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디오픈 열린 로열 트룬에서 스러진 골프영웅들
[골프한국] '골프는 인생 자체보다 더 인생 같은 것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간)부터 영국 스코틀랜드 사우스 에어셔의 로열 트룬(Royal Troon) 골프클럽에서 열린 PGA투어 시즌 마지막이자 지구촌 최고(最古)의 메이저 대회인 제152회 디 오픈(The Open) 1~2라운드를 보고 미국의 경영컨설턴트 데이비드 누난의 말이 떠올랐다. 최종 결과는 4라운드가 끝나야겠지만 두 라운드만으로 골프의 모든 것, 인생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북대서양의 플라이드 만(灣)에 면한 모래 해안에 자리잡은 로열 트룬 코스가 온갖 도전과 시련을 요구하는 우리네 삶의 현장처럼 거칠고 황량했다. 골프 기량을 겨루는 곳이 아니라 대회에 출전한 선수 개개인의 모든 것을 혹독하게 시험하는 무대나 다름없었다.
로열 트룬 코스는 역시 스코틀랜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로열 도녹(Royal Donoch) 골프코스와 함께 세계 최고의 링크스 코스로 꼽힌다. 스코틀랜드 지역에만 5백여 개의 링크스 코스가 있지만 영국 왕실에서 인정한다는 의미의 '로열'이 붙는 링크스 코스는 로열 트룬과 로열 도녹 단 두 곳뿐이다.
골프의 성지로 각광받는 그 유명한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코스도 로열의 칭호를 얻지 못했다. 그만큼 링크스 코스의 상징성이 탁월하다. 로열 트룬 골프클럽은 1878년에 설립됐다. 처음엔 5개 홀로 시작했다가 차츰 코스를 늘려 지금 모두 45개 홀이라고 한다.
골프의 발상지로 인정받고 있는 스코틀랜드에서 링크스(links)는 바로 골프의 역사다. 링크스는 스코틀랜드 해안가에 형성된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진 황야지대를 가리킨다. 북대서양의 험한 파도와 바람을 곁에 두고 작은 하천과 도랑을 품고 잡초와 야생화만 무성히 자라는 황무지다. 수시로 거친 파도와 비바람이 몰아쳐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목초지로도 이용할 수 없다.
링크스는 바람과 모래가 만든 자연이 숨 쉬는 코스다. 인공적인 변형을 용납하지 않는다. 인공적인 변형을 시도해도 금방 원래대로 돌아가 그린과 항아리 벙커 정도의 손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북해의 영향으로 하루에도 4계절을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골프 코스에 운집한 갤러리들의 다양한 복장이 이곳 자연의 혹독함을 말해준다.
대회장 관람대 벽면에 쓰인 'Forged by nature'라는 문구가 실감난다. 자연이 주조한, 자연이 빚은 골프 코스라는 뜻이겠다.
타이거 우즈와 로리 맥길로이의 컷 탈락은 '골프 무상(無常)'을 전하는 묵시록(黙示錄)이다.
PGA투어 통산 82승(샘 스니드와 타이)에 메이저 12승의 타이거 우즈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골프 황제다. 메이저 우승 횟수에서만 잭 니클라우스(15승)에 뒤질 뿐 골프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다. 그런 그가 2라운드 합계 14오버파로 컷(6오버파)을 넘지 못했다. 몸이 성치 않는 데도 메이저만 골라 선별 출전하는 것을 보면 우즈는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15승과 타이를 이루거나 추월하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피로와 뜻대로 되지 않는 경기로 컷을 통과하지 못하고 코스를 떠나야 했다. 그의 모습은 사우스 에어셔 앞 플라이드만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을 보는 듯했다. 그가 승수를 다시 보탤지는 모르지만 50을 눈앞에 두고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은 석양의 장엄함을 연상케 한다.
영국 골프 특히 스코틀랜드 골프에 익숙한 세계 랭킹 2위 로리 맥길로이의 컷 탈락(11오버파)이나 브라이슨 디섐보, 헨릭 스텐슨, 빅토로 호블란, 잭 존슨, 토니 피나우 등 PGA투어 강자들이 로열 트룬 코스의 날카로운 발톱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은 아마추어 골프 애호가들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니 엘스와 존 델리의 기권은 보는 이의 마음을 비장케 했다.
김주형의 컷 탈락을 아쉬워하며 왕정훈, 김민규, 안병훈, 김시우, 송영한, 임성재 등 어렵게 컷을 통과한 한국선수들이 로열 트룬 링크스코스에서 멋진 경험을 하기 바란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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