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 눈물로 인사' 방출 고별전 끝내 폭우에 막혔다, 1시간39분이나 기다렸는데…두산-LG전 노게임[잠실 게임노트]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LG 트윈스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35)의 고별전이 하늘에 막혔다.
LG와 두산 베어스는 20일 잠실야구장에서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팀간 시즌 10차전을 치렀다. LG는 3회초 2사까지 6-0으로 앞서면서 5연승 질주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폭우로 오후 6시 50분부터 경기가 중단됐다. 1시간 가까이 비가 그치길 기다렸고, 오후 8시 이후로 비 예보가 더는 없다는 심판진의 판단 아래 그라운드 정비가 시작됐다. 그런데 오후 8시35분 경기 개시를 목표로 그라운드 정비가 거의 끝나가는 상황에서 오후 8시 22분쯤부터 다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라운드에는 다시 방수포가 덮였다. 결국 오후 8시39분 심판진은 그라운드 상태를 살핀 뒤 노게임을 선언했다.
켈리는 20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 등판하기에 앞서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LG는 19일 새벽 새 외국인과 계약을 완료한 뒤 켈리에게 결별을 통보했다. 구단은 켈리에게 20일 경기에 등판하는 것과 그대로 짐을 싸는 것 2가지 선택지를 두고 본인의 결정에 맡겼는데, 켈리는 고별전을 하는 쪽으로 마음을 잡았다.
염경엽 LG 감독은 20일 경기에 앞서 "어제(19일) 새벽에 새 외국인 선수와 계약이 됐고, 나는 아침에 (경기장에) 오자마자 소식을 들었다. 듣자마자 켈리를 이날 선발투수로 안 쓰려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켈리는 어쨌든 5년 이상을 우리 팀에서 함께한 선수 아닌가. 켈리한테 어떻게 마지막을 잘해주는 게 좋을까 생각해서 프런트와 상의했다. 안 던지는 것보다는 본인 생각만 있다면 마지막에 팬들 앞에서 던지게 해주는 게 가장 좋은 것 아니겠느냐. 우리는 (최)원태도 있고 여유가 있어서 켈리한테 권한을 줬다. 켈리한테 설명을 다 했고, 팬들하고 인사할 시간을 만들어 줄 건데 '마지막에 네가 멋있게 인사를 하고 갈래? 경기를 하고 갈래?'라고 물었다. 가족과 상의해 보겠다고 하고 어제 경기 끝날 때까지 말해주겠다고 하더라"고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어 "사실 대부분은 (교체가 된 선수를 경기에) 안 쓴다. 약간 김이 빠지기 때문에 안 쓰는데, 본인이 원하면 그래도 마지막 모습을 잘 보이고 가고 싶은 어떤 동기 부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프런트와 상의해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덧붙였다.
켈리가 던지겠다고 한 이상 구단도 평소와 똑같이 경기를 준비하기로 했다. 염 감독은 "선발투수라고 보면 된다. 원태를 대기시키려다 원태를 대기시키지 않기로 했다. 6이닝에 3~4점 줄 때까지는 똑같이 운영할 것이다. 한두 점 줬다고 바꾸고 그런 것도 의미는 상실한다고 생각해서 똑같이 던지게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 염 감독은 "우리 선수들하고 마지막으로 같이 경기를 하는 것이고, 다른 팀 외국인 선수들처럼 그냥 인사만 하고 가는 것과는 분명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마 야수들은 엄청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면 켈리도 열심히 던질 것이고, 그 동기부여는 있다고 생각한다. 켈리가 마지막으로 가는 데 좋은 모습으로 갈 수 있다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팬들의 큰 박수와 함성 속에서 켈리는 1회초 마운드에 섰다. 켈리와 마지막을 알았기에 팬들은 더더욱 크게 켈리를 응원했고, 그 마음은 켈리에게도 잘 전달된 듯했다. 켈리는 1회초 선두타자 정수빈을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운 뒤 조수행읠 헛스윙 삼진, 강승호를 2루수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그사이 타선은 두산 선발투수 조던 발라조빅을 두들기면서 켈리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1회말 1사 1루에서 오스틴 딘이 우월 투런포를 치고, 문보경이 우중간 담장 너머로 백투백 홈런까지 날리면서 3-0 리드를 안겼다.
