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흔적 남은 곳에서…인생 최초 ‘남극의 미사’

한겨레 2024. 7. 2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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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금희의 나의 폴라 일지
남극에서의 기도
포경기지 들어섰던 시기의
고래뼈가 풍광처럼 도처에
기지 천주교 신자 셋이 모여
일요일 연구실에서 ‘공소예절’
남극에서 고래 뼈는 흔하고 흔한 만큼 녹록지 않았던 한 종의 과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김금희 제공

주일을 맞았다. 나는 지난해 세례를 받았는데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은 우리 집안 최초였고 그건 곧 아무것도 모른 채 신자가 되었다는 얘기였다. 내가 신자가 된 과정도 무척이나 우연적이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연작을 쓰기 위해 성당에 갔다가 어느 분이 말을 건 것이었다. 영성체 의식 때 자리만 비켜주고 왜 그냥 앉아 있었느냐고 그분은 물었다.(천주교 신자가 다른 이에게 그런 걸 묻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신부님은 나중에 말했다.)

“저는 세례받은 신자가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와본 사람이거든요.”

내가 솔직히 말하자 그분은 깜짝 놀라며 거의 뛰다시피 나를 마리아 수녀님께 인계(?)했다. 수녀님은 환하게 반기며 내 손을 잡았다. 그 뒤 몇개월을 기다렸다 세례를 받았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매주 주일 미사를 갔다. 영성체 대신 안수를 받았고 미사 순서를 잘 모르면서도 웅얼웅얼 따라 했다. 강론이 재밌고 성가대 합창을 듣는 것과 따라 부르는 것이 좋았으며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힘이 났다. 다 끝나고 집으로 가야 할 때가 되면 아쉬움이 들 만큼 나는 미사를 좋아했다. 성당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들은 온통 녹록지 않은 고민거리들이었기 때문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일상의 작은 우연도 신비를 갖는다. 나 역시 우연하고 의외인 일상의 일들을 통해 신을 감각하곤 하는데 남극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올해 1월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푼타아레나스 성당에 들어갔다가…

기지 주변을 산책하다가 발견한 돌무더기. 누가 일부러 십자가를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김금희 제공

가톨릭 전례는 어느 나라 어느 곳을 가도 동일하기 때문에 그 나라 언어를 알지 못해도 미사에 참여할 수 있다고, 모두가 여행자인 당신을 환영할 거라고 ‘책’에서 읽은 나는 푼타아레나스 거리를 배회하다 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미사가 있구나 싶어 얼른 종소리를 따라 들어갔다. 천장은 카펫처럼 따뜻한 느낌의 붉은색이었고 제단 위는 돔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성화와 꽃으로 장식된 교회였다. 신자들은 앞자리에 모여 있었고 나를 포함한 관광객 몇몇은 뒤편의 긴 나무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미사가 시작될 즈음 나는 제대 앞에 놓인 것이 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액자가 놓여 있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스페인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로서는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냥 사진만 놓은 건지 이 미사 자체가 장례 미사인지 헷갈렸다. 옆에 앉아 있던 관광객들은 구경을 다 했는지 아니면 예의상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자리를 뜨는데도 나는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카밀라 언니, 안드레아 대원과 함께 기지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꼭 마지막으로 영성체를 하고 남극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냥 추모 의식일 수도 있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지켰다. 거기에는 정장 차림의 참석자들이 거의 없다는 점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볼 키스로 다정히 인사를 나누었기에 나는 곧 펼쳐질 슬픔의 장례식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윽고 미사가 시작되고 책에서 읽은 것처럼 어렵지 않게 나는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전례를 따라갔다. 그리고 여행자임이 분명한 옷차림으로 앞으로 나아가 사람들 속에 줄을 서서 영성체도 받았다.

그렇게 내가 알던 절차들이 다 끝나자 한 남자가 걸어 나와 독서대에 섰다. 그리고 떨리고 긴장된 목소리로 써온 글을 읽기 시작했다. 직접 선곡했을 음악을 배경으로 통한과 그리움, 슬픔과 안타까움이 전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은 더더욱 고조되었다. 이윽고 사람들이 눈물을 닦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결례를 했구나, 싶었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중요하고 엄숙한 순간을 망친 불청객으로 사람들 기억에 남으면 어쩌지 싶어 착잡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나가버릴 수는 없었다. 그건 예의에 더 어긋나는 일이니까. 비록 미사에 늦은 지인들이 여전히 하나둘씩 들어오고 있는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따지고 보면 못 알아들을 것이 하나도 없는 긴 추도사를 끝까지 들었고 같이 영원한 안식을 빌었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 다행히 망자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그 이름을 연거푸 부르며 추도사가 맺어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비올레타, 제비꽃이라는 뜻이었다. 이윽고 꽃을 바칠 때가 되자 누군가 앞에 나와 짤막한 멘트를 하며 음악을 틀었다. 성가가 아닌 정열적인 리듬의 록 음악이 흘러나왔다. 혹시 비올레타가 좋아한 밴드였을까. 웅장하고 장엄한 멜로디의 음악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음악으로 마무리되니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나를 그리 불쾌하게 여기지는 않았으리라고 믿게 되었다.

