보전과 발전을 위한 종합계획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센병은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불릴 정도로 과거에는 치료할 수 없는 전염병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2주에서 2개월 정도 약만 먹으면 감염성이 사라지고 꾸준히 치료하면 완치되는 병이 됐다.

지난 2월 6일 오후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방문객들이 중앙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센병은 후유증이 신체에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어 환자들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배제되며 핍박받은 긴 역사가 있다. 육지와 불과 1㎞도 떨어지지 않은 소록도는 이런 역사가 아로새겨진 곳이다.

소록도가 한센인을 격리하는 공간이 된 것은 일제가 1916년 섬에 '소록도자혜의원'을 세우고 1917년부터 한센인들을 수용하기 시작하면서다.

한센인 인권침해는 해방 후에도 이어졌다.

한센인들은 '우리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지 못했다'라고 할 정도다.

과거 소록도는 마치 병원장이 독재자인 작은 독재국가처럼 관리되기도 했는데, 병원장이 '징계검속권'을 남용해 환자들을 감금하고 체벌하던 감금실이 1974년까지 운영되기도 했다.

한센병이 완치되는 질병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때가 1941년 이후이고 1950년대부터 국제사회에서 한센인 강제격리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랜 기간 인권침해가 지속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유전병이 아님에도 1990년대까지 한센인 임신과 출산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정책이 유지되기도 했다.

정부가 소록도 보전 마스터플랜 마련에 나선 근본적인 이유는 한센병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2년 세계보건기구(WHO) '한센병 퇴치 목표'(인구 1만명당 1명 이하 발생)에 도달해 한센병 퇴치국으로 분류된다.

한국한센복지협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3천946명인데, 이 중 71명만 '활동성 환자'이고 나머지는 치료가 마무리 단계이다. 한센병 활동성 환자는 1980년 4천97명에서 작년 71명으로 98% 급감했다.

한센인 고령화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기준 환자를 포함한 한센 사업 대상자 7천644명 평균 나이는 80.6세다. 국립소록도병원 입원자 370명은 평균 79.5세이며, 80세 이상이 45.7%를 차지한다.

환경부는 "1916년 이후 소록도는 한센인의 치유공간이자 생활공간이었기에 유산으로 활용할 수 있으나, 최근 한센인 감소에 따라 격리·치료를 위해 마련된 건물이 사용되지 않으면서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6일 오후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한 방문객이 자료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소록도 보전 마스터플랜이 수립되는 또 다른 배경은 육지와 가까워 청동기 때부터 사람이 살던 섬이지만, 한센인 격리 공간이 되면서 외부와 왕래가 줄어 자연환경이 잘 보전됐다는 것이다.

2009년 소록대교가 개통돼 차로도 갈 수 있는 연륙섬이 됐지만, 섬 전체가 한센병 치료를 위한 병원과 마찬가지여서 일반적으론 소록도중앙공원과 한센병박물관, 해수욕장 등만 방문할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2020년 2월부터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다가 올해 4년 만에 개방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12월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COP15)에서는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복원하기 위해 2030년까지 지구 30% 이상을 국립공원과 같은 보호지역이나 자연공존지역으로 설정하자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가 채택됐다.

자연공존지역은 법령상 보호지역은 아니어서 규제는 없지만 생물다양성 보전에 기여하면서 장기간 관리되는 곳으로, 사찰이 보유한 숲이 대표적인 예다. 자연환경 보전이 목적은 아니지만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는 소록도도 자연공존지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제5차 전국자연환경조사 보고서를 보면 소록도 일대에는 2급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팔색조를 비롯해 48종의 새가 산다. 팔색조는 5월 초 우리나라에 찾아와 번식한 뒤 10월에 떠나는 여름 철새다. 소록도 숲은 깊고 어두우며 팔색조 먹이인 지렁이가 살기 좋게 낙엽층이 두터워 팔색조 서식지로 적합하다.

양서류는 도롱뇽과 청개구리 등 5종이 소록도 일대에서 서식이 확인됐다.

작년 기준 한국 육상 보호지역은 1만7천505㎢로, 국토의 17.5%에 그친다.

특히 보호지역 중 국토계획법상 용도지역인 자연환경보전지역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개발행위가 완전히 금지된 곳은 아니어서 보호지역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환경부는 국제사회 움직임에 발맞춰 2030년까지 보호지역과 자연공존지역을 국토 30%까지 늘릴 계획으로, 규제가 부과되는 보호지역은 넓히기 쉽지 않아 계획을 이행하려면 자연공존지역 확보가 필수적이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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