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 끝부분을 감싸고 있는 쇠붙이…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4. 7. 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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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27] 운동화 끈 끝에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사진 출처=국립국어원]
명사. 1. 애글릿 2. 슈레이스 팁(shoelace tip) 【예문】신발 끈을 잘랐더니 길이는 적당한데 애글릿이 없는 게 흠이네.

애글릿(aglet)이다. 금속이나 플라스틱 따위로 신발 끈 끝부분을 고정한다. 끈의 올이 풀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운동화 구멍에 쉽게 넣고 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애글릿이란 이름은 ‘바늘’을 뜻하는 라틴어 acus에서 파생된 옛 프랑스어 aiguillette(aguille)에서 유래했다.

애글릿의 역사는 유구한데, 쇠붙이나 유리, 돌 등으로 만들어진 초기 단계의 애글릿은 단추가 발명되기 이전 로마 시대 때 옷을 여미는 데 사용됐다. 확실하진 않지만 많은 출처에서 애글릿은 1790년대 영국의 하비 케네디(Harvey Kennedy)라는 발명가에 의해 대중화됐다고 밝히고 있다.

애글릿 대신 ‘플루겔바인더(flugelbinders)’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톰 크루즈의 광팬이 틀림없다. 1988년 영화 ‘칵테일’에서 주인공 브라이언 플래내건(톰 크루즈)은 조르단 무니(엘리자베스 슈)와 발명가를 백만장자로 만들었을 법한 평범한 물건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플래내건 : (칵테일 우산을 들고) 이거 만드는 사람이 있는 거 알아요?

조르단 : 한 사람이라고요? 엄청나게 지쳤겠네요.

플래내건 : 네, 맞아요. 그래도 그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에게 키스하고는 1년에 100억개쯤 팔아 치우는 이 우산 공장으로 출근하겠죠. 당연히 백만장자고요. (중략)

플래내건 : 이 신발 끈 끝에 있는 플라스틱은요? (What these plastic things at the end of the laces?)

조르단 : 음. 아마 ‘플루겔바인더’ 같은 이상한 이름일 거예요. (It‘s probably got one of those weird names too like flugelbinder….)

플래내건 : 플루겔바인더, 맞아요. (이어지는 톰 크루즈의 건치 미소)

결국 애글릿이란 이름은 등장하지도 않고 대화는 플루겔바인더로 마무리된다. 플루겔바인더는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가상의 단어이며 실제로 쓰이진 않는다. 독일어 Flügelbinder(날개 바인더·묶기)를 영어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한다. 신발 끈 묶은 모양을 생각해보면 완전히 엉뚱한 작명은 아니다. 아무튼 풋풋한 20대 톰 크루즈와 엘리자베스 슈가 플루겔바인더라고 말하면 그게 정답이다. 하지만 애글릿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하다. 여담으로, 칵테일 우산 ‘그거’의 이름은 재미없게도 칵테일 우산이다.

칵테일에서 애글릿에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젊은 시절의 톰 크루즈와 엘리자베스 슈. 마지막 톰 크루즈 얼굴 사진은 불필요하지만 굳이 넣었다. 잘생긴 얼굴은 늘 새롭고 짜릿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터치스톤 픽처스·브에나 비스타 픽처스]
애글릿은 사소하지만 있다 없으면 불편함이 확 체감되는, 그런 물건이다. 신발 끈이 손상되거나 잘라서 짧게 만들고 나면, 새 애글렛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새 신발 끈을 사는 것 외에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① 투명 테이프를 두세 번 감고 끝부분을 잘라내거나 ② 촛농·접착제·매니큐어를 발라 단단히 만드는 단순한 방법부터 ③ 얇은 실로 끝부분을 칭칭 동여매거나(휘핑 매듭) ④ 전기 시공용 열 수축 튜브나 ⑤ 별도 판매하는 금속 애글릿과 전용 공구를 활용하는 돈 드는 방법, ⑥ 플라스틱 합성소재의 신발 끈의 경우 바로 라이터로 끝부분을 살짝 녹여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굳히는 야만적인 방법이 있다.
다양한 애글릿 수리·수제 방법. 좌측부터 손상된 애글릿과 투명 테이프, 촛농, 접착제, 휘핑매듭, 열 수축 튜브, 금속 애글릿, 불로 지지기 방법. 이안 매듭 방식을 개발한 일명 ‘신발 끈 교수’ 이언 피겐의 홈페이지에서 가져 왔다. [사진 출처=www.fieggen.com]
그렇다면 옷이나 신발 등에서 끈을 통과시켜 꿰는 둥근 구멍 ‘그거’는 뭐라고 할까. ‘아일릿(eyelet)’이다. 애글릿과 발음이 비슷하다. 천 등에 곧바로 구멍을 뚫고 사용하면 주변이 쉽게 헤지거나 찢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아일릿은 이러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금속이나 가죽 등으로 보강한 작은 구멍을 의미한다.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구멍 보강재를 통틀어 그로밋(grommet)이라고도 하는데, 아일릿이란 표현은 그중에서도 신발과 의복 등에 뚫린 작은 구멍을 설명할 때만 쓰인다.

일본 패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의 ‘아일릿 스니커즈’. 아방가르드하다. 공식 웹사이트 판매가 756달러(약 104만원). 가격은 더 아방가르드하다. [사진 출처=theshopyohjiyamamoto.com]
  • 다음 편 예고 : 아파트에 딸린 실외공간 베란다 말고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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