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보다 좁은데···동물이 있다고 ‘동물원’일까 [동물원이야기⑧]

기자 2024. 7. 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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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칸방보다 좁은 ‘실내동물원’
실내동물원에서 생활하는 백호의 불임수술 현장. 열악한 환경에서 비정상적인 삶을 사는 호랑이의 번식을 막아 실내 사육의 대물림을 끝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청주로 내려가는 차 안이라 핸즈프리로 전화를 받아보니 대전에 있는 방송사 기자였다. 어느 실내동물원의 동영상을 보내주면 자문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영상만 보고는 판단하기 어려울 거 같아 직접 방문하겠다고 말한 뒤 대전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방송사 기자와 만나 동물원 입구로 들어섰다. 마중 나온 직원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안내받은 3층 옥상의 단칸방 같은 공간에 사자와 호랑이가 전시되어 있었다. 야생동물을 실내에 가둬 전시하는 행태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있다 보니 좁은 곳에 가둔 동물들 모습이 방송에 나가면 오던 손님도 끊긴다며 동물원 측의 염려가 컸다.

작년 말 기준 국내 110개 동물원 중 20% 정도만이 공영이고 나머지는 사립이다. 공영은 지자체나 공기업에서 운영하고 사립은 대부분 개인 소유다. 말 못하는 동물들이 직접 자신들을 대변할 리는 없고 동물원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동물원 동물의 삶은 좌우된다. 특히 개인의 경우 처음에는 동물이 좋아서 시작한다지만 동물원을 운영하다 보면 동물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기 쉽다. 공영 또한 운영하는 직원들의 마인드 부재와 순환보직 등으로 많은 허점이 생길 수 있다.

기자와 동물원을 둘러보고 난 후 마주한 대표는 자신들도 실내에만 있는 사자, 호랑이에 대한 문제점은 충분히 알고 있다며 3000㎡의 뒷산 부지에 동물들의 실외방사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동물관리에 관한 문제도 있었다. 동거 중인 수컷 호랑이의 공격을 받은 암컷 호랑이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공격받는 개체가 피할 도리가 없었다.

단독 생활하는 호랑이는 분리 사육하는 것이 최선이나 하는 수 없이 수컷 호랑이의 공격성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불임 수술을 제안했다. 호랑이와 사자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의외로 새끼를 잘 낳는 편이다. 새끼를 낳기는 하지만 키울 환경이 되지 않으면 어미는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새끼 맹수의 순치를 위해 일부러 어미에게서 떼어내 사람이 인공포육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새끼가 없어지면 어미는 곧 발정이 온다. 과거 청주동물원에서 임신일수가 105일 정도인 호랑이가 한해 3번이나 새끼를 낳은 적이 있다. 제안한 불임수술의 궁극적 목적은 이런 호랑이들의 번식을 막아 실내 사육의 대물림을 끝내는 것이다. 동물원을 다 돌아보고 나와 기자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자는 동물들의 좋은 삶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자극적인 일회성 보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방문한 동물원에 대한 내용이 얼마 후 방송됐다. 제목은 ‘감옥 같은 실내동물원’이었다. 그날 만난 사육팀장은 방송을 보자마자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읽지 않아도 항의성 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방송에서 3000㎡ 실외방사장을 만든다는 내용이 연이어 보도됐다. 기자는 해당 동물원을 비판했지만 약속대로 대안을 같이 보도했다. 며칠 뒤 사육팀장이 앞서 보낸 문자에 대해 사과하며 방송을 본 동물원 대표가 호랑이의 불임수술을 허락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불임수술은 한국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이하 동수수) 소속 수의사들이 함께 진행했다. 젊지 않은 호랑이의 안전한 마취를 위해 서울대 수의대 마취통증과 수의사들도 참가했다. 젊은 마취통증과 수의사들은 나의 스승들이다.

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는 실내동물원 백사자 발톱 제거 수술(왼쪽 사진)과 실내동물원 육지거북의 귀 수술 등을 실시했다.

2년 전 여우를 마취하다 허망하게 하늘로 보낸 적이 있다. 수의대에서는 외과나 응급의학에 마취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 전국 10개 수의대 중 마취통증과가 별도로 설치된 곳은 서울대밖에 없었다. 지인의 소개로 서울대 마취통증과 교수님을 찾아갔고 학부생들의 실습에 2주간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학교 근처에 그동안 지낼 숙소를 마련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바쁜 병원 생활로 온몸이 지쳐 매일 숙면에 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피로감이었다. “배워서 남 주어라”는 마취통증과 교수님의 넉넉한 배려와 동물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전공 수의사들은 나를 감동케 했다. 어느 날은 통증이 극심하다는 흉골절개술을 받은 고양이가 수술 후 입원장 안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추르(간식) 먹는 것을 보고 적극적인 통증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동수수 소속 수의사들이 호랑이 불임수술을 실시하는 동안 마취과 수의사들이 마취 모니터링을 담당했다. 국내 최초로 호랑이 심혈관 모니터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나씩 정립된 의료 지식은 수의사들에게 전해져 더 많은 호랑이가 치료받을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불임수술은 순조롭게 끝났고 이어 백사자 수컷에게 심상치 않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발을 핥는 것을 보았는데 입가에 피가 묻어 있었다. 문제를 빨리 파악해 해결해주고 싶었으나 백사자의 격리 칸 문고장으로 안전상 우려가 있어 일주일 후 재방문이 이루어졌다. 마취 후 발바닥을 살펴보니 발톱이 과성장해 발바닥을 찌르고 있었다. 움직일 공간이 부족한 실내 동물원 사자들이 자주 겪는 문제다. 걸을 때마다 깊이 박히는 발톱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야생동물들, 특히 맹수들은 자신의 아픔을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발바닥에 박혀있던 갈고리 모양의 발톱을 전기 원형톱으로 잘라냈다. 서너 군데 박힌 발톱을 자르고 뽑았다. 발바닥에선 피고름이 났지만 경험상 약만 잘 먹으면 곧 나을 것이다. 자연에서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야생동물인지라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외상은 비교적 잘 아문다.

사자 바람이를 김해의 실내 동물원에서 데려오면서 청주동물원은 예상치 못한 유명세를 치렀다. 그 후 바람이가 지내던 실내 동물원은 문을 닫았고 얼마 후 거기 살던 백호와 흑표가 폐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곳 동물들에게 왠지 모를 부채감을 느꼈다. 서너 차례 김해로 내려가 동물들을 진료했다. 당시 백호는 심장초음파 결과 심근에 문제가 있었다. 같은 사육조건과 혈연인 수컷 백호의 폐사 원인도 심근 문제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알파카는 몇년째 깎지 않아 갑옷같이 단단해진 털 뭉치 속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얼마나 단단히 뭉쳤는지 제모기 날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위로 깎기 시작했는데 잘 늘어나는 피부는 가윗 날에 찢기기 쉬웠다.

국내에 동물원이 생긴 지 100년이 넘은 2017년에야 동물원수족관법이 만들어졌다. 누구나 등록만 하면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마침내 작년 동물원수족관법의 전면 개정으로 동물을 위한 요건을 갖춰야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는 허가제로 바뀌었다. 개정된 법은 4년의 유예기간이 있지만, 요즘 여러 동물원에서 폐업한다며 키우던 동물을 데려가 달라는 연락을 해온다. 전국 동물원에 수만 마리의 동물이 살고 있다. 지금 그 동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의료봉사를 통해 방치된 동물의 고통을 줄여주고 불임수술을 통해 수를 줄여나간다면 향후 동물들의 불행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정호 수의사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 일하고 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김정호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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