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1000만? 달라져야 한다 [편집인의 원픽]

2024. 7. 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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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올해 81세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27일(현지시간) 대선 TV 토론에서 멍한 표정을 짓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후보 사퇴 논란에 휩싸였다. 로이터=연합
현재 나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장 뜨거운 나라는 미국일 것이다. 올해 11월 81세가 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27일(현지시간) 첫 TV 토론회 이후 ‘고령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고작 4살 차이 밖에 나지않는다”고 항변하지만 TV토론에서 보인 ‘무력한 노인’ 모습에 단단히 발목이 잡힌 상태다. 암살 시도 이후 주먹을 쥔 채 ‘싸우라’고 외친 트럼프는 더 이상 ‘77세 후보’로 보이지 않는다. 

전세계적으로 고령화 사회가 늘면서 70대 지도자 등장이 잦아졌다. 최근 3연임에 성공한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73세, 역시 3연임이 확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71세다.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가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71세다. 아예 ‘노인’ 공식 연령 기준을 70대로 높여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5년부터 10년마다 노인 연령을 1세씩 단계적으로 올리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노인 연령 기준은 65세다.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의 경로우대에서 시작됐으니 40년 넘게 이어졌다. 기초연금, 지하철 무임 승차 등 주요 노인복지사업이 65세를 기준으로 삼는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하면 엄청난 돈을 노인 부양에 쓰거나, 연령 기준 자체를 높일 수밖에 없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0일 기준으로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행안부에 따르면 ‘노인’으로 분류되는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62명으로 전체 인구 5126만9012명의 19.51%를 차지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일 경우 ‘초고령사회’로 구분하는 유엔 기준을 충족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65세 이상 1000만, ‘초고령’ 대한민국’ 기사(7월12일자·이병훈·정재영·이지민·구윤모·김주영 기자 등)는 행안부 발표를 계기로 우리 사회 정책에 미치는 여파와 지방자치단체의 고령자 정책을 짚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0일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 이제원 선임기자
◆‘고령자 1000만 시대’ 의미는

인구 5명 중 한 명 꼴로 65세 이상인 사회. ‘늙어가는 대한민국’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추세가 빠르다는데 있다. 일본이 고령 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옮겨가는데 12년이 걸렸다면 우리나라는 7년 정도 걸렸다. 우리 사회가 미처 정책적으로, 문화적으로 준비할 틈 없이 맞닥뜨린 현실이다. 복지, 돌봄 의존 인원이 많아지면 국가 재정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100세 인생인 시대에 65세를 과연 ‘노인’으로 봐야하느냐는 논란도 커진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노인의 52.7%가 ‘70~74세’를 노인으로 봐야하는 연령이라고 밝혔다. 70대를 노인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늘면서 대한노인회도 노인 연령을 상향해야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시는 늘어난 기대 수명을 감안해 신규 복지 사업 추진시 연령 기준을 60∼80세 등 유연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노인들이 개찰구를 통과하는 모습. 서울시는 각종 노인 복지 혜택을 주는 기준 연령을 만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년 연장, 연금 개혁이 관건

무턱대고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기는 어렵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노인은 ‘사회적 약자’다. 노인 빈곤율이 39.3%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국가 재정을 이유로 복지를 축소할 경우 인구 20%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노인 소득과 직결되는 것이 일자리, 연금이니 정년 연장, 연금 개혁은 ‘고령자 1000만 시대’에 핵심 이슈다. 

이미 현대자동차 노사가 기술직(생산직) 촉탁계약 기한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기로 합의했지만 일부 기업의 사례일 뿐이다. 정년 연장은 청년 일자리 감소와 연결될 수 있어 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본지에 “대기업은 자동화를 택하고, 중소기업은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다보니 60세 이상 근로자가 계속 일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고령 노동자 활용 중심으로 정책이 조정돼야한다”고 했다. 

현재 만 63세에 받기 시작하고, 2033년 65세로 늦춰질 국민연금 수급 기준도 정년 연장 이슈와 무관치 않다. 윤석열정부가 연금 개혁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국회 논의는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현행 기준과 크게 다르지않으면 청년 세대의부담은 고스란히 남고 세대갈등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일본 최대 자동차업체 도요타는 8월부터 65세 이상 시니어 직원의 재고용을 확대키로 했다. AP뉴시스
◆외국 사례는

우리보다 빨리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정책은 선례로 삼을 만하다. 일본에선 60세 정년 이후 임금을 낮춰 재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정년 연령을 높인 적이 있는 회사 비율은 26.9%에 이른다. 지난해 65∼69세 취업률은 52%에 달했다. 일본 최대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자동차는 다음달부터 65세 이상 재고용을 확대하는 제도를 시작한다. 

탄력적인 인력 운용이 가능한 미국에서도 60세 이상 베이비무머가 일선에서 은퇴할 경우 각 분야에서 인력 부족이 심해질 것으로 보고 70대까지 일할 경우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고령화 추세로 1자녀 정책을 폐기한 중국도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최근 대만 국회는 만 65세 정년을 폐지하는 내용의 노동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각 국 정부가 은퇴 연령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고령화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생산력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정년 제도를 폐지하고 연금 받는 시기를 은퇴 연령 기준으로 삼아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뚜렷한 저출산, 고령화 흐름을 역전시키기 어려운 우리나라에서 ‘65세 이상’ 인구와 여성 인력은 대한민국 역동성,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 활용돼야할 자산이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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