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구 "연기 중압감 극심했던 10대 후반, '10년만 죽도록 하자'며 버텨"[인터뷰]

모신정 기자 2024. 7. 2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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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재킹' 용대 역 열연
'하이재킹' 주연배우 여진구/사진제공=퍼펙트스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여진구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은 즐겁다. 9세때인 지난 2005년 영화 '새드무비'로 데뷔해 알차게 배우 경력 20년을 꽉 채우며 지내온 그의 경험담과 고민, 군입대를 앞둔 20대 청년으로서의 소회 등을 듣고 있다보면 수천명의 청중 앞에서 화려한 언변을 뽐내는 어떤 강연자의 강연보다 깊은 감흥을 얻게 된다. 

영화 '대립군'(2017)과 '동감'(2022) 개봉 무렵 여진구를 만났을 때도 업력이 깊은 만큼 진지한 태도로 연기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20대 초반 청년 특유의 장난기와 유머도 간직하고 있어서 유쾌하게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는 '하이재킹'을 통해 배우로서 성장한 지점과 김성한 감독의 진두지휘아래 어느 때보다 유쾌하고 경험할 것이 많은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여진구가 평소 롤모델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해왔던 배우 하정우와 호흡을 이룬 영화 '하이재킹'은 1971년 대한민국 상공에서 여객기가 공중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극한의 상황을 그렸다. 비행기를 납치해 이북으로 향하려는 납치범 용대와 그와 맞서 50여명의 승객의 목숨을 구하고 이북행을 저지하려는 부기장 태인(하정우), 기장 규식(성동일), 승무원 옥순(채수빈)의 일촉즉발의 사투가 그려지며 촘촘한 긴장감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하이재킹' 주연배우 여진구/사진제공=퍼펙트스톰

여진구는 극중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장교가 된 형 때문에 극도의 핍박을 받으며 자라 결국 비행기 납치에 나서게 되는 용대 역을 맡아 폭발적인 에너지를 여러 차례 선보이며 영화 전반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며 '얼굴을 갈아 끼웠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함께 호흡한 하정우는 여진구에 대해 '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20대 초반의 청년이 어떻게 비행기를 납치했을까 하는 지점이었다. 실제 사실이어도 영화적 개연성을 성립시켜야 했다. 그런데 여진구가 용대를 연기하는 것에서 그런 부분이 모두 해소됐다. 여진구의 눈빛과 뜨거운 에너지가 많은 부분을 보완했다. 여진구는 연기의 힘이 정말 좋은 배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진구는 '하이재킹'의 용대 역을 통해 아역 출신이라는 수식어를 당장 떼어버려도 좋을 만큼 당당한 성인 연기자의 면모를 선보였다. 대선배이자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온 하정우, 성동일과 대등한 에너지를 뽐내며 극의 중요한 한축을 이뤘다. 

- '하이재킹'의 출연 제안을 롤모델 하정우 배우가 해줬다던데.

▶ 티빙 예능프로그램 '두발로 티켓팅'에 정우 형과 함께 출연했었다. 뉴질랜드행 비행기에서 한숨 주무시고 나더니 '하이재킹'의 김성한 감독님과 김경찬 작가님과 함께 하고 계시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기본 스토리와 제 역할에 대해서도 들었다. '작품 스케줄만 맞다면 진구가 괜찮을 것 같아'라고 말씀을 주셔서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시나리오를 읽고 고민에 들어갔다. 김성한 감독님이 영화 '1987' 당시 조감독이셨기에 이미 알고 있는 분이었다. 외국에 나가있었기에 바로 오케이를 드리지는 못했다. 한국에 들어와 진지하게 고민했다. 

정우 형님이 제안을 주신 것도 고마웠고 특히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용대라는 인물이 폭발적 에너지를 보여드려야 하기에 부섭기도 했다. '너 할 수 있겠어?'라고 여러 차례 반문하게 됐다. 보통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작품속 내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상상을 하게 된다. '하이재킹'을 제안받고 그 일이 일어나고 있더라. 수락하기 전 이 작품을 제 스스로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용대는 비행기에서 폭탄을 터뜨리고 승객들은 물론 기장, 부기장에게 위해를 가하는 제대로 된 악역이다. 반면 국민 남동생 여진구가 연기해서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반응도 있는데. 