자연의 질서 안에서 느끼는 숭고함

“맞아, 칠레 사람들 장례 분위기는 좀 달라요. 작가님 짐작처럼 평소 좋아하던 노래였을 수도 있고요. 우리 이따가 신자들끼리 저녁 8시쯤 잠깐 모여요, 알았죠?” 내 얘기를 들은 카밀라 언니가 말했다. 오늘 아침도 자율배식이었지만 우리는 평소처럼 식당에 모여 아침을 같이 먹었다. 스마트팜의 채소들과 기지에서는 꽤 귀한 치즈를 팍팍 넣은 샌드위치, 인스턴트 황태국 국물을 베이스로 끓인 호화로운 모닝 라면과 시리얼 등이 주메뉴였다.

남극에 도착한 편지. 우편물을 받으니 마치 남극이 집처럼 느껴졌다. 김금희 제공

오후가 되자 입남극 직후 기지를 소개해주었던 에이치(H) 대원이, 내 독자들이라는 친구들이 보낸 책과 편지를 가지고 찾아왔다. 지구를 돌고 돌아 도착한 책이라니, 그리고 다시 똑같은 여정으로 되돌아갈 책이라니, 애틋했다. 떠나기 전에 답장을 쓰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선한 인상의 에이치 대원은 고층대기관측동과 우주환경관측동의 복잡하고도 비싼 기기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남극에 와서 하늘 높은 곳보다는 낮고 낮아져야 보인다는 지의류와만 주로 친교를 맺고 있던 터라 에이치가 하는 일이 궁금해졌다. 태양 폭풍을 측정하고 중간권의 온도 변화와 대기 파동을 관찰하고 있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남극에서 보고 싶은 별자리가 있으세요?”

에이치가 하는 관측이 별을 보는 차원은 아닐 테지만 나는 그런 순진하고도 정말 궁금한 질문을 했다. 에이치는 고맙게도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마젤란은하’라고 답했다. 왜냐고 묻자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으니까요” 하며 웃었다. 마젤란은하는 우리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 영향권 안에서 가장 크고 밝으며 별의 탄생이 계속되는 젊은 은하였다. 에이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편지 를 읽었고 두고두고 볼 수 있게 창가에 놓았다. 그리고 그날 밤, 카밀라 언니의 연락을 받고 대기연구팀 연구실로 갔다. 컴퓨터에는 ‘남극세종과학기지 공소 예절’이라는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안드레아가 자료를 손수 준비했다고 했다. 우리끼리 나누는 친교 모임 정도로 생각했던 이 만남이 성당에서처럼 순서를 지켜 진행되는 전례라는 걸 나는 그때야 알았다. 그런 걸 ‘공소예절’이라고 한다는 것도. 남극에 와서 쓰고 있는 기도 일기 책 을 들고 ‘차담회’ 하는 마음으로 왔던 나는 당황했다. 언니는 괜찮다며 기도 일기 책 에 좋은 글귀가 있으면 나중에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연구실에는 원파고가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을 방해한 셈인데도 원파고는 평소처럼 시원시원하게 괜찮다고 이해해주었다.

최초의 남극 미사가 이뤄지던 날. 연구실 컴퓨터에 ‘공소예절’ 화면을 띄웠다. 김금희 제공

그렇게 해서 내 인생 최초의 남극 미사가 시작되려는 순간 안드레아가 아직 돌도 안 된 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물론 아이 엄마가 걸었지만) 잠깐 자리를 떴다. 과묵하고 사색적이며 약간은 히피적인 면모가 있다고 생각했던 안드레아는 혀를 반쯤 접고 아주 살갑게 딸을 어르며 통화를 했다. 밥은 배불리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응가는 잘 누었는지까지. 그 모습에 비로소 신비보다는 다정하고 다정한 인간의 모습을 한 안드레아가 느껴졌다.

사제가 없는 미사가 가능한 이유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고 하신 마태복음의 구절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나는 이 문장을 좋아했는데 지구의 태초 모습이 보존되어 있을 이곳에서 그 말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신자인 나는 이 광대한 자연의 힘과 질서를 어쩔 수 없이 신과 인간의 자리에서 생각하곤 했다. 빛에 반짝이는 유빙들을 보거나 잠시 얼음이 풀린 틈을 타 되살아난 풀과 이끼 그리고 이제 솜털을 거의 벗은 펭귄을 볼 때마다 나라는 피조물의 자리도 오롯이 드러났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남극의 자연은 나를 낮추고 자연의 질서 안에 머물며 늘 어떤 숭고함을 느끼게 했다. 압도적인 경외와 종교적 매혹 그리고 두려운 감동이 뒤섞인 누미노제(Numinose)의 경험이 남극에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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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받지 못하면 어때요?”