켈리는 2회초에도 호투를 이어 갔다. 선두타자 김재환을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다음 타자 양석환을 좌익수 뜬공으로 돌려세웠다. 박준영에게 좌전 안타를 마자 1사 1, 2루가 됐을 때는 김기연을 유격수 병살타로 돌려세웠다. 유격수가 2루주자 김재환을 태그아웃하고, 1루주자 박준영을 2루에서 포스아웃시켰다.
LG 타선은 2회말 추가점으로 켈리에게 더 힘을 실어줬다. 1사 만루 기회에서 오지환이 우중간 적시타를 때리고, 오스틴이 좌전 2타점 적시타를 날려 6-0까지 거리를 벌렸다.
켈리가 3회초 마운드에 올라서면서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2회쯤 한 차례 비가 내리다 그친 상황이었는데, 이번에는 쉽게 그칠 비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경기장 전체가 물바다가 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고 있어 경기를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켈리는 1사 후 전민재에게 우전 안타를 맞고, 다음 타자 정수빈을 3루수 땅볼로 잘 돌려세우면서 3이닝을 채우기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두고 있었다. 조수행과 승부를 앞둔 상황에서 심판진은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염경엽 감독은 '2아웃'이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심판진의 우천 중단 결정에 분노했지만, 이내 심판진의 결정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우산을 쓰고 관중석에서 자리를 지키던 팬들은 천둥과 번개, 그리고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센 강풍에 결국 경기장 밖으로 피신했다.
한편 켈리는 현재 KBO리그에서 뛰는 최장수 외국인 선수다. 2019년 처음 LG 유니폼을 입고 한국 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KBO리그 6년차였다. 올해 켈리가 LG와 재계약한 총액은 150만 달러(약 20억원). 지난해 받았던 180만 달러(약 24억원)에서 30만 달러가 삭감된 금액이었지만, 여전히 KBO리그 외국인 선수 최고 연봉자였다.
켈리는 KBO리그 5년차였던 지난해 이미 한 차례 방출 위기를 겪었다. 전반기 18경기에서 6승5패, 107⅓이닝, 평균자책점 4.44로 고전했기 때문. 켈리의 구위 저하 문제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에도 LG는 일단 믿고 시간을 줬고, 켈리는 후반기 12경기에서 4승2패, 71⅓이닝, 평균자책점 2.90을 기록하면서 기어코 시즌 10승을 달성했다.
LG는 켈리의 후반기 활약 덕분에 시즌 막바지 정규시즌 1위를 확실히 굳힐 수 있었고, 한국시리즈까지 승승장구하며 통합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켈리는 한국시리즈 2경기에 선발 등판해 1승, 11⅓이닝, 평균자책점 1.59로 맹활약하면서 5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LG 동료들과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LG는 당연히 켈리와 재계약을 진행했다.
하지만 올해 켈리는 또다시 흔들렸다. 켈리는 한국 타자들이 이제는 자신을 충분히 파악했다고 보고, 스프링캠프부터 스위퍼와 스플리터를 다듬는 등 한 단계 진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노력에도 올해 19경기에서 5승8패, 113⅔이닝, 평균자책점 4.51에 그쳤다.
켈리는 좋을 때는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다 갑자기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외국인 투수가 계속 기복이 있으니 계산이 서질 않았고, LG는 후반기 순위 싸움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 힘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켈리는 지난달 25일 잠실 삼성전에서 9이닝 1피안타 무4사구 3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으로 완벽한 부활을 알리나 싶었고, 이후 등판했던 지난 2일 키움전과 14일 한화전은 모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그런데 올 시즌 1위 KIA를 만난 지난 9일에는 5이닝 9피안타 1볼넷 1탈삼진 5실점으로 무너졌다.
켈리는 KBO 통산 163경기에서 73승46패, 989⅓이닝, 753탈삼진,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하고 있다. 이날 두산을 상대로 개인 통산 74승째를 챙기며 유종의 미를 거두려 했으나 무심한 하늘에 막혔다. 켈리는 경기가 재개되면 3회 마지막 아웃카운트까지는 처리하겠다는 의지로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는데, 2번째 폭우로 결국 더는 마운드에 서기 어려워졌다.
켈리는 노게임이 선언된 뒤 더그아웃 앞에 선수단과 모여 인사를 나눴고, 1루와 3루 관중석을 향해서도 두 팔을 뻗으며 인사했다. 원정팀 두산 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누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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