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격 후 주먹 쥔 트럼프 사진, 왜 한국 신문과 미국 신문은 다른 사진을 썼을까?[청계천 옆 사진관]

변영욱 기자 2024. 7. 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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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의 백년사진 No. 70

● 트럼프의 포효 모습, 한국과 미국 신문에서 쓴 사진이 달랐다

이번 주 한국을 뜨겁게 달군 사진은 미국 시간 13일 선거 유세 도중 총탄을 맞은 트럼프가 손을 들어 지지자들에게 포효하는 장면이었습니다. 1초를 4000로 쪼갠 찰나로 카메라의 셔터 스피드를 설정한 사진기자는 이 장면을 트럼프 바로 앞 연단 아래에서 찍었습니다. 필요한 모든 요소와 감정이 집약된 순간입니다. 이 사진은 미국에서 최소한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사고 나흘 뒤인 17일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전광판에도 이 사진이 크게 비치고 있습니다.

17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인 공화당 전당대회에 등장한 트럼프 피격 직후 사진 / AP 뉴시스
AP통신의 백악관 출입 사진기자인 Evan Vucci(1977년생)는 한국에서도 갑자기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보도사진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방송카메라 기자의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은 그 사진을 찍은 사람에 대해 ‘사진 천재’라고 표현했다고 하더라구요. 덩달아 “美 사진기자들은 어떻게 트럼프가 총 맞는 순간을 찍을 수 있었을까”라는 제목으로 동아닷컴의 [청계천옆사진관] 코너에 올린 저의 글도 꽤 많은 댓글이 달려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주중에는 신문에 들어갈 사진을 찍는 사진기자입니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씩 매주 토요일, 100년 전 우리나라 신문에 실렸던 사진 중 한 장을 골라 여러분에게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에서는 1924년 7월 15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게재된 사진을 소개할 에정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지난 주 트럼프 피격 사진을 쓴 한국신문과 미국신문의 차이를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일하고 있는 한국 신문의 7월 15일자 1면 사진입니다.

완벽한 3분할(3각형) 구도의 사진으로 뒤에 성조기까지 완벽하게 보이는 사진입니다. 우리나라 독자와 네티즌 대부분이 그날 사건을 이 사진으로 기억하실 거 같습니다.

다음은 미국 신문의 1면을 모은 사진입니다. 우리와 같은 사진을 쓰기도 했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의 사진을 쓴 신문이 꽤 있다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사진적으로 완벽한 사진은 우리나라 신문이 쓴 사진일 겁니다. 미국의 사진기자들과 편집기자들도 아마 사진적으로 완벽한 사진을 꼽으라면 그 사진을 선택할 겁니다. 그런데 미국 신문의 편집자들은 상대적으로 덜 완벽하고 힘이 좀 없는 사진을 골랐습니다. 트럼프의 손이 완전히 하늘로 올라가지도 않고 성조기도 잘 보이지 않는 사진을 썼습니다. 한국 신문과는 분명 뉘앙스가 다릅니다.

왜일까 생각해보고 옆에 있는 사진기자 선후배들에게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트럼프를 싫어하는 것 아닐까?”라는 결론에 조심스럽게 도달했습니다. 위대한 트럼프라는 이미지를 주기 싫어한, 미국 주류 언론들의 사진 선택이었을 거라는 겁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사진이 너무 선전효과가 크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의 사진은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와 1990년대 전대협이나 민노총 집회에서 의장이나 위원장을 기록하는 방식에 아주 가깝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연단 아래에서 위를 보며 찍음으로써 독자들이 주인공을 우러러보게 하는 동시에 배경이 하늘이 되어 피사체가 도드라져 보이는 사진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사진 표현법입니다.

