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는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의 대안 될 수 있을까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2014년 브라질월드컵 실패는 승승장구를 거듭해온 축구인 홍명보를 멈춰세운 큰 시련이었다. 취임 당시부터 형성된 '의리 축구' 프레임에 휘청거렸고, 주택 건축용 토지 매입을 위한 사생활이 알려지며 '땅명보'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월드컵 부진까지 겹치며 처참하게 무너진 한국 축구의 영웅은 긴 칩거와 중국 무대 활동으로 기나긴 거리두기를 해야 했다.
정확히 10년 만에 홍명보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서 행정 능력을 발휘했고, 2021년부터는 울산 HD 감독으로 부임하며 과거의 실패를 차곡차곡 만회했다. 특히 감독으로서 울산을 2022년과 2023년 연속 K리그1 우승으로 인도했고 2025년 초대형 규모로 열리는 FIFA(국제축구연맹) 클럽월드컵 출전권까지 따내며 재평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과거보다 유연해진 팀 운영, 전술, 선수 관리 능력을 뽐내며 2년 연속 K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2월 부임 1년 만에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 감독의 후임으로 홍명보 감독이 대안 1순위로 떠오른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K리그 개막을 눈앞에 둔 시점에 시즌 준비를 마친 현장감독을 빼가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격렬해지면서 홍명보 대안론은 꺼졌다. 이후 5개월간 외국인 감독을 고려하며 후임 감독 선정 작업을 했던 축구협회는 7월7일 홍명보 감독 선임을 깜짝 발표했다. 선임 과정에 대한 반발이 거센 상황이었지만 엿새 후 축구협회는 이사회 의결로 선임을 확정하며 홍명보호 2기가 출범하게 됐다.
관점 ❶ 대표팀엔 홍명보의 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카타르월드컵부터 아시안컵까지 1년 동안 대표팀 안팎에선 많은 일이 벌어졌다. 손흥민·김민재·이강인·황희찬 등을 앞세워 역사상 최고의 멤버, 황금세대 출현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오히려 한국 축구는 좌충우돌했다. 각종 논란과 내홍이 반복되며 최고의 선수 구성에 부응하는 결과를 내는 데 애를 먹었다. 카타르월드컵 직후 알려진 '2701호 논란'이 대표적이다.
대표팀 선수 다수가 당시 같은 호텔 2701호에 마련된 개인물리치료사 방에서 치료를 받으며 발생한 일이었다. 선수 자신들 기준에서 능력이 더 뛰어난 개인물리치료사를 활용하길 원했고, 이 부분을 축구협회가 제대로 중재하지 못하며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선수가 단체행동을 통해 대표팀이 정식 채용한 기존 의무팀 구성원을 하대하고, 업무에서 배제시켜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일었다.
이후에는 대표팀 선수들 간 보이지 않는 갈등과 파벌 의혹이 있었다. 일부 주축 선수 간 갈등, 특정 연령대 선수 간 갈등 등의 루머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김민재가 작년 3월 A매치 소집 후 손흥민의 SNS 계정을 언팔로어하며 두 선수의 갈등설이 대두됐다. 결국 김민재가 자신의 생각이 짧았고, 행동이 경솔했음을 사과하며 일단락됐다.
이렇게 의심 정도로 취급되던 갈등설은 올해 2월 아시안컵 도중 놀라운 사건으로 터져나왔다.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이강인이 주장 손흥민과 물리적 다툼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은 것. 이 사건은 요르단과의 준결승전 하루 전날 발생했고, 그 파장을 클린스만 감독이 통제하는 데 실패하며 결국 대표팀은 허무한 패배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하는 두 선수의 충돌이 후일 알려지며 축구팬과 국민은 대혼란에 빠졌다.
빈도가 잦고, 파장이 커지는 대표팀 내 각종 논란에 대해 축구협회는 사실상 통제불가라는 판단을 내린 분위기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충돌 당시에도 자세한 사건 상황 설명은 외부 언론들의 각기 다른 보도로 이뤄졌다. 축구협회는 두 선수의 영향력을 고려해 눈치만 보며 징계 논의조차 못 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자율을 가장한 방임에 가까운 대표팀 관리 행태를 보인 외국인 감독 실패를 인정하고, 문화적으로 익숙하고 한국적 규율을 재정립할 한국인 감독 선임에 대한 필요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실제로 대표팀 감독 선임을 맡은 전력강화위원회 내부에서도 상당수 위원이 이런 문제점을 언급하며 한국인 감독, 특히 선수단 장악력과 리더십이 뛰어나고 라커룸 문화 형성을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홍명보 감독을 지지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결국 그 흐름이 외국인 감독이 아닌 홍명보 감독의 깜짝 선임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관점 ❷ 축구 그 자체로 선수들이 수긍할 수 있는가
대표팀의 최근 문제점으로 인한 홍명보 감독 선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중요한 것은 축구의 본질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 대표팀의 주축은 유럽파다. 그것도 5대 빅리그의 명문 클럽에서 뛰는 선수가 계속 늘어났다. 결국 그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느끼는 것과 유사한 수준의 축구 콘텐츠를 대표팀 소집 시에도 제공해야 하는 것이 큰 과제다.
과거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한 김판곤 전 전력강화위원장은 "좋은 내용의 훈련과 전술적 지향점, 방법론을 통해 선수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유럽파가 많은 현 대표팀의 지지를 받기는 쉽지 않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실제로 벤투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선수들로부터 "유럽 최고 레벨에 준하는 훈련에 만족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것이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벤투 감독이 대표팀을 끌어나갈 수 있는 최대 동력이 됐다. 반면 클린스만 감독은 산만하고 빈약한 전술 내용, 짧은 소집에도 강도 높은 체력훈련 위주의 구성으로 선수들의 외면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명보 감독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췄는지 시작 단계부터 외국인 코치를 영입해 달라는 요청을 축구협회에 한 상태다. 실제로 홍 감독은 7월15일 유럽으로 출국해 스페인·포르투갈 등지에서 자신과 호흡을 맞출 외국인 코치 2명을 선임하기 위한 미팅을 진행 중이다. 2014년 당시에는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전략분석코치인 두 샤트니에를 영입했지만 단기직으로는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걸 확인했다. 팀을 만들어 나가는 단계부터 외국인 코치의 역량을 활용하겠다는 게 홍 감독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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