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5000명 확대' 계획에도 독일은 왜 조용할까?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2024. 7. 2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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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과 쏠림이냐, 포용과 분권이냐] 권력의 중심이 아래에 있는 나라

오뚝이는 왜 쓰러져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가?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 번영하는 나라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뚝이와 같다. 권력의 중심이 아래에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지방과 국민이 권력의 중심이 된다. 즉, 지방분권과 직접민주주의의 수준이 높을수록 국민이 행복하고 나라가 번영한다. 필자는 이런 원리를 '오뚝이 국가론'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세계 52위…중앙집권과 행복지수의 상관관계

거창한 이론을 말할 것도 없이 매년 유엔이 발표하는 세계 행복지수나 IMF가 발표하는 국가별 1인당 국민소득을 살펴보면 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행복지수와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는 작은 나라이거나 지방분권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다. 나라가 작다는 것은 그만큼 지방분권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분권국가와 연방국가는 작은 나라와 큰 나라의 장점을 결합한 나라이다.

행복 개념을 경제학에 도입한 스위스의 경제학자인 브루노 프라이(Bruno Frey)교수는 다른 여건이 동일하다면 지방분권 수준이 높을수록, 직접민주주의가 많이 도입될수록 국민이 더 행복하고, 소득수준도 높아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확인하였다(행복, 경제학의 혁명). 2024년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52위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31위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방분권과 직접민주주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개선의 여지가 크다.

대한민국의 권력중심은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국가중심주의). 일부의 권력이 지방에 분산되어 있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집중되어 있다(광역중심주의). 기초지방자치단체는 그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커서 국민(주민)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대규모 기초주의). 한 마디로 대한민국의 권력중심은 위에 있다. 국민행복과 나라 번영에 장애가 되는 권력구조이다. 우선 국회는 국민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무제한의 입법권을 가진다. 지방자치단체가 부분적으로 조례입법권을 가지지만 법령에 위반할 수 없고, 법률에 근거가 없이는 주민의 권리제한이나 의무를 부과하는 조례를 제정할 수도 없다.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권도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다. 지방이 집행하는 경우에도 중앙의 법령에 구속되어 다양한 정책구상이나 혁신을 할 수가 없다.

미래학자인 토플러는 2001년 6월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위기를 넘어서: 21세기 한국의 비전)에서 중앙집권적인 체제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개발경제 시대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지식정보사회에서는 더 이상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국가 권력을 과감하게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식정보사회는 정답이 없는 시대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답을 찾아야 한다. 국가가 시행착오로 실패하면 전체 국민이 피해를 본다.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 각 지방이 혁신의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 전면적인 지방분권이 요구된다.

국가 주도의 균형 발전의 한계…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한국

1980년대부터 국가가 나서서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하여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였지만 지역간 격차는 더 커졌다. 스위스와 독일의 사례를 비교해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독일은 연방주도의 균형발전 정책을 70년 이상 추진하였으나 지역간 격차는 더 커졌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고착되었다. 독일 총조세수입의 약 75%가 공동세에 속한다. 그 세율과 분배방식에 대한 입법권은 연방이 가지고 있다. 주와 지방정부가 과세권을 가진 것은 약 13%에 불과하다. 기업과 주민을 유치하기 위한 지방의 정책수단은 매우 제한된다.

이에 비하여 스위스에서 연방세는 헌법에 규정된 것에 한정되며 지방정부는 세목과 세율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입법재량권을 가진다. 기업과 주민을 유치하기 위해서 스위스의 지방정부 간에는 낮은 세금으로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혁신경쟁이 치열하다. 이를 통해서 추크(Zug)와 같이 가난했던 지방이 부유한 지방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 결과 스위스의 지역간 소득순위는 수시로 달라질 수 있고 국가경쟁력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독일보다 거의 2배나 된다.

대한민국의 과세자율성은 스위스는 물론 독일보다도 훨씬 더 제한된다. 국세지방세조정법은 중요한 대부분의 세금을 국세로 규정하고 중복과세를 엄격하게 금지하여 지방의 과세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중앙정부와 법원은 조세법률주의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조례에 의한 과세를 배제하고, 지방세법은 지방세의 세목과 세율을 엄격하고 세세하게 규정하여 지방의 과세재량권을 제한하고 있다. 국가가 지방의 과세자율성을 박탈함으로써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이 기업과 주민을 유치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까지도 봉쇄한다. 지방의 자력발전과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의 과세자율성을 과감하게 보장해야 한다. 조세를 비롯한 주민의 권리 제한과 의무부과에 법률유보 대신에 조례유보를 채택하고, 국세지방세조정법을 폐지하고, 지방세법을 개정하여 지방세율과 세목을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대 증원으로 정권이 흔들리는 한국, 5000명 증원에도 조용한 독일

