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스타트업, 아름다운 성공
창업한 지 5년만에 2000억원이 넘는 금액으로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며 주위에 부러움을 산 스타트업 창업자를 만났다.
언론은 그에게 ‘성공’이라는 왕관을 씌워주었고, 시끌벅적한 대관식이 끝난 후 만남이라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꼈다. ‘엑시트(Exit) 후(後)’ 좋은 모델이 거의 없는 우리 스타트업계에 바람직한 선례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의 만남은 깊은 공허함만 남겼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숙한 나라에서 성공한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들은 연쇄 창업에 도전하거나, 경제적 성공을 바탕으로 투자자로 변신하거나, 아니면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보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조기 은퇴를 선택한 것이라면 나름대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겠지만, 그보다는 예상치 못한 시기에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 겪는 부작용을 앓고 있었다. 그의 인생 목표는 마치 수중의 돈 자체를 지키는 것인 듯 보였다. 주변을 경계하고, 어렵게 쌓은 인적 네트워크를 스스로 단절했다.
뚜렷한 목표와 계획은 없지만, 그렇다고 은퇴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창업 후 고난의 행군을 거듭하던 시기에도 생기를 잃지 않았던 눈빛과 여유로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추구할 만한 가치를 찾고,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을 감행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원인을 단 한 가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스타트업 여정의 최종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달했다. 그러나 정작 이후 삶의 목표와 계획이 전혀 없었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기업가치가 커지고, 큰 금액으로 회사를 매각해 부자가 되는 건 스타트업 생태계의 바람직한 게임의 법칙이자 가장 성공적인 엑시트 유형이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것이 반드시 해피엔딩인 것은 아니다. 경제적 성공을 거둔 앙트러프러너들 중에는 무기력과 우울증세, 정체성 상실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 스타트업 여정은 한 편의 게임...엑시트 후 뒷모습이 더 중요
스타트업들이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는 까닭은 성공의 결과가 곧 행복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다수의 앙트러프러너와 예비 창업가들은 ‘왜 창업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혹은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벗어난 답이다. 성공이 창업의 목표가 되려면, 어떤 성공을 원하고, 미래의 삶에 왜 그런 성공이 필요한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령 부자가 목표라면, 부자가 된 후 많은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계획하는 것이 순서다.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역시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구체적 삶의 모습을 그려 놓아야 한다.
스타트업의 여정은 한 편의 게임과 같다. 모든 게임은 반드시 끝이 있다. 게임을 무사히 끝내면 다음 단계의 게임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게임에 도전할 수 있다. 스타트업 게임의 시작은 창업이고, 끝은 엑시트다. 게임을 시작한 모든 스타트업은 성공적인 엑시트를 향해 전력 질주해야 한다.
하지만 엑시트 후를 계획하지 않은 전력 질주의 끝은 결과가 어떻든 앙트러프러너 자신에게 긍정적이지 않다. 게임에서 여러 번 실패할 수 있으나, 정작 고통의 크기는 실패의 횟수보다 어떤 실패인가에 좌우된다. 어렵게 성공할 수 있으나, 어떤 성공인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목표달성 이후 방향을 잃은 앙트러프러너, 특히 성취한 부의 규모가 클수록 삶에 미치는 후유증은 생각보다 매우 크다.
에베레스트 정복을 꿈꾸는 산악인의 목표는 당연히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정상을 정복하면 성공이다. 그러나 최정상에 깃발을 꽂아도 등반은 끝나지 않는다. 무사히 산을 내려와야만 한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산 중에서 가장 어려운 산은 ‘하산’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두가 정상정복에 환호하지만, 실제로 등반은 정상정복 이후가 더 중요하고, 어렵다는 의미다. 따라서 노련한 산악인일수록 치밀하게 하산을 준비한다. 정상정복은 등반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지만, 무사 귀환하지 못하면 다시는 영원히 산에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 사업의 성공은 끝에서 시작...행복한 결말, 사업 초기부터 준비해야
스타트업도 이와 같다. 성공 여부는 엑시트로 결정된다. 성공적인 엑시트는 주로 매각이나 상장(IPO)을 의미한다. 그렇지 못하면, 좀비가 되거나 파산 혹은 청산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엑시트 후의 뒷모습이다. 높은 기업가치로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임직원을 비롯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축하를 받는 ‘아름다운 성공’과 혼자 공치사하고 함께 한 주변인들에게는 어떤 보상도 없고, 축하는커녕 손가락질을 받으며 야반도주하듯 떠나는 ‘불행한 성공’도 있다. 아름다운 성공에는 명예와 더불어 또다시 새로운 기회가 열리지만, 불행한 성공에는 오직 오명만 남게 될 것이다.
행복한 결말은 비즈니스 초기부터 미리 고민하고 준비했을 때 이룰 확률이 높다. 세계적인 경영 구루(guru)들이 이구동성으로 ‘사업의 성공은 끝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이유다.
‘최종 목표(end game)’가 명확해야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경영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대한민국 모든 스타트업의 아름다운 성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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