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전장서 ‘첨단기술전·보병전’ 동시 진행… 韓, 드론 운용·거대도시 군사작전 준비 필요 [S스토리-점점 더 복잡해지는 현대전 양상]

박수찬 2024. 7. 2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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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달로 미래전쟁 ‘기술 중심’ 전망
우크라전, 이·팔 전쟁 겪으며 통념 깨져
민간인 피해 ‘시가지 전투’도 주저 안 해
론 통해 전장 상황 인식해 표적 파괴
軍, 드론 비행 초저고도 공중우세 확보
보유 전력 융합 새 전투개념 수립 필요
인공지능(AI)과 정밀유도무기를 앞세운 첨단과학기술전쟁, 병사들이 시가지에서 서로 총격전을 벌이며 밀고 밀리는 소모전을 벌이는 진흙탕 전쟁…. 자석의 양극처럼 상반된 성질을 지닌 두 전쟁이 단일 전장에서 동시에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이 같은 인식을 단번에 깼다. 제2차 세계대전을 떠올리게 하는 치열한 보병전과 첨단기술을 활용한 전쟁이 함께 벌어지고 있다. 기존 관념에서 벗어난 전쟁에 대해 한국도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인공지능(AI) 및 첨단유도무기를 앞세운 첨단과학기술전쟁, 병력·물자가 대규모로 소모되는 재래식 전쟁이 동시에 한 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군사대국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FPV 드론과 소총·박격포 등 재래식 무기를 함께 전장에서 운영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격전은 없다

1990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쟁 이후 세계 각국은 미래전이 첨단과학기술에 의한 단기결전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술 중심 전쟁이 장병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깔끔한 전쟁’을 확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이 같은 통념을 깨버렸다. 러시아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2년 넘게 지속되고 있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하마스 공격 직후 약 10개월이 지났으나 무력충돌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양측 모두 무인기와 미사일, AI 등을 활용하면서도 시가지를 중심으로 끝없는 보병 전투를 치르고 있고 사상자도 늘고 있다.
우크라이나 병사가 전선에 있는 참호에서 러시아군을 향해 기관총을 사격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같은 국면은 인공위성과 스마트폰, 틱톡, X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플래닛 랩스를 비롯한 글로벌 상업 위성 회사들은 러시아군 동향을 담은 위성사진을 대거 공개했다. 개전 후에는 대량의 위성사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고 언론 등에 제공했다. 현지 주민들은 스마트폰으로 러시아군의 이동 상황을 찍어 SNS에 올렸다. 이를 통해 전선의 병사들부터 수뇌부까지 적 움직임을 빠르게 확인하는 ‘투명한 전장’이 만들어졌다. 가자 지구에서도 이스라엘군의 공습이나 병력·장비 이동, 무인기 비행 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SNS에 업로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쏜 포탄의 탄피들이 쌓여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정보의 빠른 확산은 전격전의 핵심인 전차·장갑차가 매복이나 대규모 진형을 은밀하게 구축해 기습하는 전술을 사용하기 어렵게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전쟁 초기 기습에 실패했고, 우크라이나도 국지적 수준의 전진만 하는 실정이다.

다수의 주민이 거주하는 시가지 전투를 주저하지 않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과거에는 오랜 기간 교전을 치르면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큰 시가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마리우폴, 바흐무트 등의 도시에서 혈투가 벌어졌다. 이스라엘도 가자 지구 내 가자시티 등에서 하마스와 교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병원, 발전소, 가스 저장소, 주택 등 민간 인프라도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다. 민간인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전쟁 수행능력을 약화하려는 의도다.

이 같은 양상은 전쟁을 병력과 물자를 대규모로 소비하는 소모전으로 이끌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에스토니아 국방부가 올해 초 계산한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1년간 필요로 하는 무기는 대공미사일 4800~7500기, 포탄 240만발, 장거리 로켓 8760발 등에 달한다. 이를 위한 비용은 28조7000억~102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규모의 무기 수요를 단일 국가가 모두 자체적으로 충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기와 원자재를 차질없이 조달할 글로벌 공급망 확충이 중시되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 각국은 우크라이나 지원과 자국 수요 충족을 위해 방위산업의 공급망 강화에 적극적이다.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에서 포탄과 미사일을 대량으로 조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 아래 하마스와의 전투를 진행 중이다.

