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원도, OECD도 ‘부가세 인상’ 권고하지만… 정부 대답은 ‘노’(NO)
“세율↑·면세 조정·복수세율, 전혀 검토 안해”
탄핵 공세·지지율 저조 상황에서 ‘어려운 카드’
“미래 조세체계 로드맵 전혀 없다” 지적도
국책연구원에 이어 국제기구까지 한국의 부가가치세 인상을 권고하고 나섰으나, 재정당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세 저항이 워낙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수 부족을 해결할 방안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47년간 요지부동 ‘부가세 10%’ 인상” 목소리 곳곳
21일 관가에 따르면,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4 한국경제보고서’ 브리핑을 통해 “재정 수입의 새로운 소스를 찾을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부가가치세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부가세율 10%가 OECD 회원국 평균 세율의 절반 정도 수준(19.2%)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국책연구원인 조세재정연구원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제언이 나왔다. 조세연은 지난해 말 ‘부가가치세의 장기 세원 분포 전망’ 보고서를 통해 “저출생·고령화에 평균 소비 성향마저 둔화하며 2050년 부가세 세수가 기존 전망치보다 100조원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고, 지난 5월 발행한 ‘예산춘추’(오종현 조세정책연구실장)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의 조세 체계에서 재원 조달을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할 수 있는 세목은 부가가치세”라고 했다.
부가가치세는 제품·용역이 생산·유통되는 모든 거래 단계에서 생기는 부가 가치에 대해 매기는 세금이다. 현행 부가세는 단일 세율 체제로 일괄 ‘10%’가 과세되고 있으며, 법이 정하는 일부 주요 생필품에 대해선 면세되고 있다. 1977년 도입돼 47년간 현행 부과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
부가세를 올릴 수 있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단일세율(10%) 상향 ▲면세 항목 조정 ▲복수세율 도입이다. 단일세율 상향은 말 그대로 세율을 일괄해 지금보다 높이자는 것이다. 면세 항목 조정은 면세 항목을 줄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교육 용역(사교육)과 도서, 만화·작곡·무용 등 특정 부문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가 면제되고 있는데, ‘사교육’ 영역에 대해선 면세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돼 온 바 있다. 복수세율은 부가세가 붙는 품목을 서민 체감도가 높은 ‘생필품’과 ‘나머지’로 구분해 달리 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으로, 독일·프랑스·영국·일본 등 국가들이 적용하는 체제다.
◇ 기재부 “전혀 검토 안 해”… 정치적 열세에 ‘역풍’ 우려도
정부는 현재 부가세 인상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부가세는 전체 국세 수입 중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세목인 만큼 증세의 효과가 극적이라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부가세가 1977년 도입 이후 47년간 조정이 없었기에 세수가 모자랄 때마다 학계에서 ‘단골’처럼 언급됐을 뿐이라는 시각도 갖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재 정부는 (부가가치세 증세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기재부 관계자도 복수세율 도입 등 부가세 과세 체계 변경을 검토한 적이 있느냐는 조선비즈의 질문에 “현행 단일세율 체계를 복수세율로 바꾸는 건 부가가치세법의 체계 내지 근간을 바꾸자는 것이라 쉽지 않다”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지난 2022년 ‘부가가치세 경감세율 도입을 통한 면제제도 개편 연구’ 용역을 추진했지만, 단독 응찰로 유찰돼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당시엔 부가세의 소비자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해외처럼 복수세율 체계를 운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분석을 요구하는 연구용역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가세 인상 논의에 소극적인 가장 큰 이유로 ‘강력한 조세저항’을 꼽는다. 부가세는 전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조세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 입장에서는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머무는 현 상황에서 고려하기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부가세 인상은 ‘역풍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에선 우리나라의 부가세와 같은 소비세(消費税)를 두고, 이를 건드리는 정권은 패배한다는 ‘소비세의 저주’란 통설이 있을 정도다. 1989년 3%의 세율로 처음 소비세를 도입한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은 첫 시행 2개월 만에 퇴진했고, 1997년 5%로 인상했던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도 이듬해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물러난 바 있다. 소비세는 이후 2014년 8%, 2019년 10%로 차례로 인상됐는데, 이 과정에서도 인상 적용이 여러 차례 연기되는 등 저항이 있었다.
◇ 집권 3년 차 초라한 세입 성적표 앞 “고민 없다” 쓴소리
하지만 일각에선 어떤 세목이 됐든 정부가 증세에 대해 시종일관 부정적인 입장으로만 일관하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3년째 ‘세수 조기경보’가 발령될 만큼 이른바 ‘세수 펑크’ 사태를 반복하고 있다. 2010·2014년에 이어 올해엔 10년 만에 총수입 ‘감소’ 예산안을 짤 수밖에 없었다. 경기 부진에 따른 기업 이익 감소 영향이 일차적이지만, 이 기간 내내 행해진 ‘감세 일변도’ 정책의 영향도 한 몫을 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국회도 책임은 있다. 야당은 “정부·여당이 전향적인 세수 확보 방안을 먼저 내놔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여당은 이에 대해선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유예 등 감세 정책만 앞세우고 있다.
세수 확보 필요성을 주장하는 야당도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한 야권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부자 감세로만 일관하는 상황에서 야당이 서민 증세(부가세 인상 등)를 하자는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수 확보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에 과세 기반 강화를 실현할 미래 로드맵이 전혀 없다. 정치권 역시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책임감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면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담기지 않았던 미래 세입에 대한 고민이 (오는 7월 말 발표할) 세제 개편안에선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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