문재인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도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의사들의 전국적 집단행동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의사집단과 중앙정부간의 의정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집단휴업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의료수요증대로 의대정원을 대폭적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대란이 일어나는 곳은 대한민국을 제외하고는 없다. 국가는 의대정원결정권을 독점하여 의대정원을 수십년간 동결해 왔다. 이제야 국가가 의대정원을 일방적으로 확대하려고 하니 그동안 반사적 특권을 누려온 의사들이 전국적으로 집단행동에 나서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는 중앙집권의 재앙이다.

독일에서는 의대정원을 5000명 더 확대할 계획이다. 의대정원 결정권을 주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대증원문제는 전국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방의 문제가 된다. 지방마다 다양한 해법을 찾게 된다. 연방보건부장관이 주정부들에게 의대증원을 권고하자 바이에른 주에서는 2700명을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없었고 지역의사단체들은 이를 지지하였다. 의대정원 결정권을 지방정부에 맡기면 주민들의 의료복지 차원에서 지방정부들이 의대증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지방대학들로 학생유치를 위해 나설 것이다. 의료인력의 지역편중 문제도 독일에서는 주정부가 입학정원 배정에 지역의사제도를 도입하여 대응하고 있다. 차제에 대학문제를 이제는 지방으로 넘겨야 대학도 살고 지방도 살아날 수 있다.

교육, 경찰, 소방과 같은 기본적인 자치사무가 모두 광역사무로 되어 있고, 그것도 국가직이 수행한다. 모든 선진국에서 기초자치단체가 감당하는 사무들이다. 광역중심주의로 인하여 주민들은 지방자치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관료적 관리의 대상인 관객으로 전락한다. 또 다른 중앙집권이다. 주민들은 지방문제 해결에 무력감을 느끼고 생활자치를 체감하지 못한다. 주민들의 존재감과 행복감은 급감한다. 주민들의 체감자치를 높이고 공동체 문제의 해결에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광역사무를 과감하게 기초사무로 전환해야 한다. 광역에서 기초로 권력이동이 필요하다. 기초지방자치단체 규모도 읍면동 수준으로 축소하여 주민의 능동적 역할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대통령거부권은 국민거부권으로

또한 권력기관과 국민의 관계에서도 권력중심을 국민에게로 옮겨야 한다. 국민은 권력기관을 선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권이 있지만 국민투표에 회부시키는 권력은 대통령과 국회에 독점되어 있다. 국민은 입법과정에 배제된다.

특히 이번 정부에서는 국회의 일방적인 법률안 의결과 대통령의 재의요구로 국회와 대통령이 빈번하게 맞대결하고 있다. 입법부와 집행부간의 극단적인 대립은 지지정당에 따라 국민을 분열시키고 정치 양극화를 가져온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률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도입하여 주권자인 국민이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를 협치강제(Zwang zur Konkordanz)라고 한다. 국회가 제반 정치주체와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법률을 통과시켜 공포하면 5만명 이상의 국민이 10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국민이 직접 이를 표결하여 법률안을 폐기시킬 수 있다. 법률안에 대한 국민투표제를 도입하면 국회는 의결한 법률안이 국민투표에 의해 거부당하지 않기 위하여 여야 간에 충분한 협상을 하고 관련 집단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법률안에 대한 국민투표권은 대한민국의 정치병이 된 정치양극화를 극복하고 협상과 타협에 의한 정치를 복원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대통령거부권은 국민거부권(Volksveto)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또한 정치권이 카르텔을 형성하여 헌법개정이나 입법을 통한 개혁을 외면하면 국민이 직접 법률과 헌법개정을 발안해서 결정할 수 할 수 있도록 국민발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국민투표와 국민발안은 다수의 횡포를 방지하고 소수를 보호하여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제도적 장치에 속한다.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넘어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지방에게로, 기초지방에게로, 소규모 기초지방에게로, 국민에게로 권력중심을 이동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가중심주의는 이제 시대착오적인 구시대의 유물이다.

▲독일은 의대정원 결정권을 주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대증원문제는 지역의 일이 된다. 독일은 의대 정원을 최근 5000명을 증원하기로 했지만 집단행동 등 소요 사태가 없다. ⓒ연합뉴스
(이 연재는 공공선 거버넌스(원장 강치원)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편집자)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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