무인 무기의 중요성도 강조되는 모양새다. 전투원들은 드론을 통해 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표적을 정확하게 파괴한다. 최소한의 비용과 훈련만으로도 미사일이나 포탄 못지않은 위력을 지닌 정밀유도무기를 최전선 보병도 사용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다.

상업용 민간 드론은 이 같은 경향을 더욱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군은 중국 DJI 매빅 스타일의 쿼드콥터 드론을 사용해 러시아군 진영을 정찰하거나 폭탄을 투하했다. 러시아군도 매빅 쿼드콥터를 대량 구입, 맞대응에 나서는 한편 이란산 샤헤드 자폭드론으로 장거리 정밀타격을 감행했다. 우크라이나는 1인칭 시점(FPV) 드론에 주목했다. 겉모습은 조악하고 비행거리도 짧으나 비용이 저렴해서 대량 운용이 가능하다. 폭발물을 탑재하면 빠른 속도로 날아가 전차·장갑차를 파괴하는 능력도 지녔다. 올해 초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방면에선 우크라이나군이 FPV 드론만으로 러시아군 전차와 장갑차 10여대를 격파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박격포에 포탄을 장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가자 지구에서도 드론은 널리 쓰이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보다 우위에 있는 기술력을 활용해 무인정찰기와 공격기를 운용하는 모양새다. 하마스도 상업용 드론을 활용한 비대칭적 공격방식을 사용했다.

‘첨단장비의 역설’도 두 개의 전쟁에서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당시 하마스가 처음 기습공격을 감행했을 때, 이스라엘은 수많은 감시정찰자산과 정보망 및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었지만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에서 지원받은 155㎜ 엑스칼리버 포탄 등의 정밀유도무기는 러시아군 전자전에 의해 명중률이 크게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첨단기술은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수많은 변수가 지배하는 전쟁의 양상에 완벽한 대응을 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돌발 변수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시스템,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능력을 지닌 지휘부와 의사결정 지원체계 구축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이 주목할 부분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한국군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드론 운용과 공중작전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군의 FPV 드론은 전차나 장갑차, 자주포, 전자전 시스템, 방공체계, 보급창고 등을 주로 공격한다. ‘러시아판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S-300 방공미사일 체계를 무력화하고자 우크라이나군은 S-300의 사각지대로 자폭 드론을 우회비행시켜 파괴하는 작전을 썼다. 전략·전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고가의 무기나 시설을 드론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작전이 필요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FVP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드론의 움직임을 저지하는 대드론체계(Anti-drone)가 있지만, 보다 넓은 지역을 방어하려면 공중작전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전투기가 출격해 고고도에서 적군의 제공권 장악 시도를 무력화하는 전통적 개념의 광역 공중우세 전략 못지않게 드론이 비행하는 초저고도에서의 공중우세도 확보해야 드론 공격으로부터 전략 시설이나 무기를 보호할 수 있다.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동안에만 제공권을 장악하는 공중작전도 검토할 만하다는 평가다.

수백만 인구가 거주하는 거대도시(Megacity)에서의 군사작전도 준비해야 한다. 한국군도 후방 지역을 담당하는 제2작전사령부 등을 중심으로 거대도시에서의 전투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거대도시 전투의 교리와 장비 도입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과 북군은 각각 상대방의 수도인 리치먼드와 워싱턴을 노리고 군사행동을 벌였다. 리치먼드와 워싱턴이 서로 가까웠기 때문이다. 한반도도 마찬가지다. 평양과 서울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근접해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전쟁처럼 남북이 평양과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치열한 시가전을 치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지하철을 비롯한 지하시설은 방어하는 측에 유리한 곳이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벌이는 것처럼 대대적인 폭격으로 시가지를 초토화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반도에서도 이 같은 방식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군이 보유한 전력을 융합해서 새로운 전투개념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국국방연구원 유기현 책임연구위원은 ‘2개의 전쟁, 무엇을 배울 것인가’ 보고서에서 “실제 발생하는 전쟁 성격을 정확히 인지하고, 필요하다면 우리의 계획을 세부 조정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군사력의 유용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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