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파이도 애국자도 아닌 자유인”…수미 테리 사건에 재조명된 로버트 김
애국심에서 시작된 정보 제공
미 해군 정보국(ONI)의 컴퓨터 분석관으로 일하던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84)은 1996년 주미대사관에 파견된 국방무관 백동일 당시 대령에게 북한의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북한 잠수함의 동향 등의 군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9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7년6개월을 복역, 이후에도 가택연금과 보호관찰을 거친 비운의 사나이다.
◆백 대령과 운명적 만남
김씨와 백 대령은 1995년 11월28일 미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해군정보교류회의에서 처음 만났다. 주미 해군 무관이던 백 대령이 회의 준비를 맡았고, 미 측이 통역 겸 안내장교로 군무원이던 김씨에게 맡게 되면서 둘의 운명적 만남이 시작됐다.
백 대령은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첫 만남에 대해 “(김씨는) 참 선한 인상이셨다. 19년 동안 한국 군인 구경도 못 하다 갑자기 만나니 애국심이 발동했던 것 같다. 로버트 김 집안은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부친은 한국은행 부총재와 공화당 의원을 지낸 김상영 선생”이라고 말했다. 백 대령은 김씨에게 화이트 요원으로 첩보수집에 한계를 토로하며 기밀이 아닌 사항에 한해 북한군 관련 첩보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이에 기밀로 정해지지 않은 정보에 한해 협조하겠다고 하면서 둘의 정보교류가 시작됐다. 정보는 ‘K파일’로 명명해 우편으로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그만큼 이 정보가 군사 기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김씨가 백 대령에게 제공한 것은 북한군 소요 가능성, 국제사회 지원 식량이 북한군에 유입됐는지 여부, 휴전선 부근 북한군 배치 실태 등 50∼70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30여건이 비중 있는 내용이었다. 특히 북한의 내부 소요 진압용 무기 구매 첩보는 국방부의 북한붕괴 시나리오 작성과정에도 반영됐다고 백 대령은 전했다. K파일에는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에게 보고되는 주요 정보가 많았고 일부는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것으로 백 대령은 알고 있었다.
당시 김씨가 한국에 제공한 정보는 이미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에는 제공된 정보였다고 한다. 로버트김 후원회(www.robertkim.or.kr)에 따르면 김씨가 한국에 제공한 정보는 미국을 위태롭게 하는 기밀 자료가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에도 제공되는 수준의 자료였다. 그는 “기밀수집은 엄연히 스파이활동이지만 나는 기밀을 수집한 게 아니라 내 책상 위에 올려진 정보를 유출했을 뿐”이라며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나를 과대평가해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재판 과정에서 김씨는 이 같은 점을 주장했으나 법원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 정부도 김씨의 구명을 위해 비밀 작전에 돌입했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미국인 무기상을 간첩혐의로 체포해 미국 정부와 협상을 시도한 것이다. 김씨가 체포된 1996년 9월 안기부(현 국가정보원)는 특수팀을 구성하고 김씨 구출작전에 돌입했다. 미국인 무기 중개상을 간첩혐의로 체포하기 위해 그해 10월부터 당시 미 군수업체 R사의 아시아 담당 이사 도널드 래클리프를 밀착 감시했다.
래클리프는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에 주로 묵으며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안기부는 6개월간의 추적 끝에 이듬해 4월 래플리프에 대해 무기조달계획 등 군사비밀을 빼낸 혐의로 체포했다. 미국인 무기중개상을 간첩죄 혐의로 체포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이때 한국인 현역 장교 1명과 예비역 등 민간인 2명도 함께 체포됐다.
◆대가 없는 정보 제공과 후원자들
김씨 사건은 최근 미국 뉴욕 연방검찰이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분석가이자 북한 전문가인 수미 테리 전 연구원 사례와는 다르다. 테리 연구원은 국정원에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명품 가방과 옷, 고급 식사, 우회적인 방식의 현금 지원 등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당시 김씨는 특별한 대가 없이 애국심에서 정보를 제공했다. 백 대령은 김씨에게 별도의 금전적 이익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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