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자마자 판정패 당하는 대선토론의 특징[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승리를 부르는 제스처의 주인공이 되는 법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십니까. 영어를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으로 모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사인 시사 뉴스와 영어 공부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해주시면 기사보다 한 주 빠른 월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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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y eyes, blank stare, slack mouth,” (울 것 같은 눈, 초점 잃은 시선, 벌어진 입) |
토론 실력도 토론 실력이지만 미국인들이 더 충격을 받은 것은 비언어적 영역, 즉 바이든 대통령의 표정입니다. 연설 전문가들이 본 표정 3종 세트입니다. ‘misty eyes’는 ‘안개를 머금은 눈’ ‘촉촉한 눈’을 말합니다. 연인들 사이에서는 좋을지 몰라도 중대 토론하러 나온 대통령에게 촉촉한 눈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눈이 향하는 방향은 초점을 잃었습니다. ‘blank stare’는 ‘텅 빈 시선’ ‘멍때리는 시선’을 말합니다. 게다가 입은 약간 벌어져 있습니다. ‘slack’(슬랙)은 ‘틈’을 말합니다. 일할 때 상대가 너무 몰아붙이면 이렇게 쏘아붙이면 됩니다. “Hey, give me some slack.”(이것 봐, 나에게 좀 틈을 줘)
영혼이 가출한 듯한 대통령의 표정이 너무 신기해 온갖 패러디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시험 첫 문제 읽었을 때 내 표정’ ‘슈퍼마켓에서 와이프가 사 오라는 목록 쪽지를 잃어버렸을 때 남편 표정’ ‘담배 한 갑 피고 맥주 8잔 마신 뒤 친구 바라볼 때 표정’ 등 대통령이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미국은 정치 연출학(political theatrics)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입니다. 토론이나 연설을 연극 무대로 보고, 정치인은 리더다운 표정과 제스처를 연출합니다. 이번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표정 연기는 0점에 가까웠습니다. 대선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처럼 폭망한 사례를 알아봤습니다.
I thought he was going to hit George.” (그가 조지를 때리는 줄 알았다) |
고어 부통령의 우위는 토론에서 무너졌습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행동 때문입니다. 토론에서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도를 넘으면 보는 사람이 거북합니다. 1차 토론에서 부시 후보가 말할 때 고어 부통령의 다채로운 반응이 화제가 됐습니다. 한숨 쉬기(sighing), 고개 젓기(shaking head), 눈알 굴리기(rolling eyes) 등의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상대의 발언이 수준 미달이라는 의미입니다. 정치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서 풍자할 정도로 화제가 됐습니다.
더 문제가 된 것은 3차 토론 때였습니다. 의료보험을 주제로 토론하던 중 고어 부통령이 “당신은 환자의 권리를 아느냐”라고 물으며 부시 후보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한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personal space’(개인 공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너무 들이대면 ‘invade personal space’(개인 공간 침범)라고 화를 냅니다. 신체적 위협으로 간주됩니다. 대화할 때 18∼24인치(45∼60cm) 거리가 적당합니다. 토론이 끝난 뒤 부시 후보의 어머니 바바라 여사의 소감이 화제가 됐습니다. 퍼스트레이디 출신다운 노련한 대답이었습니다. 고어 부통령에게 폭력적인 이미지를 씌우고 아들은 무고한 피해자임을 강조했습니다.
They seemed less like leaders than deer caught in headlights.” (그들은 리더 같지 않고, 자동차 불빛에 놀란 사슴 같았다) |
기계를 고치는 동안 웃긴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기술자들이 분주히 오가고, 방청객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화제가 된 것은 두 후보의 행동이었습니다. 주변의 난리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모습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잡담을 나누지도 않았습니다. 옆에 의자가 있었는데도 앉지 않은 두 후보는 토론 역사상 가장 어색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미국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문화입니다. 침묵을 꺼립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 후보가 나홀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국민의 눈에 좋게 보였을 리 없습니다. 토론을 취재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한 말입니다. 한밤중 갑자기 자동차 불빛 안으로 뛰어든 사슴은 극도로 긴장한 상태입니다. ‘like a deer caught in the headlights’는 겁을 먹거나 놀란 상황을 가리킵니다. 정치인에게 놀란 사슴은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비유입니다.
나중에 포드 대통령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방송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I suspect both of us would have liked to sit down and relax while the technicians were fixing the system, but I think both of us were hesitant to make any gesture that might look like we weren’t physically or mentally able to handle a problem like this.”(기계를 고치는 동안 우리 둘 다 자리에 앉아 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런 문제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취하기를 꺼렸다)
That son of a bitch just cost us the election.” (저 자식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 |
결국 수염은 대선 토론에서 문제가 됐습니다. 케네디 후보는 화장하지 않고 토론에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방금 끝낸 캘리포니아 유세에서 자연스러운 태닝이 돼서 TV 화면에 잘 받았습니다. 경쟁심이 발동한 닉슨 부통령은 자신도 화장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5 o’clock shadow’(5시의 그림자). 아침에 면도해도 오후 5시면 돋아나는 수염을 말합니다. 비서에게 급히 ‘레이지 쉐이브’(Lazy Shave)라는 제품을 사 오도록 했습니다. 수염 자국을 가려주는 파우더입니다.
토론장의 강렬한 조명 아래서 파우더가 땀과 결합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머니에서 흰색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습니다. 이 유명한 순간을 ’Nixon handkerchief moment’(닉슨 손수건의 순간)이라고 합니다. 선거 패배의 순간을 말합니다. 바로 그 순간 닉슨의 러닝메이트였던 헨리 캐봇 로지가 한 말입니다. 자신을 러닝메이트로 뽑아준 닉슨을 ‘SOB’라고 할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cost’는 ‘비용’이라는 명사 외에 ‘대가를 치르다’라는 동사로도 많이 씁니다.
명언의 품격
재선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행동이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슈퍼마켓 스캐너 사건. 대선 유세 중에 슈퍼마켓 행사에 참석해 스캐너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16년 전부터 슈퍼마켓에 나와 있던 스캐너를 신기하게 바라본 것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Bush Encounters the Supermarket, Amazed’(부시, 감격해 슈퍼마켓과 조우하다). 서민의 삶을 모르는 대통령을 꼬집는 기사였습니다. 이 사건 후 정치인이 민심을 모르는 행동을 하면 ‘supermarket scanner moment’(슈퍼마켓 스캐너 순간)이라고 부르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몇 개월 뒤 대선 토론이 열렸습니다. 질문 코너에서 한 여성이 경기 침체가 후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습니다. 그 순간 시계를 보는 부시 대통령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빨리 끝나기를 기다린다는 신호였습니다. 토론에 임하는 성의 없는 모습에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Only 10 more minutes of this crap.” (10분만 더 이 헛소리를 참으면 된다) |
실전 보케 360
Everyone has an off day.” (누구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있다) |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2년 1월 10일 소개된 고령 대통령의 재선 도전에 관한 내용입니다. 4년 중임제(최장 8년)인 미국 대통령 제도는 현직 대통령의 재선 도전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나이가 많으면 반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대통령 자리는 정신노동의 강도가 워낙 세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직을 마칠 때의 나이가 70대 후반 이후라면 적신호가 켜집니다.
▶2022년 1월 10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110/111165416/1
I’m a great respecter of fate.” (나는 운명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
I’m cognitively there.” (나는 인지적으로 준비가 돼 있다) |
I will not make age an issue of this campaign. I am not going to exploit, for political purposes, my opponent’s youth and inexperience.” (나는 나이를 선거 이슈로 만들지 않겠다. 상대의 젊음과 경험 부족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 |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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