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화정적 공간[소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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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간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차한 최화정은 두 번째 주방으로 유튜브를 택했다.
영상 속 최화정은 빨간 립스틱을 바른 채 국수를 말아 먹는다.
있는 그대로의 최화정.
'안녕하세요 최화정이에요'라는 채널명이 곧 채널의 정체성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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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간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차한 최화정은 두 번째 주방으로 유튜브를 택했다. 영상 속 최화정은 빨간 립스틱을 바른 채 국수를 말아 먹는다. 화사한 스트라이프 셔츠 차림으로 묵은지를 볶는다.
이 채널은 방송인 홍진경을 ‘공부왕찐천재’로 리브랜딩한 유튜브 PD의 두 번째 히트작이다. 전작은 연출 역량이 두드러진다면, 이번엔 출연자를 있는 그대로 비추는 데 집중한다. 여기선 최화정이 낭랑한 목소리로 생활 팁을 듬성듬성 알려주고 무언가 발랄하게 먹는 것이 전부다. 여름 입맛이 돌게끔 하는 것 말고 달리 특별한 ‘와우 포인트’는 없다. 유명 게스트도, 카타르시스 있는 무한도전 스타일의 실소 유발 자막도 넣지 않는다.
요리와 음식 영상을 보여주지만, 본격 요리 채널이라고도 할 수 없다. 어느 날은 수십 년 다닌 콩국수 집에 가서 디저트로 비빔국수를 먹을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최화정. ‘안녕하세요 최화정이에요’라는 채널명이 곧 채널의 정체성 그 자체다.
영상은 올라올 때마다 조회수 100만 회를 매번 넘기면서 화제가 된다. 요즘 같지 않게 조미료 치지 않은 영상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건 그녀의 ‘다정한 지능’ 덕분이다. 최화정은 음식에도 ‘익스큐즈 미’ 하는 해맑은 예의를 지녔다. ‘애기’ 제작진에겐 어미새처럼 “일단 먹고 보라”며 손수 만든 음식을 권하고 본다. 어깨 펴고 미소 지으면 못 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유쾌의 지속가능성을 조리하는 60대 소녀에게 대중은 고마워하고 있다. 한 구독자는 “옛날부터 봐오던 분이 여전히 그대로여서 그게 좋았다. 나이 드는 게 자꾸 싫어져서 우울했는데 덕분에 힘내본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런 댓글들은 자연스레 이 채널을 완성하는 ‘킥’(요리에서 결정적 한 수)이 된다.
댓글을 다는 이들은 모두 그녀의 온화함에 이끌려온 사람들이다. 댓글 창엔 최화정의 식기들만큼이나 알록달록한 각자 삶의 그릇들이 모여든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 없던 사람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이처럼 다정한 공간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캔디’로 불리는 구독자들은 감상을 넘어 다짐에 가까운 말을 남긴다. 그녀처럼 다정하고, 행복해지겠다는 약속을 하고 간다.
“부모님 병간호에 지쳐서 입맛도 없었는데 이제 화정님 레시피 따라 하느라 바빠질 것 같아요.” “우울증이 있지만 언니처럼 행복해져 보려고요. 언니가 먹는 제품들 다 따라 사고 싶어요.”
나는 여기 어떤 약속을 남길 수 있을까. 댓글 창 화면을 앞에 두고 생각했다. 약속이라기보다 하소연 같은 말을 끄적여봤다. 다행히 화정적 공간에서는 이런 횡설수설도 다 용인된다.
“기자가 된 뒤로 ‘사람이 건조하게 변했다’는 말을 들어요.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건 달갑지 않지만, 여름이 가기 전에 언니의 오이 김밥은 만들어보고 싶네요.”
사람들이 조미료 없이 해맑고, 순수한 다정함에 이토록 매료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닳아가는 미각에 대한 체념 대신 최화정을 ‘손민수’(다른 사람의 취향을 모방하는 것)하며 다시 맛깔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는 아닐까. 사람들은 지금 그녀의 주방이 먹여주는 작은 용기를 한술 뜬다.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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