자갈밭에서 발견된 새의 뼈. 김금희 제공

남극행 준비를 할 때 나는 ‘죽음’을 목격할까 봐 두려웠다. 대자연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먹고 먹힘의 문제, 예를 들어 새끼 펭귄을 잡아먹는 남극도둑갈매기 같은 장면을 목격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도착한 때는 한여름, 새끼 펭귄들은 그런 갈매기들에게 어느 정도 대항할 만큼 자라 있었고 한번도 그런 장면은 목격되지 않았다. 대신 죽음은 흔하디흔한 잔흔으로 걷는 곳마다 남아 있었다. 가장 빈번한 건 고래의 뼈였다. 자연사한 개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포경 기지로 쓰였던 시기의 뼈들 같았다. 그건 도시의 흔한 이정표나 광고판처럼 펭귄 마을 입구를 나타내기도 하고 해표 마을 대피소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세종기지 헬기 착륙장에 놓여 있기도 했다. 때로 뼈는 풍광을 이루는 자연스러운 형태로 흩어져 있기도 했다. 그런 죽음의 흔적들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무정하지도 않고 무심하지도 않은 평정심을 감각하며 그것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고백과 기도와 독서와 강론이 이어지는 남극기지에서의 미사가 끝나고, 언니가 기도 일기책에서 한 구절을 읽어달라고 했다. 애써 들고 온 나를 배려한 것이다. 나는 페이지를 펼쳐서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하는 요한복음의 구절을 읽었다. 그렇게 종교 활동이 끝나고 우리는 간식을 함께 먹었다. 나는 원파고에게 포르투갈팀이 매일 띄우는 풍선에 대해 물었다.

“한번 같이 보실래요?”

설명하다 문득 원파고는 물었다.

“봐도 돼요? 그럼 좋죠.”

나는 기뻤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내 위치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통신원으로 온 것은 맞지만 이미 한차례 방송국팀이 다녀간 터라 자꾸 뭔가를 묻고 따라다닐까 봐 경계하는 연구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윗선(?)을 통한 인터뷰 요청을 빼고는 평범한 식생팀 멤버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수동성이 이점이 되기도 했다. 외부인이지만 특별한 대우가 필요 없는, 절반 정도의 내부인이 된 것이다. 이제 스물다섯살로 케이(K) 대원과 함께 기지 막내인 엘비(LB)는 어느 날 체육관에 놀러 오라고 권하기도 했다. 밤마다 운동하는 대원들이 많으니 재밌을 거라고.

“갔는데 혹시 불편해하면 어떡해요, 운동하는데….”

다가가고 싶지만 얼마큼 다가가야 할지 몰라 주저하는 성격은 남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배우 김수현을 닮은 엘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불편해하긴요, 다들 환영할 거예요” 하며 내가 남극에서 들은 가장 잊을 수 없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만약 환영받지 못하면 어때요, 그것도 배워 가는 거잖아요.”

공사 자재 곁에 떨어져 있는 새의 주검. 김금희 제공

그 말 덕분일까. 나는 평소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로 했다. 차디찬 남극해에 매번 긴장되는 다이빙을 하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경쾌한 에너지를 유지하는 연안생태팀 고 연구원과 양 연구원 그리고 ‘옆새우’라는 특이종에 빠져 있는 안이 그 대상이었다. 나는 기회를 봐서 그들을 따라가겠다고 별렀다. 그런 변화를 겪고 있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스트레스 반응 실험의 시금치 시료처럼 늘 피곤한 기색이던 엠(M) 박사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누구보다 관측과 실험에 적극적이었다. 내 생각에 그런 자극은 주로 홍 선생이 주고 있었다. 엠은 자신이 내성적이라고 했지만 가만 보니 해맑게 웃으며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이었다. 건치에다가 반짝반짝이는 눈망울을 지녀 그 말들은 아주 무해하게 들렸지만 가만 보면 한번도 지지 않았다. 그리고 홍 선생은 토론을 아주 좋아하는 분이었고 그런 엠의 좋은 파트너였다.

그 밤 방으로 돌아가던 나는 마침 안을 만났고 혹시 옆새우 채취하러 같이 가면 안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은 “정말요!” 하며 평소의 과묵함을 생각하면 이례적일 정도로 좋아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2인 1조가 되어야만 이동할 수 있는데, 그가 옆새우를 채취하는 바다는 기지에서 꽤 멀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런 노고에 대해서는 짐작하지 못했고 나는 드디어 남극해에서 만나게 될 절지동물문 갑각강 단각목종들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소설가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식물적 낙관’ 등을 썼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늘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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