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수단 내전 1100만명 피란… 국제사회 무관심에 절망 [세계는 지금]
수단 정부, 아프리카 농경민 노골적 차별
다르푸르서 무력 충돌… 대량학살 이어져
국제사회 중재로 양측 2011년 평화협정
18년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쟁 휩싸여
가자·우크라 전쟁에 묻혀 관심 못받아
세계 지도자들도 적극적 목소리 사라져
2019년 쿠데타 함께한 RSF·SAF 반목
2023년 조직 지휘권 두고 무력 분쟁 터져
내전 확산… 역대 최대 규모 피란민 발생
내전 지속에 여성·아동 등 고통 더 커져
영양실조·질병·테러·성폭력 위협 노출
아동 1100만명 긴급 인도적 지원 필요
2006년 4월 정치인, 올림픽 선수 등 유명인사를 비롯해 수천명의 인파가 미국 워싱턴 내셔널몰에 모였다. 이들의 주장은 다르푸르 지역의 대략 학살을 막기 위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과 함께 처참한 수단 내 상황을 알리고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함께 요구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상원의원이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수단 내 대량학살을 막기 위해 개입할 것을 촉구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며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군사적, 외교적 조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년이 지난 지금, 수단에선 또다시 내전으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고 있다. 수단에선 지난해 4월 시작된 내전이 1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집회도, 유명인사의 메시지도, 외부 군사 개입 촉구도 없다. 세계 지도자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국제사회의 외면으로 오늘도 힘없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 한 번의 전쟁… 달라진 온도
수단에서 활동 중인 구호 단체 관계자들은 수단 분쟁이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보다 너무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지역 전문가인 앨런 보스웰은 지난 5월28일 미국 외교안보저널 포린폴리시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같은 위기에 집중하는 수준을 보면서 그 에너지의 5%만 수단과 같은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단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르푸르가 기근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며 “가자지구의 기근 위험에 대해선 모두가 알고 있다”고 호소했다.
수단 정부군(SAF)과 준군사 조직인 신속지원군(RSF)은 권력 장악을 위해 지난해 4월부터 내전을 벌이고 있다. SAF의 수장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과 RSF를 이끄는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은 2019년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30년간 집권한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을 축출했다. 2021년 10월에는 과도 정부를 무너뜨리며 권력을 장악했다.
독재 정부를 공격하던 칼날은 조직 지휘권을 두고 서로를 향하게 됐다. 지난해 4월 SAF가 RSF를 편입하겠다고 하자 RSF는 반발했고 권력 분쟁이 시작됐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중재를 시도했지만 SAF의 거부로 협상은 무산됐다.
200만명 이상은 이집트, 차드, 에티오피아 등 주변국으로 피란을 떠났다. UNHCR은 올해 피란민들이 리비아와 우간다로 향할 것으로 예상했다. 각각 14만9000명과 5만5000명 정도다. UNHCR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이완 왓슨은 “난민들이 리비아와 같이 극도로 어려운 나라로 향하는 것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박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여성, 아동 등 약자들의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유엔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단에서 아동들이 영양실조, 질병, 사망의 위험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집행이사인 신디 매케인은 “수단 전역의 어머니와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며 “계속되는 전쟁으로 식량, 의료 지원, 쉼터 등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박탈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수단 아동 2명 중 1명은 전선에서 불과 5㎞ 이내에 거주하고 있어 공습, 폭격, 총격 등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전체 2200만여명의 아동 중 절반은 긴급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며 1800만명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1000만명 정도는 폭탄 테러와 성폭력 등에 노출돼 있기도 하다.
성인 여성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특히 임산부와 모유 수유를 해야 하는 여성의 경우는 더 우려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구호 단체 국경없는의사회(MSF)에 따르면 임산부와 모유 수유 중인 여성 중 33% 이상이 영양실조 상태다. MSF는 영양실조가 자궁에서 시작된다며 여성이 임신 중인 상태라면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MSF가 수단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차드에서 운영하는 캠프 내 소아과 병동에는 합병증을 앓는 아이들과 E형 간염에 걸린 임산부 입원이 늘고 있다. MSF 병동 코디네이터 코둘라 하프너는 “많은 아동이 위생, 음식·물 부족으로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런 위기는 계속될 것이고, 이런 아동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캠프에 도착하지 못해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캠프에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가장 절망적인 사람들은 최전선에 갇혀 있다”고 우려했다. MSF 미국 사무소장 에이브릴 베누아는 성명을 내고 “다르푸르 북부에서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며 “우리 팀이 파악한 바로는 매일 13명의 아동이 영양실조와 관련된 건강 문제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단 내 도움이 시급하다며 정부가 인도주의단체로부터 들어오는 원조를 차단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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