▶ 김성한 감독님과 함께 그 지점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감독님께 여쭤보니 용대라는 인물이 실화 바탕은 맞지만 실존 인물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더라. 시나리오 당시 감독님과 김경찬 작가님이 용대가 하이재킹을 일으킬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내신 건 줄 알았다. 걱정되는 부분은 당연히 있었다. 정당화되거나 미화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께 여쭤보니 1971년 동아일보에 나온 기사를 기반으로 설정하셨더라. 중학교에 수석 입학하고 중퇴한 것도 사실이었고 공부도 잘한 인물이었지만 갑자기 중퇴후 공장에 취직을 했다는 내용이 기사에 나왔다. 실제 가족사도 부친이 안계시고 625 전쟁 당시 형이 이북에서 장교로 일했던 사실도 있었다. 실화에서 가져온 인물이기는 하지만 감정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는 고민이 됐다. 감독님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악역이기에 관객들이 정을 가지게 되시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봤다. 다만 시대 자체가 엄혹했기에 저런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있구나하는 방식으로 바라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조심스럽게 다양한 시도들을 했었다. 용대로서 감정을 더 가져가보기도 했고 덜어내기도 했다. 감독님께 들으니 용대의 감정신은 많이 걷어내셨다고 하더라. 배우로서 다양한 시도와 촬영을 해볼수 있었던 점이 만족스러웠다. 

'하이재킹' 주연배우 여진구/사진제공=퍼펙트스톰

- 평소 하정우 배우를 롤모델이라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런 하정우와 함께 호흡한 소감은 어떤가.

▶ 이번 현장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리허설을 정말 많이 진행했다. 감정의 표현이나 동선 등에 대한 의문이 들면 그 버전으로 다시 리허설을 해봤다. 대부분 장면에 이런 마인드로 임했다. 특히 승객 중 한명과 몸싸움을 벌이고 난 이후의 장면에서 정우 형이 연기한 태인이 용대를 말리고 용대 또한 흥분된 상태에서 태인을 무릎 꿇리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이 장면에서 원래는 좀 더 캄다운된 신이었는데 리허설 중 정우 형이 '용대가 총으로 사람을 때리고 폭행을 가하는 모습을 보니 태인도 감정이 올라간다. 용대가 태인에게 좀 더 강한 압박을 주면 좋겠다'고 제안해 주셨다. 감독님, 정우 형과 상의하면서 용대가 태인을 무릎 꿇리고 좀 더 강압적으로 대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용대가 그런 식으로 행동해야 승객들이 더 무마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대가 태인의 견장에 피묻은 칼을 닦는 장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태인을 때리는 장면에서 총구를 들이댄다던가 멱살을 잡을 때 촬영 현장에서 거리 조절을 잘 못하겠더라. 이런 격한 감정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정우 형이 저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같은 배우로서 볼 때 큰 에너지를 가진 역할에 네가 몰입하고 있는 것이 잘 느껴진다. 하지만 잘 훈련된 프로페셔널 배우로서 이런 감정과 현장에서 감정 컨트롤을 잘 할 수 있도록 경험하면 좋겠다'고 말해주셨다. 정우 형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미안하고 또 감사했다. 정말 배움이 큰 현장이었다. 

- '하이재킹'의 현장이 그동안 경험한 어떤 현장보다 더 유쾌했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어떤 점이 좋았나. 

▶ 이전 현장들도 다 좋았지만 이번에는 정말 가장 웃음이 많고 유쾌했다. 현장이 너무 재미있어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모든 배우들이 다 그렇게 느꼈다. 한정된 세트 안에서만 촬영을 하다보니 대전 세트에서 몇개월동안 함께 지내며 촬영했다. 촬영이 끝나도 같이 밥을 먹고 사적인 시간도 함께 보내고 영화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고 리허설을 할 때는 하나도 허투로 넘어가지 않는 끈기도 있었다. 보통 현장에서 바쁘기도 하고 찍어야 할 분량이 있으니 어느 정도면 넘어가기도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철저히 어떤 의문점이라도 해결될 때까지 도전하고 실마리를 풀어가려고 했다. 정우 형, 동일 선배님, 감독님 모두가 나서서 물론 저도 함께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30대를 앞두고 고민이 많은 상황이었는데 30대에 제가 배우로서 현장에 참여할 때 목표를 삼을 수 있는 좋은 현장이었다. 너무 감사하다. 

- 연기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 연기적 만족도는 제가 내리기는 어렵다. 작업할 때 원없이 이런저런 시도를 했기에 이번 영화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제가 한 역할들과 결이 많이 다르지만 어색하지 않게 봐주시면 성공한 것 같다. "여진구가 이런 역할을 선방했다"는 칭찬만 받아도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저로서는 용대 역에 최대한 많은 것을 시도하고 감독님이나 선배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저 스스로 평가하기에는 객관적 평가가 어렵더라. 

- 아픈 사연을 지녔지만 용대 캐릭터는 다수의 대중을 희생시키려고 하는 악역이다. 가장 주안점을 두고 연기한 것과 표현이 어려웠던 지점이 있다면. 