서울광장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열린 2021년 2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민중가수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송은석>

AP통신 Vucci 기자가 찍은 사진이 트럼프를 대선에서 아주 유리한 고지에 도착시켰고 그 사진은 아마 퓰리처상을 받을거라고 예측하는 우리의 정서와는 달리 미국 신문사 기자들과 편집자들은 냉정하거나 아니면 평범한 느낌의 사진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손도 별로 안 올라가고 성조기도 덜 보이는 사진을 고른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 100년 전 노동조합 결성식 사진에서는 왜 노조원들이 주먹을 들지 않았을까

그럼 본론으로 들어와 이번 주 백년사진을 소개합니다. 1924년 7월 15일자 동아일보 지면입니다.

경성 인쇄직공조합 창립총회/ 1924년 7월 15일 동아일보

관련 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경성 인쇄직공조합 창립총회

印刷工組合創立

인쇄 직공 조합을 조직하여

로동운동에새 기치를 세워

시내에 있는 인쇄직공(印刷職工)삼천 여 명이 모여 단결기관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중이라 함은 이미 본보에 보도한 바인데 지난 13일 오후 8시에 경성 인쇄 직공 조합 창립총회(京城印刷職工組合創立總會)를 시내 견지동 시천교당(堅志洞侍天敎堂)에서 열고 임시의장 리응종(李應鍾)씨의 열렬한 창립취지 설명이 있은 후 의사를 진행하였는데 경성에 있는 인쇄 직공은 전부 이 조합에 가입하게 할 일과 또 지방 인쇄직공 단결을 원조할 일과 또 조합비로 매월 10전씩을 받기로 결의한 후 위원 100여 명을 선정하고 위원장과 상무위원은 오는 21일에 열리는 제1회 위원회에서 선정하여 발표하기로 하고 인쇄 직공 친목회를 인계한 후에 폐회하였는데 조선에서 노동계급이 자발적으로 계급의식(階級意識)을 가지고 모이는 모임으로는 새 기치를 세웠으며 조선노동운동의 발전과 장래를 위하여 매우 기꺼운 일이라고 일반 노동운동자들은 기뻐한다더라.

경성 시내에서 일하던 인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아무리 흑백사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밋밋한 느낌입니다. 요즘의 노동자 집회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수막이 붙어 있고 그 앞에서 위원장이 주먹을 들어 구호를 외치고 연단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집단적으로 주먹을 들어 결의를 보여주는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조합 사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의 궁금증은 사실, 트럼프 사진을 보면서 든 생각이지만 우리는 언제부터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쥐고 팔을 펴는 사진에 익숙해졌을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궁금증입니다.

역대 사진을 모아 둔 데이터베이스에서 ‘집회’ ‘구호’ ‘시위’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동아일보 DB에서 팔을 들어 구호를 외치는 장면은 1974년 8월 27일이 처음으로 검색됩니다.

육영수여사 저격사건 규탄집회/김일성 규탄 및 일본 각성 촉구 국민총궐기대회가 1974년 8월 27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다. 동아일보 DB.
물론 그 전에도 두 손을 들어 만세를 외치는 사진은 있지만 팔을 들어 하늘을 향하는 사진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1980년도 이후에 그런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보였습니다.

1950, 60년대는 손으로 쓴 프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어깨동무하고 스크럼을 짜서 행진하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그 전의 시위 모습은

휴전반대 데모. 1950년대. 동아일보 DB
1956년 7월 29일. 美대사관 앞 노상에서 출동한 무장경찰대 및 사복형사대들과 옥신각신하는 「데모」 의원들 . 동아일보 DB.
<3.15의거> 서울의 항의집회/ 3.15부정선거와 이승만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서울시민들의 종로집회. 1960년 4월 6일. 동아일보 DB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만약 손을 들어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현장에 있었다면 사진기자들은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밋밋한 장면 보다는 동작이 있는 장면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오늘은, 100년 전 노동자들의 집회 사진에서 손을 허공에 올려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아닌 것과 트럼프의 포효 모습 사진을 보면서 언제부터 우리는 팔을 들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사진에 익숙하게 되었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이 보이셨나요?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흔해진 시대에, 우리 사진의 원형을 찾아가 봅니다. 사진기자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매주 한 장씩 골라 소개하는데 여기에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사진의 맥락이 더 분명해질 거 같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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