▶ 가장 경계하려고 했던 것은 용대에게 연민의 느낌을 주지는 않으려고 했다. 폭탄을 터뜨리는 행동들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용대는 당당하다. 태인에게 함께 공범이 되자고 회유까지 한다. 하지만 실제 더 고민하고 신경쓴 부분은 용대가 폭탄을 터뜨리기 전의 모습이었다. 용대가 인생의 선을 넘기 전의 모습이 더 화두였다. 애초 용대와 어머니의 대화신이 더 많았지만 관객분들께서 용대에게 측은지심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에서 생략하신 것 같다. 가장 고민한 부분은 용대가 폭탄을 터뜨리기 전까지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때까지는 어린애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오래 준비를 했든, 갑자기 실행에 옮기게 되었든 그런 행동을 탄 용대는 많이 떨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비행기 또한 여러 차례 타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하이재킹' 주연배우 여진구/사진제공=퍼펙트스톰

- 극중 중학생 역의 문우진은 최근 가장 잘 나가는 아역 배우 중 한명인데 함께 하며 어떤 느낌이었나. 

▶ 용대가 그 친구를 괴롭히는 내용도 뒷부분에 나오기는 하지만 우진 배우 또한 집중력이 크고 진심으로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멋있는 배우였고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해를 품은 달'과 '화이' 등 아역 당시에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성인 못지 않은 연기력도 이때 이미 선보였다. 그때 당시 그렇게 큰 인기를 얻으며 어떤 생각을 했나. 

▶ '하이재킹'을 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최대한 즐겁게 연기를 하는 것이 맞구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릴 때 연기할 때는 늘 즐거웠다. 제가 배우가 되기로 진짜 마음 먹은 건 14세 때 '자이언트'에 출연했을 때였다. 그때 많은 분들께 이름도 알리고 사랑도 받고 상도 받았다. 그런데 1~2년이 지나니 제 인생이 어떻게 바뀐줄도 모르게 바뀌어 있었다. 너무 큰 행운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실질적 주연으로서 감당해야할 책임감과 무게감이 찾아오면서 스스로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스스로 옥죄고 또 외면하고 채찍질만 하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시간 또한 필요한 시간이었다. 저는 정말 잘 하고 싶었다. 연기를 잘 해내고 싶었다. 주연으로서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고 사랑받기를 원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에게 숙제를 많이 내주게 되더라. 예전에는 예전에는 연기가 하나의 놀이 혹은 현장학습에 가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할 일이 많은 방에 가는 느낌이 들던 떄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많은 분들께 사랑받으려면, 혹은 결과가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꽉 막혀 있었다. 그때 가장 힘들었다. 그렇게 보내고 나니 20살이 다가오더라. 

- 10대 후반에 연기를 잘 하고자 하는 중압감이나 스트레스로 보냈다는 것이 놀랍다. 이런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 미성년 연기자로 시작했고 이제 말 그대로 성인 배우로 많은 분들께 서야 하는데 지금 상태라면 앞으로 연기 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곘더라. 아득해졌다. 고민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얼른 이 시간이 지나고 내가 어떻게 버티든 혹은 살아남지 못해서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서른이 되면 뭔가는 하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30세가 되기를 기다리던 시간이 있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도 연기가 너무 좋고 연기를 너무 하고 싶었다. '10년만 죽었다고 생각하고 연기해보자'고 생각하며 20대를 맞이했다.

- 보통의 배우들이라면 30대 이후에 할 고민들을 이미 10대 후반에 겪었언 것 같다. 20대가 되고 나서 고민이 풀렸나. 

▶ 제가 '하이재킹' 같은 작품에 출연해 이런 순간을 맞을지 몰랐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제 스스로 기준에 못미치는 배우라고 생각해왔고 겸손이랍시고 풀이 죽은 채 살아왔다. 그런데 매번 작품을 하면서 고민하던 것들이 이번에 해결이 됐다. 지나고보니 저와 함께 한 감독님, 배우, 스태프분들 모두 훌륭한분들이더라. '나는 그 안에서 무엇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서 함께 하는 팀원이자 동료로서 나를 인정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왜 스스로 자책하며 살았을까. 어린 시절 연기를 하며 행복했던 이유는 뭘까. 이번 작품을 만나 치열하게 부딪히고 호흡하면 연기가 이렇게 즐거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출연이 길지 않아도 풍부하게 상상하고 많은 것을 열어두고 감독님들, 다른 배우분들과 대화하고 현장에서 부딪히고 제 의견도 내보고 하다 보면 충분하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더라. 

- 여진구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인가. 

▶ 연기는 제게 중독 같은 것이다. 어릴 때 그 맛을 이미 알았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데 어떤 시대의 어떤 사람을 살아보는 것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또 제가 제손으로 뭔가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는데 하나의 인격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즐겁다. 마지 자식이나 친구가 하나씩 생기는 느낌 같다고 할까.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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